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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생각

독일법원 판결 통해 임시투자세액공제를 생각한다

by betulo 2009.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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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는 통일연대세라는 게 있다는 걸 아시나요? 통일 이후 옛 동독지역 재건을 위해 걷기 시작한 임시세금에서 출발한 게 바로 통일연대세입니다. 문제는 ‘임시’가 더 이상 ‘임시’가 아니게 되었을 때 발생합니다. 최근 이 세금에 대해 독일 한 지방법원이 연방헌법재판소에 위헌제청을 했다고 합니다. 통일연대세 사례를 통해 ‘임시’ 세금에 대해 간략히 언급해 보고자 합니다.


독일 정부가 일시적인 필요에 따른 임시세금제도를 도입한 뒤 20년 가까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자칫하면 수천억 유로를 국민들에게 환급해줘야 할 상황에 처했습니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11월 25일(현지시간) 니더작센주 경제법원이 독일 통일 이후 옛 동독지역 지원을 위해 일시적으로 도입했던 ‘통일연대세(solidarity tax)’가 장기적인 세금으로 성격이 바뀌었다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니더작센주 경제법원 게오르기아 가스카르트 판사는 최근 한 납세자가 “통일연대세는 위법”이라고 제소한 소송에서 “통일연대세는 통일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임시로 도입한 보완세였다.”면서 “하지만 장기적인 추가부담을 용납하지 않는 헌법에 반한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앞으로 헌법재판소가 위헌심판청구에 대해 니더작센주 경제법원의 판단을 인정할 경우 경기침체와 대규모 부양책 때문에 가뜩이나 늘어나 있는 재정적자가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이는대요. 헌법재판소 판결까지는 대략 1년 가량 걸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와 관련, 헌법재판소는 1954년 통일연대세같은 추가 세금은 일시적인 재정 수요가 있을 때만 도입해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죠. 

슈피겔 보도
에 따르면 독일은 통일 이듬해인 1991년 개인소득세와 법인세의 7.5%를 1년 기한으로 추가징수했다가 1992년 폐지했습니다. 하지만 이 세금을 1995년 다시 도입해 지금까지 시행하고 있죠. 세율은 1998년부터 소득세나 법인세의 5.5%로 낮아졌고요. 독일은 통일 이후 20년 동안 옛 동독지역에 1조 유로(1741조원) 이상의 예산을 지원했으며 이중 1850억유로는 통일연대세를 통해 거둬들인 것입니다.

위키피디아에서 독일 세금제도를 검색해보니 “소득세의 5.5% 비율로 추가부담하는 이른바 연대세(Solidaritaetszuschlag)”에 대한 항목이 나옵니다. 만약 당신의 소득세율이 25%라면 여기에 연대세율 5.5%를 추가부담한다. 결국 최종소득세율은 25*5.5=26.375(%)가 됩니다.

우베 뮐러가 쓴 <대재앙 통일>(이봉기 옮김, 2006, 문학세계사)에 따르면 통일 당시 재정을 마련하는 방법은 재정지출 축소, 세금인상, 부채에서 충당 세 가지가 있었는데 서독 정부는 당장 편한대로 부채에서 끌어다 통일사업 재원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서서히 재정압박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1991년 4월 실업보험 납입액이 상승하더니, 1994년 1월에는 연금보험금이 상승했다. 1991년 3월에는 걸프전을 핑계로 전후 사상 최대의 세금인상이 취해졌고, 1994년 유류세가 도입되었다. 1992년 시한이 만료되어 폐기되었던 특별세인 '연대세(Solidaritatszuschlag)'가 1995년 다시 부활되어 무기한으로 연장되었고, 현재 소득세의 5.5%를 차지하고 있다(163~164쪽).”

임시세금 계속거두면 위헌? 그럼 임시보조금 계속 깍아주는건?


상황은 명확해 보입니다. 임시로 거둔 세금을 백년만년 계속한다면 원칙을 어긴 것이 되지요. 정치적판단만 아니라면 위헌판결이 나오는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듯 합니다. 제가 보기에 한국의 ‘임시투자세액공제’ 역시 역설적인 의미에서 통일연대세와 비슷한 사례입니다.

임시투자세액공제란 1982년에 ‘임시’로 도입됐습니다. 그리고 2009년인 지금도 ‘임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애초 목적은 “경기조절 등 특정 목적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 기업이 기계장치, 설비 등 사업용 고정자산을 신규 구입할 경우 투자 금액의 일정액을 각 과세연도의 산출세액에서 감해주는 제도”입니다. 지금은 그냥 기업에 대한 ANYTIME 보조금입니다. 경기조절 기능을 제대로 하느냐 하면 임주영(2004), 김유찬(2004), 박기백 외(2006) 등 많은 연구에서 효과없음으로 밝혀지기도 했지요(국회예산정책처, 2009: 86).

다행히 18년만에 ‘임시’가 끝날 예정입니다만 국회와 재계를 중심으로 ‘임시’를 더하자는 주장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아마 “법과 질서”를 중시하는 정부니까 “표를 의식하지 않는” 결정을 내리겠지요.

국회예산정책처(2009: 86)는 ‘임시’투자세액공제를 저 세상으로 보내주는게 합당하다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고 있습니다.

첫째, 경기조절을 목적으로 도입했는데 백년만년 운용하는 건 안맞다. 애초 목적대로라면 불경기에 임시로 운영해야 하는데 실질성장률이 높은 시기에도 세금을 깎아주는 등 경기상황과 무관하게 유지하고 있어서 경기조절 효과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둘째, 제도 목적 자체가 경기가 하강기에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으며, 경기호황이나 경기회복 시기에는 오히려 경기상황을 가열시킬 수 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11월 발간한 <비과세․감면제도 운용현황 및 개선과제> 보고서에서 언급한 내용을 발췌 요약해 보겠습니다.


임시투자세액공제로 2008년 거둬야 할 세금을 걷지 않은 액수만 해도 2조 1035억원이나 됩니다. 임시투자세액공제로 혜택을 보는 건 기업 중에서도 대기업이 대부분이죠. 2007년 임시투자세액공제에 대한 법인세 신고현황을 보면 중소기업이 감면받은 건 15.8%인 2764억원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 84.2%(1조 4774억원)는 누가 감면받았을까? 당연히 삼성, 현대, LG, SK... ‘일반기업’들이 받았습니다. 대기업들이 받는 세금감면 금액의 48.8%를 임시투자세액공제가 차지합니다.

왜 이렇게 될까요? 임시투자세액공제 등 조세특례제한법상 세액공제 항목의 경우 개인당 신고금액이 종합소득금액 4600만원 이하인 과표구간에서는 매우 작은 반면 8800만원 초과구간에서는 그 금액이 월등히 높아집니다. 다시 말해 부자에게 유리한 제도입니다.

<참고문헌>

국회예산정책처, 2009, 『2010년도 예산안 분석』1권.

국회예산정책처, 2009, 『비과세․감면제도 운용현황 및 개선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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