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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 한예종 감사보고서는 함량미달"

취재뒷얘기

by betulo 2009. 6. 1.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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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는 6월1일 보도자료를 내고 “황지우 전 총장이 2009년 5월 19일 사퇴서를 제출하여 2009년 5월 30일 면직”됐다고 하면서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조속한 안정화를 위하여” 현 박인석 교학처장을 총장 직무대리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박 교학처장은 2002년부터 미술원 디자인과 교수로 일하고 있으며 올해 3월부터 교학처장으로 일하고 있다.
황지우 총장이 사퇴서를 던진 계기가 된 건 다들 알다시피 문화부가 한예종을 상대로 벌인 정기종합감사였다. 이쯤에서 그 감사의 결과물인 ‘처분요구서’의 품질을 검증해보기로 하자. ‘감사 실무에 밝은 한 정부 관계자’한테 처분요구서를 보여주며 평가를 해 달라고 했고 그가 내놓은 평가를 중심으로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에 응한 익명의 관계자는 편의상 A씨라고 칭한다.

 

A씨는 “전체적인 소감을 말해달라”는 질문에 대해 “감사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함량 미달이다.”라고 혹평했다.

“감사는 규정과 비위행위, 잘못된 결과가 명확하게 연결돼야 한다. 문화부 감사는 결과가 잘못된 게 아닌데 과정만 잘못됐다거나, 근거규정이 없다거나, 비위행위 자체가 명확하지 않거나 하는게 눈에 보인다. 과정이 잘못됐더라도 결과가 잘못되지 않았다면 감사 요건이 떨어진다. 논리적 연결이 잘 안된다.”

A씨는 “감사는 정책을 수행하는 것에 대해 평가해서 환류하는 것”이라면서 “감사에 ‘규정’이 아니라 ‘취지’와 ‘정책방향’이 너무 개입하면 감사의 정체성이 사라져 버린다.”고 말한다. “취지와 정책방향 강조가 지나치면 그건 더 이상 감사가 아니라 정책평가일 뿐”이고 “감사의 기본적인 성격을 넘어서면 결국 그게 자의적인 감사가 돼 버린다.”는 것.

A씨는 이렇게 꼬집었다. “한예종 감사처분요구서가 문화부 내부 정책보고서라면 그건 얘기가 된다. 문제는 감사보고서에 징계 등 인사상 조치를 포함하고 있다는 거다. 그럴 경우 자칫 위험해질 수 있다. 자체감사가 특정 방향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다.”

그는 하나씩 예를 들어가며 설명해줬다.

처분요구서 1번 <전공과 무관한 교수 채용 부당>

문화부는 적격자를 채용해야 하는데 전공과 무관한 자를 교수로 채용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뭐가 잘못됐다는 건가? 강의를 못한다는 건가? 비전공자라 하더라도 강의를 정말 잘한다면 감사하는 입장에선 지적할 게 없는거다. 하지만 처분요구서에는 비전공자를 채용했다는 얘기는 있는데 그로 인해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지 지적이 없다.

문화부가 지목한 비전공자 6명을 과연 비전공자라고 할 수 있는지도 애매하다. 경영학 학위를 받아서 예술경영과 교수, 미학 학위 받아서 영상이론과 교수, 음악학과 학위로 예술경영과 교수… 문화부는 학위를 기준으로 비전공자라고 하는데 과연 비전공자라고 할 수 있는지 근거도 미약하다.

처분요구서 3번 <이론학과 확대운영 부적정>

문화부는 “한예종이 이론학과 확대개설로 타 예술대학과의 차별성이 축소되고 실기중심교육이라는 학교의 설립취지가 퇴색하고 있음”이라면서 “선발 학생은 대부분 인문계 학교 출신이며 실기능력이 있는 예술고 출신은 10% 미만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건 근거가 부족하다. 대학 수업을 실기위주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인문계 출신들은 실력이 없다는 건가? 문화부는 예술고 출신이 인문계 출신보다 실력이 있다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이것도 가령 인문계 출신 표본조사해서 실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입증해야만 감사결과로서 의미가 생긴다. 기준과 사안이 불일치한다. 출신이 아니라 실력을 기준으로 감사를 했어야 했다.

가령 예술고 출신을 일정 비율 이상 뽑기로 돼 있다면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실력이 되는 학생을 뽑는것 아닌가, 그럼 실력을 따져 봐야 한다. 문화부 논리대로라면, SKY(서울대․연세대․고려대) 출신이 아닌 자를 장관으로 임용했으니 문제라고 주장하는 것과 똑같다. “감사 참 쉽지요잉~~~”

 처분요구서 4번 <U-AT 통섭교육 사업추진 부당>

A씨는 “통보로 그칠 만한 사안을 주의로 한 것도 눈에 보인다.”면서 처분요구서 4번을 지목했다. 그는 “통보라고 하는 건 규정은 없지만 취지가 이러이러 하니 그 방향으로 앞으로 해달라. 주의는 규정을 어겼으니 앞으로 규정을 잘 지켜라.”라고 구분했다.

A씨 지적을 옮겨보자. 통섭교육을 재검토하라는 장관 지시를 황 총장이 어겼다는건데 감사보고서 문구만 봐서는 “재검토해서 추진하라”라고 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중요한 건 통섭교육 사업에 대해서 결재를 받아야 하는지 여부다. 만약 사업취소를 지시하는 결재를 했으면 황 총장이 지시불이행이다. 하지만 구두로만 지시했다면 그건 장관이 행정상 절차에 하자가 있다.

국회에서 예산안심의를 거쳐서 확정된 사업을 장관 지시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를 한다면 그것도 어폐가 있다. 황 총장이 지시를 어기고 사업을 추진한 목적을 봐야 한다. 목적이 사익을 위한 것이라면 분명히 징계사유다. 하지만 그게 아니고 ‘적극행정’이면, 열심히 하려고 한 것이면 징계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장관이 지시한 것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건 아니다. 왜냐하면 공무원이든 사람이든 국가를 위한 판단이 있는거다. 감사하는 입장에선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인정하더라도 목적을 따져야 한다. 횡령이나 사익을 위한 흔적은 안보이지 않느냐.

감사원의 경우 징계 기준은 고의 혹은 중과실인데 황 총장 지시불이행은 고의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그 목적을 따져야 한다. 문화부가 황 총장이 사익을 위해 했다는 걸 입증하기 전에는 징계사유로 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고 본다.

처분요구서 5번 <예술학교 협동과정 운영 부적정>

문화부 논리는 한예종이 예술 실기가 아닌 일반대학의 문예창작과와 유사한 과를 만들어서 운영해 학교 성격과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서사창작과를 페지하라고 요구한다. 그럼 여기서 두가지 질문이 나온다. 첫째, 서사창작과는 이론과인가? 둘째, 일반대학의 문창과와 같은 과를 만들면 안되는건가?

서사창작과가 이론과가 아니라는 것은 문화부도 인정하고 있다. 서사창작과의 교과목이 “글쓰기, 시 소설 창작 워크숍 등 주로 시 소설 창작을 위한 과목으로 구성”돼 있다고 지적했는데 이건 모두 실기 영역이다. 일반대학의 문예창작과와 유사하다고 했는데 일반대학의 문예창작과를 이론과라고 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한예종은 일반대학에 있는 과를 만들면 안되는건가? 그럼 한예종에 만들 수 있는 학과가 뭐가 있나? 영상과나 연극학과 무용과 등은 일반대학에서 안 가르치는 과들인가?

서사창작과가 정말로 취지와 어긋나는 학과라면 없애는게 맞겠지만 처분요구서만 봐서는 너무 소략해서 비위행위를 정확하게 묘사하지 않았다. 피감기관 입장에선 논리가 빈약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시정이 아니라 개선이나 통보를 해야 한다.

 처분요구서 6번. <대학입시 운영 부적정>

문화부는 “예술학교에 재직 중인 교수들의 자녀가 동교에 입학한 사례는 총 25명에 달하며, 교수들이 재직 중인 원(院)에 본인 자녀가 입학하는 경우도 50% 이상이 되고 있어, 입시 공정성이 우려되는 데도 이를 관리할 수 있는 절차나 규정이 없음”이라고 지적했다.

감사를 제대로 한다면 첫째, 자녀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가가 관건이다. 핵심은 실력이 안되는데 입학을 했다는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도덕적으로만 문제가 될 뿐이다. 그 다음으로 규정에 저촉되는지가 문제가 된다. 하지만 문화부도 밝혔듯이 한예종에 관련 규정이 없었다. 이럴 경우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통보가 적당한 조치가 된다. 자녀가 많이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는 있어도 근거규정이 없으니까 법적으로는 문제삼을 수는 없다.

다른 측면에서, 한예종에 입학한 교수 자녀들이 월등한 실력을 갖췄을 가능성도 있는건데 문화부는 그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 표본조사를 해서, 가령 10명을 조사했더니 5명 이상이 실력이 떨어지더라 하는 결론을 도출해야만 감사에서 문제를 삼을 수 있다.

처분요구서 10번. <교원복무관리 부적정>

문화부는 “겸직허가규정 위배”를 지적하는데 “사전에 겸직허가 신청서를 소속 원장을 경유하여 총장에게 제출하여야 하나, 일부 교원의 경우 위 규정을 준수하지 않고 다른 직무를 겸직하여 공무원복무규정을 위배”했다고 지적했다.

여기서는 직무의 범위가 관건이다. 규정의 취지는 겸직으로 인해 본업에 지장이 생기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문화부가 지적한 이 부분은 말이 된다. 규정 위반이 맞다. 주의조치는 적절해 보인다.

처분요구서 12번 <학교 발전기금 및 업무추진비 불법사용 등>

황지우 총장과 관련한 것을 보자. 처분요구서만 봐서는 황 총장이 잘못한 건 맞는 것 같다. 다만 감사보고서 내용이 상세하지 않고 뭉뚱그려서 한 느낌이다.

문화부는 ‘취지와 안 맞는다’라고 계속 지적하지만 그건 규정과는 별 문제다. 취지라는 건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지니까. 내가 보기에 문화부는 규정이 아니라 취지에 의존한 감사를 했다. 그럴 경우 자의적인 결론을 낼 가능성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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