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雜說/자작나무책꽂이

[부자아빠의 몰락] 소비에도 누진세가 필요하다

by betulo 2011. 2. 27.
728x90



로버트 프랭크
(Frank, Robert H.). (2009). <부자 아빠의 몰락>. 황해선(옮김), 창비; Falling Behind. 2007.

 상대적 박탈감'이란 우리가 늘 일상 속에서 접하는 감정이다. 성능 괜찮은 노트북컴퓨터 한 대면 충분하다고 느끼는데 어느 순간 태블릿 컴퓨터가 없으면 뭔가 부족한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려면 스마트폰은 있어야 할 것 같다. 불과 2~3년 전 최신 모델로 광고에 나왔던 슬라이드형 휴대전화는 이제 왠지 '촌스러워' 보인다.

스마트폰으로 주로 사용하는 기능이 기껏 운전하면서 멀쩡한 네비게이션을 앞에 두고도 길찾기 어플인 'T'을 쓰는 것 뿐이라고 해도 그건 중요한게 아니다. 모두가 중형차를 타는데 혼자서만 소형차를 몰면 스스로 '없어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간단한 실험을 해보자. 한 가지 빼고는 모든게 똑같은 두 세상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하는데 1번 세상은 나만 84아파트에 거주하고 다른 사람은 모두 100아파트에 산다. 2번 세상은 나만 혼자 75짜리 아파트에서 살고 나머지는 모조리 65아파트에서 산다. 여러분이라면 1번과 2번 가운데 어떤 세상을 고르겠는가.

이런 실험도 있다. 1년에 4주간 정기휴가를 보낼 수 있는 대신 다른 직원들은 6주 정기휴가를 보낼 수 있는 3번 세상과 나는 1년에 2주 정기휴가를 보내고 다른 직원들은 정기휴가가 1주일 뿐인 4번 세상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것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주류 경제학'에서는 유일하게 올바른 선택은 1번과 3번 세상에서 사는 것이다. 이기심에 입각해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당신은 75보다는 84아파트가 훨씬 낫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판단한다. 2주 휴가보다 4주 휴가가 좋다는 건 물어보나 마나다.

그럼 일반적인 결과는 어떻게 나올까. 휴가에 관한 한 4번 세상보다는 3번 세상을 선택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1번과 2번 세상 가운데 2번을 고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왜 그럴까? 휴가야 남들이 6주를 가건 8주를 가건 내가 4주 동안 즐겁게 쉬면 일단 큰 문제 없지만 주택이란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 주기 때문이다.

 비밀은 '지위재'라는 개념에 숨어있다. 주택은 지위재이고 휴가는 비지위재다. 로버트 프랭크 미국 코넬대학교 존슨경영대학원 교수는 <부자 아빠의 몰락>에서 위 실험을 바탕으로 네 가지 명제를 제시한다.

(1) 사람들은 일부 영역에서 상대적인 소비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다.

(2) 상대적 소비에 대한 관심은 지위재에 초점을 둔 지위적 경쟁 혹은 지출경쟁으로 이어진다.

(3) 지위적 경쟁은 비지위재한테서 자원을 이탈시켜 대규모 복지손실을 일으킨다(더 큰 자동차를 향한 욕구나 군비경쟁을 떠올려보자).

(4) 지위적 경쟁 때문에 중산층 가구가 입는 손실은 높아지는 불평등 때문에 더 악화된다.


저자는 <부자 아빠의 몰락>에서 불평등이 우리 삶과 사회에 얼마나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자세히 설명한다. 그는 불평등이 행복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 다음 무엇이 우리를 소비로 내모는지, 왜 우리는 지위에 신경을 쓰는지 보여준다.

문제는 단순히 더 많이 소비하는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는 소득수준보다도 더 많은 소비를 하는 지출의 연쇄작용때문에 중산층이 몰락하는 위기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1980년대 이후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고 중산층은 소득이 조금밖에 늘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든 상황에서 중산층은 씀씀이가 늘어났다. 그 결과로 부채는 늘어나고 건강은 위협받고 삶의 질은 떨어진다.

울며 겨자먹기 소비경쟁에 허리 펼 날 없다

지위재에 대한 과다 지출 경쟁은 이들의 살림살이를 빠듯하게 압박할 뿐 아니라 여가·건강·보험 같은 비지위재에 대한 소비를 축소시켜 삶의 질을 악화시킨다. 저자는 다양한 통계 자료를 인용해가며 소득 불평등이 노동·통근시간, 질병·사망·자살률 등과 비례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소스타인 베블렌이 19세기에 갈파했던 과시적 소비를 떠올리게 하는 지위경쟁과 지출의 연쇄작용은 단순히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순록이 사냥꾼과 육식동물의 좋은 표적이 돼 버리는데도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갈수록 뿔이 더 크고 화려한 방향으로 진화하듯이 말이다. 서로가 상대방의 군비확장에 위협을 느껴 국방예산을 증액해 나가는 연쇄작용도 전형적인 경우다.

또다른 대표적인 사례는 주택이다
. 미국에서 새로 짓는 주택의 건축면적 중간값은 1980년에 45평이었지만, 2000년엔 60평이 됐다. A씨의 친구가 스톡옵션으로 번 돈으로 60평 빌라서 90평 주상복합으로 이사갔다고 치자. 90평 주상복합은 이제 주택에 대한 A참조틀이 된다. A씨는 갑자기 자신이 사는 40평 아파트가 좁아 보인다.

결국 은행 대출을 받아(쉽게 말해 빚을 져서) 60평 아파트로 옮긴다. 이런 식으로 저소득층까지 연쇄작용이 일어난다. (한때는 넓은 아파트였던 24평형이 이제는 검소한존재가 된 것도 같은 이치다.) 더구나 평균 수준의 학교에 자녀를 보내기 위해서는 별 수 없이 빚을 내서라도 비싼 동네 비싼 주택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자기파괴적인 흐름을 제어하기 위해 어떤 공공정책이 필요한지 설명한다. 특히 그가 제시하는 대안은 조세·재정 정책과 관련해 매우 흥미롭다. 바로 '누진소비세'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국가가 나서서 저축과 투자를 강제해야

 사치품을 단속하는 건 효과가 없다. 금단추를 단속하면 사람들은 재빠르게 고급 상아 단추로 바꾸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1990년대 초반 비행기, 요트 등에 사치세를 부과했다. 그 결과 소비자들이 사치세 대상이 아닌 중고 요트 등 다른 사치품으로 눈길을 돌렸고 결과적으로 미국 조선업계는 대규모 감원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지위적 무한경쟁을 벗어나는 한 방법으로 국가가 나서서 모든 가계가 소득의 일부를 저축하도록 만드는 법정 규정을 둬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회보장제도도 그런 형태이긴 하지만 더 좋은 대안은 소비에 누진세를 적용하는 것이다. 세금을 부과해 해당 소비의 매력도를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142~145).

 누진소비세는 부가가치세가 아니다(149). 누진소득세와 매우 비슷한 구조라고 보면 이해가 쉽다(145). 차이가 있다면 누진소득세가 총수입에 대해 구간을 나눠 과세하는 것이라면 누진소비세는 총수입과 총저축액의 차액인 총소비액에 기초해 과세한다(145). 이렇게 하는 게 사회적으로 어떤 효과를 가져올까.

저자는 "부유층 납세자에게 누진소비세는 저택이 아니라 소형 주택으로 마음을 돌릴 강력한 동기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149). 더 중요한 점은, "소득에 대한 높은 한계세율과 달리, 소비에 대한 높은 한계세율은 저축과 투자의 동기를 장려할 뿐 아니라 실제로 두 가지를 증가시킨다"는 점이다(151).

 소비를 너무 제한하면 불황과 실업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저자는 소비에 지출하지 못하는 돈은 저축과 투자로 이어지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경제 생산능력은 더 좋아질 것이라고 본다(151~152). 저자는 불황에 대처하는 재정정책 면에서도 누진소비세 체계가 더 유리하다고 강조한다.

누진소득세 체계에서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소득세 감세를 감세하면 그 돈은 더 큰 주택을 구입하거나 더 많이 더 큰 물건을 사도록 이끌 뿐이다(153). 하지만 일시적으로 소비세를 감세하는 것은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다. 소비세 감세로 이익을 얻을 유일한 방법은 더 많은 소비를 하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152).

정부가 우리 세금을 어디에 쓰길 원하는가

 저자 역시 누진소비세 주장이 "공허한 정치적 구호에 불과해 보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한다(166). 하지만 누진소비세 개념은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담은 논문을 발표한 뒤 대표적인 시장자유주의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한테서 매우 우호적인 편지를 받았다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166).

 감세 정책과 4대강 사업의 폐해가 재정건전성 악화와 복지지출 억제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애초 호언장담했던 감세를 통한 소비진작이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건 '그들의 희망사항'이었을 뿐이다. 소비진작이라고 해봐야 결국은 더 큰 주택과 고급차, 더 비싼 소비재, 더 많은 사교육이 있을 뿐이다. 저자는 이런 소비가 중산층과 저소득층한테까지 지위경쟁을 강화함으로써 불평등을 강화할 뿐이라고 일갈한다.

감세로 인한 재정적자는 복지재정을 압박하고 기본적인 공공서비스를 악화시킨다. 저자는 이렇게 묻는다. "우리는 우리가 납부한 세금이 더 나은 교사, 더 나은 도로, 더 강화된 국가안보를 위해 쓰이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더 비싼 시계, 더 복잡한 가스그릴, 또는 더 큰 고급주택에 사용되기를 원하는가?(158)”

이 글은 <월간 좋은예산> 2011년 2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