본문 바로가기
인권을 생각한다/북한인권 담론 비판

내가 만나본 홍진표와 뉴라이트

by betulo 2010. 11. 19.
728x90

한나라당이 국가인권위 상임위원에 홍진표(47) 사단법인 시대정신 이사를 추천했다고 한다. 지난 1일 사퇴한 문경란 상위위원이 현병철 인권위원장을 비판하며 사퇴한 뒤 공석인 한나라당 몫 상임위원 자리다. 이 소식을 듣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2년 전 홍진표가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만나본 홍진표와 뉴라이트>라는 글을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다행스럽게도 그 후 홍진표 내정설은 없던 일이 됐다. 갈수록 태산이라고 해야 하나. 이번엔 인권위 상임위원이란다... 당시 썼던 글을 다시 꺼내본다. <20101119>

홍진표. 자유주의연대 집행위원장.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책실장. 시대정신 편집위원.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민혁당(민족민주혁명당). 구학련(구국학생연맹) 등으로 거슬러올라가는 화려한 이력을 가진 인물이 이번에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으로 내정됐다.

1983년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한 홍진표는 ‘강철 서신’으로 유명한 김영환과 함께 80년대 주사파 진영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말그대로 북한을 대안으로 생각하는 운동을 했던 그는 90년대 이후 강력한 반북운동가로 변신했다.

나는 취재를 위해 몇차례 홍진표를 만나봤다. 처음은 송두율 공판에서 우연히 봤고 두번째는 이른바 ‘북한민주화운동’을 취재하기 위해 인터뷰를 했다. 세번째는 자유주의연대를 비롯한 뉴라이트 운동 취재 과정에서 만났다.

홍진표가 시민사회비서관에 내정됐다는 말이 나온 이후 찬반 논란이 있는 것 같다. 내 개인적인 호불호는 분명히 있지만 여기서는 홍진표가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내가 직접 들은 얘기를 바탕으로 정리해보자.

"송두율은 주사파 대부"

2004년 2월10일 서울지방법원에서 열린 송두율 사건 7차 공판은 원래 검찰이 구형을 할 예정이었지만 새로운 증인을 내세우면서 증인심문으로 바뀌었다. 증인으로 나온 사람이 바로 홍진표였다.

당시 계간 <시대정신> 편집위원으로 자신을 소개한 홍진표는 80년대 후반 “북한 바로알기 운동은 당시 주사파들이 주체사상을 대중적으로 선전하기 위해 내세운 수단”이었다며 “88년 12월 <사회와 사상>에 실린 송두율의 글은 북한바로알기운동에 이론적인 토대를 제공하는 등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증언했다.

홍진표는 증언 내내 “송두율은 친북성향”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송두율의 글은 객관성으로 위장해 주체사상과 친북사상을 전파하기 위한 글”이라고 단정했다. 그는 “북한정권에 대해 일체감과 소속감을 갖고 있지 않고서야 송두율이 북한을 한 번도 비판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홍진표는 자신이 송두율의 책을 거의 다 읽어봤는데 “북한을 비판하는 내용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송두율=주사파’ 근거로 삼았다. 하지만 나중에 변호사들이 확인한 내용은 홍진표가 독일어를 모른다는 것. 당연히 송두율이 쓴 독일어 문헌은 전혀 못봤다는 것. 송두율은 철학 박사이고 홍진표는 정치학과 중퇴라는 것 등이다.

피고인측 변호사는 이에 대해 “증인인 말한대로 해도 송두율 글이 <사회와 사상>에 발표된 88년 12월은 이미 주사파가 강력한 세력을 가진 이후”라고 지적한 뒤 “송두율 글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은 과도하고 주관적인 평가”라며 증인을 추궁했다.

국가보안법에 대한 홍진표의 생각

“공식적으로 입장 밝힌 적 없다. 중요한 건 무엇을 처벌하고 무엇을 처벌하지 말건가... 간첩이나 간첩 활동 지원행위는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 고무찬양은 여론으로 할 문제다. 형사처벌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라크 침공 찬성

홍진표가 참여했던 북한민주화네트워크(북민넷)는 2003년 이라크전쟁 발발 당시 “이라크전쟁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홍진표는 2004년 10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장기간 독재로 대안세력도 없고 민중의 의식수준도 낮은 이라크 상황에선 외부개입도 상당한 효과가 있으며 결과적으로 이라크 주민들을 후세인 치하에서 해방시킨 점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선거를 통해 새로운 정부가 생기면 미국도 물러날 것이고 이라크는 민주정부를 갖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2004년 10월 인터뷰 당시 홍진표는 이렇게 말했다.

“이라크 전쟁 지지한다. 대량살상무기는 미국인들에겐 중요할지 몰라도 우리는 큰 관심 없다. 독재가 장기간 지속되고 내부에서 저항해서 뒤집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대안세력도 부재하고 민도(민중의식수준)도 낮고 탄압도 심하고... 그런 경우에 민주화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외부개입도 상당히 효과적일 것이라 본다. 
결과적으로 이라크 주민들을 후세인 체제에서 해방시킨 점을 긍정적으로 본다. 점령은 이미 불가능한 시대다. 그런 부분은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 이라크도 선거하고 나면 미국도 물러날거고 이라크는 민주정부 되지 않겠나.”

미국 CIA 외곽단체와 연계 활동 전력

북민넷은 미국내 보수적 싱크탱크와 상당한 협조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민넷은 2000년 4만달러를 시작으로 ‘전미민주주의기금’(NED) 지원금을 최소한 그를 인터뷰했던 2004년 10월까지 계속 받고 있었다. NED는 홈페이지에서 “아시아에서 지원을 받는 주목할 만한 단체”로 북민넷을 비중 있게 소개하기도 했다. 당시 홍진표는 “지원금은 북민넷 기관지인 ‘Keys’ 영문판 발간과 각국 도서관․연구소․기관과 인사한테 발송하는 데 쓴다”고 설명했다.

전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객원연구원 유정애에 따르면 “NED는 1990년대 후반부터 북한인권시민연합, 북한민주화네트워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등에 50만달러가 넘는 돈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유정애는 NED가 1983년에 설립됐으며 “미 중앙정보부(CIA)가 수십년 동안 은밀하게 했던 활동들을 민간단체의 틀을 빌어 공공연하게 하겠다는 것이 NED의 설립구상이며 실제 그런 활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 자수, 반성문 제출

북민넷 초창기 회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는 오광진은 “99년 9월 민혁당(민족민주혁명당) 사건이 터지기 직전에 북한민주화운동 핵심 인사한테 ‘중국에 있는 김영환이 곧 귀국할 텐데 아무 준비없이 오겠느냐. 이미 조갑제를 만나 모든 준비를 마쳤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김영환은 구학련 시절부터 홍진표 등 그룹의 좌장격이었으며 이후 북민넷이나 자유주의연대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었다.

김영환은 그 후 한국에 입국한 직후 국정원에 연행됐고 수사과정에서 관련 사실 일체를 자백한 후 공소보류로 풀려났다. 국정원은 당시 “과거의 잘못을 깊이 뉘우쳐 북한과 관계를 단절하며 자발적으로 북한민주화를 위해 앞장서겠다고 다짐하면서 수사에 자진 협조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김영환과 조갑제가 만났다는 것은 당시 언론보도를 통해 잘 알려진 내용이기도 하다.

김일성주의자에서 황장엽주의자로

2004년 10월 인터뷰 당시 홍진표는 “주체사상에는 두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황장엽이 생각했던 주사(주체사상)와 김정일이 만든 이데올로기. 황장엽류의 주사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그의 발언을 그대로 따라가 보자.

“북한을 사회주의 체제로 보지 않는다. 봉건왕조로 본다. 전통적인 보수와 얘기하다 보면 차이나는 부분은... 소련이나 중국에서 사회주의혁명을 했을때 선의로 했나? 우리는 그렇다고 본다. 보수쪽은 그렇지 않게 보더라. 공산주의를 절대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필요한가에 대해... 우리는 중국공산당 내에 개혁이 일어난 것을 인정한다. 우리는 어느정도 당내 민주주의가 보장되면 공산당도 자기변화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사회주의체제로 소련과 동구, 중국 베트남 정도로 본다. 크메르루즈는 좀 애매하다. 후세인 초기 등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쿠바는 상대적으로 자유를 많이 주는 나라니까 넓은 의미에서 사회주의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70년대 이전은 북한도 사회주의도 본다. 70년대 수령체제, 1인체제 시작되면서 일탈이 시작됐다고 본다.

북한을 분석하는데는 황장엽과 의견이 상당히 일치한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차별성, 북한이라는 사회 자체가 7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차이있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황장엽과 얘기해보니 그런 대목에서 상당히 일치하더라.”

내가 보기에 홍진표는, 그리고 김영환 등 그와 행동을 같이 했던 부류들은 김일성주의자에서 황장엽주의자로 변신했다. 실제 홍진표가 편집위원으로 참여했던 계간 <시대정신>은 황장엽의 저술을 집중적으로 출간했다. <시대정신>은 북민넷과 사무실도 같았고 인적네트워크도 거의 겹친다.

“나는 진보”

홍진표는 2004년 10월 인터뷰 당시 “좌우 개념엔 동의안한다. 시대가 바뀐 마당에 과거 잣대로 재는 건 옳지 않다.”면서 “진보, 보수, 반동 세가지로 구분한다면 우리는 진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그와 그의 동료들은 ‘뉴라이트’(新우익)이라고 자기들의 정체성을 명명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검찰 증인심문 당시 그가 밝힌 자신의 이력이다. (수첩에 적은 내용이라 일부 착오가 있을 수 있음.)

1963년 광주 출생. 광주항쟁 겪음
1982년 서울대 입학. 흥사단 아카데미 가입. 제적
1983년 서울대 입학. 강제징집
1985년 병장 제대
1986년 노동운동 준비. '구국의 소리' 접하고 주사파가 됨
1986년~1987년 투옥.
1987년 복학. 11월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
1988년 집행유예
1991년 전민련 간사. 범민련 남측본부 준비위 간사. 김영환 권유로 반제청년동맹. 민혁당 가입. 
1993년 범민련 탈퇴.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결성 참가.
1997년 민혁당 탈퇴.
1998년 시대정신 편집위원

 

관련 글


‘인권’없는 북한인권 (2004.10.29)
극단에서 극단으로, 북한민주화운동 (2004.11.24)


전직 운동권이 주사파라면 송두율은 주사파? (2004.2.10)

‘뉴라이트’ 이름값 제대로 하긴 하나

뉴라이트, "한국판 네오콘"인가(2004.11.26)
“전향한 전직 주사파들의 처절한 몸부림” (2004.11.25)
“합리적 보수 선언한 것” (2004.11.125)
‘생활인 386’들, “극우 치중 안쓰럽다” (2004.11.2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