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예산안 날치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본질적인 부분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언급하고 싶은 건 정부와 한나라당의 복지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는 점이다.
한나라당과 진보신당 사이에 ‘삭감’이 맞냐 틀리냐 논쟁이 있었지만 ‘삭감’이 아니라 깎였다는 표현을 써도 본질은 어차피 마찬가지다. 친서민은 목도리 풀어주는걸로 되는게 아니다. ‘70% 복지’라는 구호로 되는 것도 아니다. 영유아예방접종사업이나 양육수당 청소년 공부방 예산삭감에서 ‘예산없는 정책은 말대포에 불과하다’는 평범한 진리가 다시 드러난다.
국가지도자의 '사랑'과 '온정'만으로 복지국가가 된다면 북한은 옛날에 '지상낙원' 됐을껄 ㅎㅎㅎ
영유아 필수예방접종 사업을 보자. 애초에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정부안이 320억 5600만원이었다. 2010년도 예산 379억 3800만원보다 60억원 가까이 줄어들었다. 방학중 결식아동 급식 국비지원도 2009년 542억, 올해 203억에서 내년도 예산에선 0원이 됐다.
정부가 복지예산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보다 더 잘 드러나는 사례는 없을 것이다. 한나라당도 다르지 않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여야 합의로 증액시키기로 해놓고도 정작 최종적으로는 정부안을 따라가 버렸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거기에 쓸 돈’이 없는거다.
이미 몇 달 전부터 문제제기가 잇따랐다. 진보신당은 10월5일 <2011년 정부예산안, 과연 친서민 예산인가>란 정책자료를 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정부 예산안 309조 6천억원 중 복지예산이 86조 3천억원”으로 전체 정부예산 증가율이 5.7%인 반면 복지예산 증가율은 6.2%라고 정부가 자랑하지만 실제 자연증가분과 주요 법정의무지출 예산 4조 1,485억원을 제외하면, 실제로 내년도 복지재정 증가분은 정부가 밝힌 5조 248억원에 한참 못 미치는 8,763억원에 그치며, 그 증가율은 1.1%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2011년 예산안 복지재정 중 정책의지반영예산 증가율」
구분 |
2010년 |
2011년(안) |
증가비 |
자연증가비 및 법정의무지출비 |
실제 증가비 |
예산 |
81조 2,464억원 |
86조 2,712억원 |
5조 248억원 (6.2%) |
4조 1,485억원 |
8,763억원 (1.1% 증가) |
<2011년 복지재정 세부내역>(단위: 조원)
구 분 |
’10예산 |
’11(안) |
증감 |
자연증가분 및 법정의무지출 부분 |
기초생활보장 |
73,045 |
75,240 |
2,195 |
법정의무지출 |
공적연금 |
259,856 |
281,967 |
22,111 |
자연증가분 |
보육‧가족‧여성 |
23,693 |
28,713 |
5,020 |
× |
노동 |
122,935 |
126,671 |
3,736 |
실업급여 자연증가분 (112억원;33,660→33,772) |
보훈 |
36,093 |
37,771 |
1,678 |
× |
주택 |
167,162 |
180,402 |
13,240 |
융자 사업 |
노인‧장애인등 |
56,377 |
57,182 |
805 |
기초노령연금 자연증가분 (1,016억원; 27,236→28,252) |
보건․의료 |
73,303 |
74,766 |
1,463 |
건강보험가입자지원 법정의무지출 (2,811억원;48,614→51,425) |
합계 |
812,464 |
862,712 |
50,248 |
41,485 |
참여연대도 11월8일 <2011년 정부 예산(안) 5대 문제점> 자료에서 정부가 복지예산사업을 삭감한 문제를 지적했다. “전반적으로 사업별 예산을 약간씩 늘리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이는 착시효과에 불과함. 정부는 물가상승률, 최저생계비 인상률 등 필연적으로 인상될 수밖에 없는 지원 단가로 인해 지원 대상자수를 줄이고 있”다는 것이다.
<표2> 2011년 보건복지부 예산(안) 중 주요 감액예산 (단위: 백만원) | ||||
구분 |
2010 예산 |
2011 예산(안) |
감액 | |
기초생활 생계급여 |
2,449,192 |
2,445,969 |
△ 3,223 |
△0.1% |
양곡할인 |
110,766 |
99,690 |
△11,076 |
△ 10.0% |
재산담보부 생계비 융자 |
3,844 |
3,408 |
△ 436 |
△11.3% |
저소득 장애인 자녀학비 지원 |
1,021 |
919 |
△102 |
△10.0% |
경로당 난방비 지원 |
4,100 |
0 |
△4,100 |
순감 |
노인일자리 확충 |
35 |
25 |
△10 |
△28.6% |
노인요양시설 확충 |
58,642 |
51,419 |
△7,223 |
△12.3% |
|
영유아 예방접종 지원을 339억 증액하자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여야합의한 것이 왜 다시 정부안으로 원점 회귀했을까. 기재부는 “현재 누구나 보건소를 통해 무료로 예방접종 받도록 지원 중”이며 “민간병의원을 이용하는 경우에도 백신비(회당 8천원)는 면제받고 접종행위료(회당 1만5천원)만 부담하면 되도록 지원하고 있으며 전체 영유아의 45%가 보건소에서 무료로 접종받고 있으므로 서민들에게 실질적으로 지원이 되고 있음”이라고 밝혔다.
진보신당이 12월10일 낸 자료에 따르면 질병관리본부는 애초에 민간병의원에서 예방접종할 때 부모 부담이 현행 70%에서 10% 수준이 되도록 총 675억원의 예산(건강증진기금 사업)을 기획재정부에 요구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추가 지원 예산 전액을 삭감시키면서 올해 예산 203억원보다 더 적은 144억원만 책정했다. 현재 국가 필수 예방접종(8종, 22회 접종)은 보건소에서 무상으로 공급하고 있지만 민간병의원은 30%만 지원한다.
실제 애를 키워보면 이게 굉장히 예민한 문제다. 무엇보다 직장을 다니는 엄마들은 보건소에 가고 싶어도 출퇴근 시간 때문에 보건소를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접근성도 떨어진다. 인구 40~50만명당 보건소가 한 곳에 부과하기 때문이다. 신생아에서 2세까지 이뤄지는 기초예방접종률은 90% 이상이지만, 추가접종을 포함한 완전예방접종률은 59.5%에 불과한 실정이다. 보건소 시설 확대에 힘쓰지도 않으면서 보건소 핑계 대는 건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
●의지부족과 철학부재의 끔찍한 이중주
정부와 여당은 의지도 부족할 뿐 아니라 철학도 부재하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단기처방에만 급급할 뿐 본질적 대책인 국공립보육시설 확충을 외면한다. 이런 ‘복지철학 부재’를 보여주는 지표가 바로 내년에 확충하려는 국공립보육시설이 10곳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나도 그렇지만 대다수 학부모들이 국공립어린이집이나 국공립유치원을 선호한다. 그런데 국공립어린이집 신축수는 이명박 정부 들어 2008년 50개, 2009년 38개, 2010년 10개소, 2011년 10개소로 해마다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한국의 국공립보육시설 비중이 전체 보육시설 가운데 5.5%에 불과하고 공립대기자수는 16만명이나 되는데도 이렇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부청사 어린이집이나 국회 어린이집에 한번이라도 가봤다면 왜 학부모들이 국공립어린이집을 원하는지 알 것이다. 그곳은 영유아보육법이 규정한 대로 시설이나 인력과 예산을 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곳들은 한국에서 가장 우수한 보육시설이기도 하다.
바꿔 말하면, 우리나라 대다수 어린이들은 법이 규정한 것보다도 열악한 환경에서 크고 있다. 정부는 ‘공공형 보육시설’을 강조하지만 이건 인증제도다. 서울형 어린이집과 다를게 없다. (“평가인증제 보육노동자만 고생한다”)
●귀찮은건 지방에 떠넘기기
세 번째로 꼬집을 부분은 ‘지역에 떠넘기기’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면서 지방분권이나 지방자치란 이름으로 귀찮고 번거로운 건 지방에 떠넘기는 행태를 보여왔다("참여정부 복지분권화는 실패작" 보육예산 지자체별 양극화 극심).
대표적인 것이 노무현정부 당시 지방분권이라며 복지사업을 대폭 지방사무로 바꾼 것이다. 덕분에 제일 먼저 나타난 현상은 지자체에서 노인 장애인 지원예산을 깎는 것이었다. 논란이 되는 ‘방학중 결식아동 급식지원’이 딱 이 경우다.
기획재정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동 사업은 '05년 분권교부세 도입시 지방이양된 사업이나'09년 및 ‘10년의 경우에는 경제위기에 따라 각각 542억원, 203억원을 한시적으로 국비 지원한 바 있음”이라며 정부예산안 원안을 유지한 이유에 대해 “작년 예산심의시 예결위 부대의견으로 ’10년 국비 한시 지원키로 명시된 사업임. ‘11년에는 경제위기 이전대로 각 지자체에서 전체 결식아동 급식 소요를 편성하여 차질없이 지원할 계획(내년 지자체 예산에 3,105억원 기편성)”이라고 주장했다.
(한시적이라며 예산삭감하는 것에 대해서는 독일법원 판결 통해 임시투자세액공제를 생각한다 참조)
그럼 실제 지방에서 나타나는 양상은 어떨까. 국민일보 14일자 기사에 따르면, “전라남도의 경우 중앙정부의 국비지원이 전액 삭감하면서 전남도가 현재 확보한 올 겨울 방학기간 결식아동에 대한 급식예산은 30억3천만원으로 소요 예산의 절반에 불과하다. 이 돈으로는 도내 결식아동 2만2천700명의 49.3%인 1만1천200명만이 급식 지원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다른 곳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부산시도 올 겨울방학기간동안 필요한 급식비용 50억원 가운데 37억원만 마련한 상태다. 부산시는 지난 여름방학 기간동안 2만6202명의 초중고교생 결식아동에게 모두 49억8천만원을 지원했었다. … 경기도 역시 내년도 도와 31개 시·군의 결식아동 급식예산 662억원중 국비 지원분 43억원을 제외한 619억원만 편성한 상태다. 도는 국비 지원이 없을 경우 다른 예산을 전용하는 방법으로 급식예산을 집행한다는 계획이다.”
청소년 공부방 운영지원사업 전액삭감도 내년부터 지방이양사업이라는 이유에서다. 올해 예산 28억 9900만원이었는데 과연 지자체가 내년부터 얼마나 청소년 공부방에 예산을 배정해줄지 의문이다.
결국 지자체 의지와 예산여력에 따라 천차만별이 될 수밖에 없는데, 이건 균등한 교육기회를 명시한 헌법에 대한 도전이나 다름없다. 국회 예결특위조차 검토보고서에서 “지방재정 상황을 고려했을 때 운용 비용 전액을 지자체가 부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를 ‘행동대원’으로 전락시킨 한나라당
복지예산 삭감 논쟁은 국회와 정부 가운데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보여준 점에서도 흥미롭다. 양육수당 문제를 보자. 정부는 올해보다 241억 증액한 898억원을 정부예산안으로 국회에 제출했다. 이에 대해 국회 복지위원회는 지원대상을 차상위 이하에서 소득하위 70%로 확대하기 위해 2,744억원을 추가 증액했다. 여기까지는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천명한 ‘70% 복지’에 부합한다. 하지만 결국은 정부원안대로 돼 버렸다.
기재부는 이에 대해 “내년도 보육 예산은 무상보육 확대(전체가정의 50%→70%) 등 정부안에서 이미 금년보다 대폭 확대”됐다면서 “보육료지원 확대로 지방재정 부담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양육수당까지 추가 확대할 경우 지방재정의 어려움 가중 우려… 향후 양육수당 지급대상 확대는 정책효과 등을 고려하여 단계적 추진 필요”라고 주장했다.
김성회 의원은 아무래도 직업을 잘못 택하신듯
기재부가 지방재정 걱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앞에서 언급했지만 예산을 최종적으로 심사하고 편성하는 곳이 국회라는 헌법조항조차 무시하는 발상이 놀라울 뿐이다. 더구나 한나라당은 대통령이 시키는대로 서두르다가 이런 상황을 초래했으니 기재부한테 무시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대통령은 반대의견 듣기를 싫어하고 한나라당은 대통령이 시키는대로 한다. 대한민국 국회의 슬픈 초상화다.
기획재정부, <국회에서 확정된 2011년 예산 주요내용>, 2010.12.12.
진보신당, <정책브리핑: 2011년 ‘보육 및 저출산 부문’ 예산 분석> 2010.11.25.
진보신당, <2011년 날치기 통과된 복지 예산안, 국회 복지위 증액안 중 전액 삭감된 복지 예산만 무려 80개!>, 2010.12.10.
참여연대, <2011년 정부 예산(안) 5대 문제점>, 2010.11.08.
진보신당, <복지예산 전액삭감 한나라당의 반박, 근거없다>, 2010.12.11.
세금폭탄과 부자감세 (0) | 2010.1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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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감세' 담론의 구조와 역사, 정치성 (0) | 2010.12.15 |
예산안 날치기, 걸러야 할 것들과 잊지 말아야 할 것들(上) (1) | 2010.12.15 |
MB정부, 영유아 예방접종지원예산 400억도 전액삭감 (5) | 2010.12.09 |
20년간 15번 예산안처리 지연시키던 한나라당...올해는 날치기 (10) | 2010.1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