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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안 날치기, 걸러야 할 것들과 잊지 말아야 할 것들(上)

예산생각

by betulo 2010. 12. 15.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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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3년간 내세울만한 업적이 뭐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한가지밖에 떠오르질 않는다. 바로 국민들에게 국가재정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국민들에게 뼈저리게 가르쳐준 은혜다.

 
개인적으로는 남북한 소득수준을 (하향) 평준화해 통일의 기반을 닦았다는 김영삼 전 대통령에 필적한다. 추위를 이기려 두 주먹 꽉 쥔 우리의 손발을 오그라들게 만든 그들의 예산안 날치기 통과는 국민들에게 또한번 엄청난 학습효과를 안겨다주었다.


 
먼저 간략한 경과를 살펴보자. 이명박 대통령이 2011년도 예산안을 정기국회 회기 종료일인 129일까지 통과시켜달라고 했다. 한나라당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계수조정소위원회에서 내년도 예산안 계수조정을 마치기도 전에 회의를 중단시켰다. 이주영 예결특위 위원장과 이종구 기획재정위원회 한나라당 간사, 기획재정부 예산실 관계자 등이 함께 밤을 새가며 벼락치기를 했다. 그리고 128일 야당 저항을 뚫고 통과시켰다.

 날치기 이후 여러 가지 후폭풍이 불고 있다.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에 책임공방이 벌어지고 영유아 예방접종 지원사업을 두고 진실공방이 일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보기에 2011년도 예산안을 둘러싼 여러 가지 논쟁 가운데 본질을 가리는 것들이 적지 않다. 또한 본질적인 내용을 외면하기 위해 덜 본질적인 내용만 부각시키는 것들도 있다.

 먼저 상황을 이렇게 만든 책임을 거론해야겠다. 책임은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에게 있다. 당초에 왜 9일까지 예산안을 통과시켜야 했는지부터 의문이다. 헌법상 어차리 122일 이후엔 위헌사태였다. 지난 8일 예산안을 통과시키고 나서 기획재정부가 내년도 예산안 특징 등을 설명하는 보도자료를 12일에야 냈다. 덕분에 예산안통과 다음날이면 신문마다 등장하던 새해 이렇게 달라진다기사를 스크랩할 기회를 놓쳐버렸다. 기재부 공무원들이 나흘 동안 얼마나 철야작업을 했을지 상상하긴 어렵지 않다.

 9일까지도 국회 홈페이지에선 내년도 예산안 관련 자료를 게시하지 않았고 같은 날 예산전문가 소리를 듣는 민주당 모 보좌관은 아무런 자료도 확보하지 못해 답답해 하고 있었다. 상황은 한나라당도 다르지 않았다. 곳곳에서 터지는 지뢰 막기에 급급했다. 졸속행정보단 차라리 뒷북행정이 낫다고 생각하는데 정부와 여당은 속도만 추구하다 사고를 친 셈이다. 조선일보가 11일자 기사 제목으로 뽑은 몸싸움만 잘했던 무능한 巨與’”는 정확한 지적이다.


국회의원들의 몸싸움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도 핵심을 심하게 왜곡하고 있다. 하다못해 초등학생 둘이서 주먹싸움을 하더라도 누가 먼저 '도발'을 했고 누가 '응전'을 했는지 구별한다. 북한이 연평도에 포격을 해서 한국군이 대응사격을 했는데 그걸 외신에서 '남북한이 교전했다. 똑같이 전투를 벌였다'고 하면 그게 제대로 된 분석인가. 몸싸움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국회의원들을 비하할 일이 아니다. 몸싸움을 해서라도 예산안을 통과시켜야 했는지 살피는게 먼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성회 의원은 자신이 조폭인지 국회의원인지 정체성을 확실히 밝혀야 한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10일 템플스테이, 재일민단,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 세가지 예산이 누락된 것에 대해 문책 의사까지 밝혔다. 이런 게 바로 전형적인 핵심을 가리는 연막전술이다. 그건 한나라당 대표의 정세분석능력 부족을 반증할 뿐이다. 절차상 문제를 제외하고 예산 자체만 놓고 보면 세가지 사업 예산을 깎은 것은 문제가 없다고 본다. 일단 템플스테이 지원사업은 예전부터 문제가 많았다(개선 시급한 불교예산 지원체계).

민단 지원도 감사원 지적을 받았던 사안이다. 전세계 재외동포가 700만명인데 왜 재외동포지원예산의 절반 이상을 민단에 쏟아부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사업은 국토해양부 타당성 조사에서 부적격 사업 판정을 받았다는데 이런 사업이 예산반영된다면 오히려 그게 더 문제다.

지역구예산 논란은 핵심을 살짝비켜났다

 지역구 챙기기 문제도 본질에 살짝비켜 서 있다. 한나라당에서 야당 실세도 예산 많이 챙겼다는 식으로 물타기하려 하는건 언급할 가치가 없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물론 이상득 의원의 형님예산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예산을 쌈짓돈으로 생각하는 실세들은 국가를 운영할만한 자질이 의심스럽다.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은 한 라디오방송 인터뷰에서 지역발전을 위한 예산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 예산의 68%가 영남지방에 배정된 걸 보면 과연 이게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예산인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예산편성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는데 정확한 지적이다. 지난 3년 동안 이상득 의원 지역구인 포항에 가져간 예산이 11000억원인데 이건 전형적인 도덕적해이.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자.

 모든 지역구 의원들은 자기 지역구에 한푼이라도 예산을 더 많이 배정받도록 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많은 유권자들도 그걸 바라고 투표를 한다. 특히 도로건설 등 각종 토건예산이나 특별교부세, 특별교부금 등이 대상이 된다. 이번 예산안처리가 특히 문제가 되는 건 게임의 규칙자체가 깨져버렸다는 측면도 있다. ‘형님예산을 규탄하는 한편에선 우리 지역은 홀대받았다.’는 전제가 숨어있다(국회의원 지역구 예산 챙기기가 문제?).

<또 파?>란 책에서 정광모씨는 국민들은 예산을 중앙의 힘 있는 사람이 가져다 주는 이권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에 “‘투명한 정부보다 내가 속한 지역과 집단의 이익을 앞세운다.”고 꼬집기도 했다(인문학 정신으로 파헤친 '예산 잔혹사'). 지금같은 소선거구 선거제도에선 국회의원이 사실상 서울에 파견된 지방의원이나 다름없다. 개인의 도덕심에 호소하는 건 언제나 공허하다. 결국 비례대표 대폭확대만이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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