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썼던 글을 분노와 서글픔을 느끼며 다시 올립니다. 원래 제목은 <예산안 처리 위헌사태 세가지를 눈여겨보자>였습니다. 재작년이나 작년이나 올해나, 한나라당은 어째 '국격'과 '친서민'과 '공정사회'에서 멀어지는 짓꺼리만 골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자께선 입이 너무 거친게 아니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만, 지금만큼은 분노를 날 것 그대로 표출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정부는 회계연도마다 예산안을 편성하여 회계연도 개시 90일전까지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전까지 이를 의결하여야 한다(헌법 제54조 2항).”
우리나라 헌법은 예산심의권을 국회에, 예산안 편성권과 집행권을 행정부에 부여합니다. 헌법 제54조 1항은 “국회는 국가의 예산안을 심의·확정한다.”라고 돼 있지요. 다시 말해 12월2일 이후 대한민국 국회는 위헌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세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1.
현 상황을 두고 정부-여당은 야당이 예산안 발목잡기를 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기기억상실증이 아니라면 최근 10여년간 국회가 예산안심의 기간을 얼마나 어겼고 원인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면 함부로 목소리를 높일 일은 아닐 겁니다.
1990년 이래 법정 시한을 지켜 예산안을 처리한 것은 다섯 번입니다. 다시 말해 15번은 헌법 위반이었지요. 그 중 12번은 정기국회 회기를 넘겨 임시회에서 처리했습니다.
당장 지난 정부 5년을 살펴 보시지요. 2003년에 다수당이 어디였습니까? 2004년부턴 다수당이 여당이었지만 해마다 제1야당이 예산안과 정치적 쟁점을 연계시키는 바람에 예산안심의가 늦어졌습니다. 대표적인 게 2004년이었지요. 4대개혁입법 반대로 남들이 종각 타종의식 보러 갈때 예산안심의 끝냈습니다. 심지어 대선이 끝난 2007년조차도 '어차피 정권 바뀔 텐데 왜 너네가 맘대로 예산안 편성했느냐'며 싸우다 처리시한 지났습니다.
2.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은 아래 표에서 보듯이 291조원이나 됩니다. 아무리 전체 예산 가운데 상당액이 감액이 불가능한 경직성 예산이라고 하더라도 291조원은 간단한 액수가 아닙니다.
(조원, %)
|
’09 |
’10안 (B) |
| |
증감율 (B/A) | ||||
본예산(A) |
추경 | |||
◇ 총지출 |
284.5 |
301.8 |
291.8 |
2.5 |
ㅇ 예 산 |
204.1 |
210.3 |
202.8 |
△0.6 |
ㅇ 기 금 |
80.4 |
91.5 |
89.0 |
10.6 |
당장 4대강사업 예산만 해도 제대로 검증하려면 며칠씩 밤을 새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글 서두에 언급한 헌법 구절을 보십시오. 국회가 예산안을 심의할 수 있는 기간은 60일 뿐입니다. 이건 명백하게 행정부 편향입니다. 헌법 제57조 “국회는 정부의 동의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는 구절에 가면 이런 편향이 더 눈에 띄지요. 외국 사례를 보면 이런 차이가 더 도드라져 보입니다.
<주요국 의회의 예산심사기간>
구 분 |
미 국 |
영 국 |
프랑스 |
일 본 |
한 국 |
심의기간 |
240일 |
120일 |
70일 |
60일 |
60일 |
일본도 60일이라고 하실 지 모르지만 일본은 의원내각제라는 점을 고려해야 하고, 또 일본 역시 관료 중심 행정이라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프랑스도 관료 중심 행정이 발달한 국가이지요. 가카를 비롯해 한국에서 보수를 자임하는 분들이 금과옥조로 삼는 미국을 주목해 보면 의미는 분명합니다. 미국은 1년 내내 예산안심의를 하고 있는 겁니다.
3.
예산안 처리시한을 넘기자 몇몇 언론매체에 예산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는 사진을 내보냈습니다. 말 그대로 ‘산더미’ 예산안이지요.
여기서 한가지 놓치는 게 있습니다. 바로 왜 이렇게 종이문서로 돼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해답은 상당부분 “정부가 전자문서로 주지 않고 종이문서로 준다”는 데 있습니다.
국회의원들한테 정부예산안을 메일로 받아보려고 여러차례 요청을 해봤는데 가장 자주 들은 대답이 행정부에서 전자문서로 주질 않는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일단 전자문서로 주게 되면 언론에, 시민단체에 금방 금방 유통됩니다. 관심있는 시민들이라면 정부 예산안을 꼼꼼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지요.
종이책으로 보내면 그럴 위험이 줄어듭니다. 더구나 방대한 예산안 내역 때문에 한 부처의 예산안 자료만 해도 두꺼운 책자로 여러권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선 국회에서 예산안 분석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당장 검색도 힘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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