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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시민의신문 기사

농성 6개월 명동성당 이주노동자들 (2004.4.22)

by betulo 2007.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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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는 노예가 아니예요”
농성 6개월 명동성당 이주노동자들
2004/4/22
강국진 globalngo@ngotimes.net

“네팔인 동지가 출입국관리소에 끌려가서 강제추방당했을 때 방글라데시 동지들과 한국 동지들이 네팔 동지들보다 더 많이 슬퍼하며 우는 것을 보고 우리가 똑같은 노동자라는 마음이 들었다.”

 

명동성당 들머리 한쪽에 작년 11월부터 농성텐트 4동이 들어섰다. 22일이면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이 농성을 시작한지 1백60일이 된다. 지난 21일 아침 10시 명동성당 들머리에는 농성중인 이주노동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식빵과 우유로 아침을 먹고 있었다. 들머리에서 만난 쉬디 바랄(네팔, 아래사진)은 “원래는 8시가 기상시간이지만 요즘은 많이 지치고 힘들어서 잘 안지켜지는 경우도 있다”고 귀뜸한다.

 

쉬디는 대학을 졸업하고 중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산업연수생으로 96년 한국땅을 밟았다. “도착한 다음날부터 주야 2교대로 하루에 12시간씩 일했다”는 그는 “일이 너무 고되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브로커에게 낸 거액의 돈을 갚아야 한다는 맘에 노예처럼 일했다”고 회상했다. 그나마 일하던 공장은 IMF 때 부도가 났다. 쉬디는 “당시 비자 기간이 6개월 남아 있었지만 미등록이주노동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서울에 올라와 한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틀 정도 일하고 나면 ‘다음주에 돈을 받으러 오라’고 한다. 그 말 믿고 다음주에 돈 받으러 가보면 아무도 없는 경우를 숱하게 당했다.”

 

쉬디는 “강제단속추방이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걸 정부도 잘 안다”며 “정부가 전혀 대화에 응하지 않는 것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고용허가제에서 4년을 기준으로 불법과 합법을 나눈건 말도 안된다”며 “도대체 기준의 근거가 뭐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한국은 발전된 나라라고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은 기계나 동물처럼 취급받는다. 진짜 민주주의 국가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는 말과 함께.

 

명동성당 농성단은 현재 50명이다. 처음 시작할 땐 80명이었고 최고 1백명까지 늘기도 했다. 농성비용은 처음엔 갹출해서 충당했지만 지금은 시민노동단체와 일반 시민들이 모금해준 돈으로 운영한다고 한다.

 

이들은 네팔,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사람들로 이뤄져 있다. 문화차이로 오해가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재미있는 일도 많다. 고국의 언어와 전통민요를 서로 가르쳐주기도 한다. 교대로 맡는 식사당번은 고향음식을 만들어 서로 대접한다.

 

이날 식사당번인 하솀(방글라데시, 오른쪽사진)은 농성텐트 한쪽에서 점심 준비에 한창이다. 하솀은 “오늘 요리를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닭고기 카레”라며 “기자님도 점심 먹고 가라”고 권한다. 그는 돈을 벌어 방글라데시에 있는 8명의 식구들을 부양하고 기술도 배우려고 빚을 내서 95년에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왔다.

 

“죽어라고 일해서 3년만에 빚을 다 갚았지만 돈을 모을 순 없었다”는 하솀은 결국 공장에서 도망쳐 여러 공장을 전전해야 했다. 그나마 지난해 불법체류자 단속으로 퇴직금도 못받고 쫓겨나야 했다고.

12시가 되자 농성장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농성단에게 비디오 카메라 사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농성단은 교대로 카메라를 들고 자신이 담고 싶은 장면을 담는다.

 

마숨(방글라데시, 왼쪽사진) 평등노조 이주지부 의정부․일산 대표는 “이주노동자들이 선전활동에 활용할 수 있도록 시민선전방법을 교육하고 있다”며 “카메라 사용법, 효과적인 시민선전 방법, 기자회견에서 자기 주장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법 등을 배운다”고 알려줬다.

 

이들은 오후가 되면서 4-5명씩 조를 이뤄 지역을 돌며 지역선전에 나선다. 명동성당 농성단은 최근 지역선전․조직화를 중심으로 활동방향을 조정했다.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민주노총 산하에 전국이주노동자노동조합을 건설한다는 복안이다.

 

지난 96년 브로커에게 1천1백만원을 주고 관광비자를 얻어 한국에 온 마숨은 “한국정부는 말로만 글로벌시대를 외친다”며 “한국이 이주노동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당장이라도 떠나겠다”고 강조했다.

 

지역선전에 나서려고 준비하던 텐진(네팔, 오른쪽사진)은 “죽음으로 강제추방에 저항한 동지들을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위협받는 이주노동자2세 건강권

불법체류자 신분인 한 몽골인 부부는 지난 3월 미숙아를 출산했다. 단속추방 때문에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루에 몇십만원이나 드는 인큐베이터 치료비를 감당하기가 힘든 이들 부부는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외국인노동자의료공제회에는 요즘 부쩍 미숙아 출산관련 상담요청을 많이 받는다. 작년 한해만 산부인과 관련 상담이 의료공제회 전체 상담의 38.6%나 됐다.

 

김미선 외국인노동자의료공제회 사무처장은 열악한 근무조건과 과도한 스트레스를 잦은 미숙아 출산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김 사무처장은 “이주노동자 대부분이 제조업에서 일하기 때문에 장시간노동에 시달린다”며 “산전산후휴가는 꿈도 못꾸고 임신사실조차 숨겨야 하는 경우도 많아 스트레스도 심각하다”고 말했다.

 

여성이주노동자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한국사회의 뿌리깊은 배타성이다. 시민사회라고 예외는 아니다. 김 사무처장은 얼마전 후원단체에서 “일하러 온 외국 사람들이 왜 애를 낳느냐”는 얘기를 듣고 황당했던 경험이 있다. 그는 “복지재단에서도 ‘산업재해는 지원해줘도 미숙아 문제는 여력이 없다’며 난색을 표하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전체 이주노동자 가운데 여성은 35% 가량으로 추정된다. 이주노동자의 60% 가까이가 20-30대라는 점과 이주노동자 사이에 생계형동거도 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앞으로 이주노동자2세들의 건강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김 사무처장은 “사랑하고 결혼해서 2세를 낳는 것은 사람으로서 당연한 권리”라며 “이들에 대한 근본적인 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주노동자들의 근무여건은 심각한 수준이다. 의료공제회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외국인노동자 직업병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의 주당 평균노동시간이 67.4시간이나 됐다. 주 1회 이상 야간근무를 하는 비율은 66%였으며 주 4회 이상도 27.8%를 차지했다. 휴일에도 근무한다는 이주노동자는 97.7%를 차지했다. 이에 따라 거의 모든 이주노동자들이 근골격계, 위장계, 피부질환 등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4년 4월 22일 오후 12시 8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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