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는 경기 진작의 일환으로 필요합니다. 세계는 지금 ‘낮은 세율이 국가 경쟁력’이라는 인식으로 세율 인하 경쟁을 펼치고 있습니다. … 내년에 13조원 수준의 감세를 통해 가처분 소득을 늘리고 투자를 촉진할 것입니다.” (2009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제출에 즈음한 대통령 시정연설)
“무리한 과세 탓에 부자들이 지갑을 닫으면 결국 서민의 일자리 기회와 소득이 줄어든다.” (동아일보 08/09/26 사설)
“양극화와 빈부격차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우리 주변을 볼 때 이번 세제개편은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게 한다.” (한겨레 08/09/02 사설)
담론은 다양한 단어와 결합해 사용된다. 신자유주의 담론, 영어담론, 교육담론, 반공담론, 청소년담론, 외환위기 담론 등 그 예는 무수히 많다. 담론은 또 이데올로기, 학설, 모델 등과도 호환되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가령, 반공담론과 반공이데올로기는 거의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 ‘공정사회’ 담론과 ‘공정사회’론도 유사한 의미로 인식된다. 그러나 담론의 다양한 쓰임과 혼재에도 불구하고 ‘역사성과 정치성’이라는 측면에서 담론이 갖는 공통된 특성이 있다.
먼저 특정 담론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것은 이들 담론이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전략적’으로, ‘집중적’으로, ‘필요하게 되는’ 시대적 상황이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담론이 처음 본격적으로 생산되고 확산된 배경에는 프랑스의 이집트 점령과 통치의 필요성이 있었다. 그 이후에는 중동 지역에 대한 미국 패권 유지라는 필요성 때문에 이 담론이 국제적으로 확산되었다.
담론이 가진 또 다른 중요한 특성은 정치적 효과 또는 목적을 위해 ‘의식ㆍ무의식적’으로 생산되고 유통된다는 점이다. 즉 담론은 피지배계급의 동의를 얻거나,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거나, 반대세력에 대한 적대적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특정한 프로젝트에 대한 일반인들의 참여를 높이는 등의 정치적 목적을 갖는다.
사실 행정학이나 정책학에서 담론분석은 낯선 영역이다. 더구나 예산문제를 담론분석하는 건 국내에선 선행연구가 없다. 하지만 정책도 하나의 담론이라고 본다면 정책을 담론분석한다는 것이 어색한 조합은 아니다. 더구나 예산문제는 정책 우선순위와 정치적 지향점에 따라 전혀 다른 담론이 나타난다. ‘부자감세’ 담론이 대표적이다.
‘부자감세‘ 담론에는 ’감세정책에 대한 입장(position), 정부에 대한 관점(perspective), 프레임(frame), 정치적 후원세력’ 등이 결합되어 있다. 그리고 국민의 우호적 여론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불가피한 민주주의 정치시스템에서 이러한 담론의 구조는 미디어담론을 분석함으로써 효과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 먼저 감세정책에 대한 입장은 특정 기사의 주요 주장과 근거가 이 정책을 수용하는가 또는 거부하는가에 따른 구분을 말한다.
감세정책에 대한 특정한 입장이 표명되지 않고 “추가적인 협의” “여야간 절충” 또는 “양시양비론”일 경우 특정한 입장이 없는 중립으로 파악할 수 있다. 정책담론이 아닐 경우 정부에 대한 관점은 흔히 언론의 이념적 성향 등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부자감세의 경우 정부의 정책에 대한 ‘찬성, 비판, 관망’ 등의 보도논조가 명백히 드러나는 경우가 많으며, 이런 점에서 정부에 대한 관점 자체를 하나의 구성요소로 구분할 수 있다.
프레임을 논리적 일관성을 갖는 일종의 인식틀이라고 정의할 때, 특정 프레임에 내포되어 있는 ‘진단정보’와 ‘처방정보’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갖는다. 즉 감세정책을 논리적으로 비판함으로써 감세정책의 수정 또는 폐기를 요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정교하게 구성된 ‘양극화’ 프레임에서는 “부유층의 세금을 추가적으로 감면해야 한다” 또는 “흔들림 없이 감세정책을 밀고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포함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감세정책이 경기회복과 서민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근거와 주장으로 구성된 ‘낙수효과’ 프레임에서 “부자를 대상으로 세금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 된다.
프레임에 내포된 논리적 일관성을 통해 국민들은 ‘이성적’으로 설득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며, 그 결과 특정한 정책이나 이슈에 대한 여론이 형성된다. 동아일보, 서울신문, 한겨레, 매일경제 4개 신문을 대상으로 ‘부자감세’ 담론이 본격 등장한 2008년 1월 1일부터 2010년 11월 20일까지 부자감세 기사를 분석해봤다. ‘기획, 분석, 해설, 칼럼, 사설’을 위주로 샘플을 수집했으며, 단순사실을 전달하는데 그친 스트레이트 기사는 배제했다. 담론 진화과정을 중심으로 생성기(2008년), 도약기(2009년), 확산기(2010년 1월~11월20일)로 구분했다.
<표> ‘진단’ 프레임
입장 |
프레임명칭 |
핵심 내용과 함의 |
수용 |
양극화 |
-부자감세로 인해 소득재분배 악화, 양극화 초래 -부자감세는 극소수 부자들에게만 이득, 서민에게 고통전가 |
재정건전성 |
-부자와 대기업을 위한 막대한 감세로 인해 재정적자 급증 -‘친서민정책’으로 인한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 | |
중립 |
정쟁 |
-여야가 갈등과 싸움만 벌여 경제위기 극복 등한시 |
거부 |
정책일관성 |
-감세정책은 현 정부가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던 국민과의 약속 -감세정책 안 지키는 것은 정책신뢰성 훼손 |
낙수효과 |
-감세정책 통해 투자와 소비 늘어 경기활성화, 서민 이익 -세금 더 많이 내는 부유층이 감세 혜택 많은 건 자연스런 현상 | |
포퓰리즘 |
-정부가 인기 연연하는 포퓰리즘에 빠져 감세정책 유보 -일부 정책반대세력의 ‘낙인찍기’ 때문에 감세정책 본질 훼손 |
<표> ‘처방’ 프레임
입장 |
프레임명칭 |
핵심 내용과 함의 |
수용 |
증세 |
-부자감세가 아니라 부자증세 통해 복지지출 확대해야 -양극화 해소 위해서는 부자한테 세금 더 거둬야 |
복지강화 |
-감세정책으로 인한 국민 피해 막기 위해서는 복지 지출강화해야 -낙수효과 효과 부정적인 만큼 서민대책 강화해야 | |
중립 |
절충 |
-부작용 완화 위해 속도조절 필요 -소득세 감면은 유보하고 법인세 감면은 예정대로 시행해야 |
거부 |
지출통제 |
-감세정책으로 인한 재정건전성 악화. 재정규율 강화해야 -친서민정책으로 인한 재정건전성 악화 막아야 |
감세지속 |
-경기활성화와 서민 이익 위해 감세정책 지속 추진 -국민과 했던 약속인 만큼 정책신뢰도를 위해 감세정책 펴야 |
연구문제1: ‘부자감세’에 대한 미디어담론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연구문제2: 미디어에서 ‘부자감세’ 담론은 생성기, 도약기와 확산기를 거치는 동안 어떤 변화 과정을 거치고 있는가? 즉 부자감세를 둘러싼 미디어담론의 생산규모와 프레임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연구문제3: 감세정책을 둘러싼 정치적 경쟁은 어떤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는가? 즉 감세정책을 둘러싸고 언론매체의 정치적 입장은 어떻게 드러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전문적 의견제공자’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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