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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

우직한 사람만이 산을 옮긴다

by 자작나무숲 2011. 10. 17.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춘추시대 제자백가 가운데 한 사람인 열자(列子)의 사상을 그의 문인들이 기술했다는 열자(列子)탕문편(湯問篇)’에 나오는 우화다. (열자라는 책 자체는 후세에 나온 위작이란 설이 많다.) 간략히 요약하면 이런 얘기다.


먼 옛날 태행산(太行山)과 왕옥산(王玉山)은 사방이 700, 높이가 만길로 본래 기주 남쪽 하양 북쪽에 있었다. 북산에 사는 우공(愚公)이라는 90세 노인은 두 산을 맞대고 살고 있었다. 두 산에 막혀 왕래할 때마다 멀리 돌아가는 고생을 해야 했다. 우공은 어느 날, 가족을 모아 놓고 이렇게 물었다.

나는 너희들이 저 두 산을 깎아 없애고, 예주(豫州)와 한수(漢水) 남쪽까지 곧장 길을 내고 싶은데 너희들 생각은 어떠냐?”

모두 찬성했으나 그의 아내만은 무리라며 반대했다.

아니, 늙은 당신의 힘으로 어떻게 저 큰 산을 깎아 없앤단 말예요? 또 파낸 흙은 어디다 버리고?”

모두들 발해(渤海)에 갖다 버리면 된다.”고 했다.

이튿날 아침부터 우공은 세 아들과 손자들을 데리고 돌을 깨고 흙을 파서 삼태기로 발해까지 갖다 버리기 시작했다. 한 번 갔다 돌아오는데 꼬박 1년이 걸렸다. 어느 날 지수라는 사람이 '죽을 날이 멀지 않은 노인이 정말 망녕'이라며 비웃자 우공은 태연히 말했다.

내가 죽으면 아들이 하고, 아들은 또 손자를 낳고 손자는 또 아들을…‥. 이렇게 자자손손(子子孫孫) 계속하면 언젠가는 저 두 산이 평평해질 날이 오겠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란 것은 두 산을 지키는 사신(蛇神)이었다. 산이 없어지면 큰일이라고 생각한 사신은 옥황상제(玉皇上帝)에게 호소했다. 우공의 끈기에 감동한 옥황상제는 역신(力神) 과아의 두 아들에게 명하여 각각 두 산을 업어 태행산은 삭동(朔東), 왕옥산은 옹남(雍南)에 옮겨 놓게 했다. 그래서 두 산이 있었던 기주(冀州)와 한수(漢水) 남쪽은 지금은 작은 언덕조차 없다.[각주:1]

 

말은 참 쉽다. 실제 하기가 어렵지. 하지만 곰곰이 주변을 둘러보면 우공이산이 반드시 허황된 것만도 아니다. 희망이란 그런 것이다.

 

지난주 토요일 북한산을 다녀왔다. 산 중턱에서 바위를 둘로 쪼개놓은 나무를 보았다. 조약돌로 하나씩 쌓아놓은 돌탑도 보았다. 다 우공이산 같은거 아니겠나 싶다.


 


겸사겸사 나무를 심은 사람이란 고전 애니메이션도 찾아봤다. 다행히 유튜브에 한국어 더빙판이 있다.

 





  1. 太形王屋二山, 方七百里, 高萬?, 本在冀州之南, 河陽之北. 北山愚公者, 年且九十, 面山而居. 懲山北之塞, 出入之迂也, 聚室而謀, 曰 “吾與汝畢力平險, 指通豫南, 達于漢陰, 可乎?” 雜然相許. 其妻獻疑 曰 “以君之力, 曾不能損魁父之丘. 如太形王屋何? 且焉置土石?” 雜曰 “投諸渤海之尾, 隱土之北.” 遂率子孫荷擔者三夫, 叩石墾壤, 箕?運於渤海之尾. 隣人京城氏之孀妻有遺男, 始?, 跳往助之. 寒暑易節, 始一反焉. 河曲智?笑而止之, 曰 “甚矣汝之不惠! 以殘年餘力, 曾不能毁山之一毛; 其如土石何?” 北山愚公長息 曰 “汝心之固, 固不可徹, 曾不若孀妻弱子. 雖我之死, 有子存焉. 子又生孫, 孫又生子, 子又有子, 子又有孫 子子孫孫, 無窮?也, 而山不加增, 何苦而不平?” 河曲智?亡以應. 操蛇之神聞之, 懼其不已也, 告之於帝. 帝感其誠, 命?蛾氏二子負二山, 一?朔東, 一?雍南. 自此, 冀之南, 漢之陰無?斷焉.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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