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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

KBS 정연주, 1년만에 황지우로 환생하다

by betulo 2009.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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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총장이 5월19일 총장직에서 물러난다고 선언했다. 황 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환영했다. 종합검진처럼 잘 받으면 그만큼 한예종의 건강성이 입증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건강검진이 아니라 생체해부에 가까운 쪽으로 흘러갔다.”

황 총장은 19일 기자회견장에서 작심한 듯 문화부 감사결과를 반박했다. “감사의 과녁이 제도개선이라는 이름으로 한예종 학사조직 개편 내지 리모델링에 놓여 있었다.”고 말했고 “이론과를 폐지하는 등 한예종 구조 전반에 대한 리모델링을 본부에서 추진하겠다는 문화부 감사관 발언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고 털어놨다.

여기다 황 총장은 “3월 초 당시 문화부 박태순 예술국장이 찾아와 거취문제를 거론했고 그것을 거절하자 이내 감사가 들어왔다.”고 밝혀 산하기관장 사퇴 압력 거부에 따른 보복성 감사 의혹도 시사했다.

문화부는 바로 다음날인 5월 20일 기자 브리핑에서 황 총장 주장을 반박했다. 문화부 심장섭 대변인은 “박 국장에게 확인한 결과 박 국장은 3월 초 한예종을 찾아가 총장의 거취를 물어본 적은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박 국장도 전화통화에서 “3월초에 총장을 방문한 적도 없고 거취에 대해 물어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문화부가 브리핑을 할 즈음 한예종 교수협의회는 “정당한 학습권과 교권을 침해하는 반교육적 감사결과를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교수협의회는 성명에서 “문화부가 구시대식 정치논리에 휘말려 정작 중요한 예술교육의 정체성을 붕괴시키고 있다.”면서 “학교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행정적인 개선사안에 대해서는 적극 협조하겠지만, 학교의 교육정책을 통제하려는 시대착오적인 발상과 행동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밝힌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나는 지난해 산하기관장 사퇴 소동을 취재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고소영 강부자 논란을 둘러싼 여러 에피소드도 내 취재영역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행히도 문화부와 한예종이 내 취재영역이다. 기자로서 나는 이번 사태를 충실히 기록할 의무감을 느낀다.

(내가 보기엔 황 총장과 한예종 ‘사태’는 2008년 정연주 사장과 KBS ‘사태’와 무척이나 닮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지난해 정 사장과 극도로 대립했던 KBS노조 위원장은 정 사장이 물러난 후 좋은 곳으로 영전했다는 것이고 한예종 노조는 아직 그런 징후는 안 보인다는 점이다.)

1. 감사는 어떻게 진행됐나

문화부의 공식입장은 이렇다. “이번 감사는 1~2년마다 실시하는 정기종합감사였고(09년 문화부 자체종합감사계획은 09.2월에 수립했고, 예술학교는 07년에 정기감사를 받은 바 있음), 종합감사는 말 그대로 학교운영 전반에 대해 감사를 실시하는 것임”

내가 서울신문 5월14일자로 단독보도한 기사문화부, 한예종 장기 감사 논란에 의존해 감사 진행상황을 정리해보자. 문화부는 3월18일부터 4월 24일까지 28일 동안 실시했다. 이후에도 한동안 서면질의를 계속했다. 문화부의 산하기관 실지감사 기간이 통상적으로 2~3주인 것을 감안하면 한예종은 두 배 이상 기간 감사를 받았다.

한예종으로서는 한 학기의 절반 이상을 감사에 매달려야 하는 어려움을 호소할 지경이었다. 당시 만난 한 한예종 관계자는 “감사가 길어지면서 ‘문화부가 한예종을 구조 조정한다.’거나 ‘특정인사를 내쫓으려 한다.’는 등의 ‘괴소문’이 횡행하는 게 가장 힘들다.”면서 “‘우리 그냥 예술하게 해주세요!’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라고 털어놨다.

특정 교수가 수업을 했는지 여부까지 확인할 만큼 감사 내용이 ‘저인망’식으로 진행한 것도 논란을 부추겼다. 당시 취재한 바에 따르면, 그리고 문화부에서도 인정한 사실은 문화부가 감사 초기 황지우 총장과 이 모 교수 등 ‘뉴라이트’에서 지목한 이른바 ‘좌파 교수’ 중심으로 감사를 진행했고 이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점차 ‘방만경영’으로 감사 초점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관계자는 “솔직히 감사를 위한 감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주장했다.

당시 문화부 신건석 감사담당관은 “연초에 세운 자체종합감사계획에 따른 감사일 뿐”이라며 표적감사 주장을 일축했다. 그는 “소속기관은 통상 2~3년에 한 번씩 자체감사를 받으며 한예종은 2007년에 자체감사를 받은 바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감사기간에 대해서는 “감사를 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사항이 있으면 감사 기간이 길어지고 그렇지 않으면 기간이 짧아지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2. 황 총장에 대한 중징계 방침 논란

광주민중항쟁 29주년이 되는 5월18일 문화부에서 한예종에 감사 처분요구서를 보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최종학 문화부 감사관에게 그날 저녁 6시30분 무렵 전화를 했다. 그는 “조금 전 결재 받았다.”면서 “처분요구서를 전자문서로 한예종에 보냈다. 12개 처분요구인데 대부분 제도개선에 초점을 맞췄다.”라고 말했다.

사실 그 전인 15일 금요일에 문화부에선 감사 처분요구서를 보도자료로 공개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날 아침 내가 최 감사관한테서 직접 듣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보도자료는 안 나왔다. 최 감사관은 “오해 있을까봐 보도자료 안 내고 취재요청 있으면 개별 설명하기로 했다.”고 했다. (솔직히 그게 오해를 없애기 위한 좋은 방편인지는 모르겠다. 이틀만에 보도자료를 낸 걸 보면 더 분명해지지 않을까.) 

최 감사관은 “황총장 관련 사안이 관심사”일 거라고 하면서 “개인적 비리(학교발전기금 무단사용, 사진찍으러 근무지 이탈 32회, 주무부처 허가 없이 해외여행 몽골 2회, 중국 1회) 등 발견”이라고 말했다.

그는 “법적으로 공금횡령, 공무원 성실의무 위반 등 국공법에 저촉된다.”면서 “구비서류 8개 구비하는대로 내일이나 모레 교과부 징계위원회 회부 할꺼다.”라고 말했다. 중징계의 정확한 범위에 대해 그는 “파면 해임 자격정지 등”이라고 부연설명해줬다. 최 감사관도 인정했듯이 교원징계령에 의거해 학교장이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건 정부수립 이래 선례가 없다.

한편 최 감사관은 진중권 한예종 객원교수에 대해서도 얘기해줬다. 그는 “진 교수가 지난해 2학기에 예정된 수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1년치 보수 3400만원 가운데 절반에 대해서는 반환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서울신문 5월19일자 9면 기사

이에 대해 한예종 관계자는 “강의 뿐 아니라 연구와 세미나 준비 등이 계약에 포함돼 있기 때문에 강의를 하지 않은 것만 갖고 얘기하는 건 사리에 맞지 않다.”면서 “2학기 강의를 못한 것은 본인 의사가 아니라 학교측에서 수업을 안 맡긴 것이며 그것도 자체 판단이 아니라 문화부와 협의한 사항”이라고 말했다.

(1) 공금횡령 주장

황 총장 말로는 학교발전기금 사무국에서 2007년도에 학교발전기금 모금을 위한 사진 전시회를 하자고 했다고 한다. 2008년 11월 무렵 열기로 했는데 경제위기 등으로 인해 2009년 9월로 연기했다.

황 총장은 필름이나 인화 등으로 발생한 초기 실비로 600만원을 세 차례 나눠서 받았다. 황 총장이 개인카드로 먼저 결재를 하고 그 영수증을 발전기금 사무국에 전달해 정산받았다는 거다. 황 총장은 감사기간 중에 충분히 소명을 했고 관련 서류도 다 제출했다고 말한다. 문화부 감사팀에서도 따로 확인서를 요구하지 않고 그냥 갔다고 한다.

황 총장 스스로 인정하듯이 공금처리업무가 깔끔하지는 못했다. “내 지갑에 카드 영수증을 분류하지 않고 넣어두었다가 쌓이면 비서실에 줘서 처리하도록 했는데 중간에 비서가 허리디스크 때문에 교체가 되는 시기에 사진전 초기비용으로 들어가지 않아야 할 다른 영수증들이 섞여 들어갔다. 그 부분이 개인유용으로 지적받았다.”

황 총장은 “그런 실수는 내가 다 감당하겠다. 무시할 수 없는 실수이긴 하지만 그것이 과연 총장 퇴진에 이를 만한 비리사실인가는 개인적으로 수긍이 안된다.”라고 말했다. 

최 감사관에 따르면 황 총장은 300만원 200만원 100만원 등 세차례 사무국에서 돈을 받아갔다. 감사관실 담당자는 황 총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국가공무원은 그러면 안된다. 자기 돈으로 먼저 결재하고 나중에 영수증 처리하며면 명백한 규정위반이다. 징계 대상이다.”

(2) 근무지 이탈 주장

18일 최 감사관은 내게 “근무지 이탈 32회”라고만 얘기했다. 이에 대해 황 총장이 “사진전 준비를 위해서 카메라를 차에 구비하고 국회 일정 있어서 갔다오는 중간에 한강에 가서 찍거나, 북악스카이 돌때 찍은 것”이라면서 “이동 중에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찍은 것이다. 무단이탈이라고 할 게 없다.”라고 반박했다.

19일 아침 황 총장 발언을 전하자 최 감사관은 몇 가지 덧붙였다. “횡성, 양평, 은평뉴타운 등도 포함돼 있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했다고 보기 어렵다.”

어쨌든 핵심은 횡성, 양평, 은평뉴타운이 포함됐는지 여부는 아닌 것 같다. 과연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사진전 준비를 한 것이라면 황 총장 발언에 신빙성이 간다.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문화부는 황 총장이 마치 출근도 하지 않은 채 땡땡이를 친 것처럼 묘사한다는 점이다.

(3) 무단 해외여행 주장

무단 해외여행. 이거 참 재미있는 혹은 쪼잔한 논쟁이다.

일단 문화부 감사관실 얘기는 이렇다. “몽골 2번, 중국 1번 무단으로, 주무부처 ‘허가’ 없이 해외 여행했다.” 이게 18일 저녁 들은 내용이다. 황 총장에게 밤 8시에 전화해서 물어보니 황 총장 이렇게 대답했다. “2006년과 2007년 정기 여름휴가를 신청해서 몽골에 다녀왔다. 중국은 2006년 겨울 정기 휴가로 중국 다녀왔다. 개인휴가였고 다 자료가 있다. 소명을 했다. 개인휴가도 보고해야 하나.”

그 얘기를 19일 아침 전하자 최 감사관 추가해줬다. “개인 휴가 기간에 외국 가는 것도 ‘보고’해야 한다. 무단이탈이고 성실의무 위반이다.”

(4) 장관 지시 불이행 주장

통섭교육도 논란꺼리다. 19일 아침 최 감사관한테 들은 내용으로는 이렇다. 2008년 장관이 황 총장에게 통섭교육 재검토 지시했다. (이후에는 서로 ‘장관이 하지 말라고 했다’는 걸로 표현해가며 대화했다)

2008년 예산으로 30억 책정돼 있었다 재검토 지시했는데 재검토하지도 않았고 성과도 부실했다. 관련자 단장과 부단장 징계요구했다. 근거없이 지급한 관련자 인센티브 3750만원 환수요구도 했다. “총장은 장관의 명을 받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재검토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카이스트에서 CT대학원이 있고, 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유사사업도 한다. 중복되니까 하지 말라고 한거다.”

최 감사관 말은 “핵심은 장관의 지시를 불이행한 것이고 성과가 부실한 것은 부차적이다.” 결국 장관 말 안들었다는 거다.

황 총장 주장은 이렇다.

“2008년 3월 유인촌 장관이 처음으로 학교 오셔서 한예종 주요업무보고를 받았다. 그때 내가 작은 예산으로 큰 효과낼 수 있고 당장 할 수 있는 첩경은 유비쿼터스 통섭교육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통섭은 안돼, 한예종은 기왕에 하던거나 하지, 순수예술만 해라’ 하더라. 그 근거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생각같아서는 오히려 장관이 이런걸 해라 새로운 걸로 나아가야지 해줬으면 좋겠는데...

작년에국회에서 통섭교육 예산과 관련해 야당과 장관간 첨예한 논쟁이 있었지만, 국회에서 UAT통섭교육은 한국예술교육 그리고 이 나라가 가야할 길이라는 사회적 의제로 받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UAT통섭교육 예산이 전액 삭감돼 버렸다. 그래서 국회에서 “장관에게 UAT통섭원으로 가는 계획은 포기하겠다, 다만 교육은 하게 해달라”고 했다. 이미 작년에 통섭 시범교육을 하면서 학생들 반응이 대단히 뜨거웠다.

학생들의 새로운 교육에 대한 수요를 위해서 금년에 예산전액 삭감되었기 때문에 학교 기성회 예산으로 발전기금 지원받아 1억8천 정도 9개 시범교과를 5개로 줄이고, 9개 통섭렙(?)을 하나로 통합해서 적어도 커리큘럼 운영에선 유지하고 싶다고 했는데. 이번 감사에서 왜 장관이 하지 말라는데 했느냐는 이유로 통섭교육 중지라는 처분을 받았다.”

<한예종 감사결과를 둘러싼 논쟁은 (下)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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