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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

문화부 "한예종 이론과 축소, 서사창작과 폐지"

by betulo 2009.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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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으로서 2002년부터 2008년까지 국가를 위해 일했던 노무현씨가 이제 고인이 됐습니다. 비록 제가 살아있을 당시 노무현씨에 상당히 비판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2002년 당시 그에게 한 표를 던졌던 유권자였고 그가 전임 대통령으로서 시골에서 지내는 모습에 적잖이 강한 인상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마음이 평온하진 않지만 제 할 일은 해야겠지요. 그래도 글머리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란 말은 하는게 도리라는 생각에 몇 자 적었습니다.     

문화부가 하는 말이 감사결과와 다르다는 글을 올리고 나서 메일을 한 통 받았습니다. “‘이론과 축소 및 폐지’ 내용이 학교와 언론에서 보도한 내용과 차이가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즉, 실제 감사지시사항에 ‘6개원 이론과 및 서사창작과, 예술경영과 축소 및 폐지’ 내용이 명기되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입수한 자료에서 질문에 해당하는 내용을 찾아봤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이론학과 축소 등 이론교육 시스템에 대한 개선방안 강구>를 한예종 총장에게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서사창작과 폐지>와 <협동과정을 고등교육법령에 부합하도록 운영>도 요구했습니다.


중요한 건 이유인데요. “예술학교 설립 취지를 퇴색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처분요구서 제3번 <이론학과 확대 운영 부적정>에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아울러 처분요구서 제5번 <예술학교 협동과정 운영 부적정>에 따르면 서사창작과 설치운영이 부적정하고 협동과정을 원(院) 성격으로 운영하기 때문이랍니다.


“이론수업 많아 창의력 저하”


좀 더 자세히 처분요구서를 분석해보죠. 먼저 처분요구서 제3번. 문화부는 “협동과정 등 이론학과 확대개설로 타 예술대학과의 차별성이 축소되고 실기중심교육이라는 학교의 설립취지가 퇴색하고 있음”이라고 지적합니다. <2009년도 이론학과 신입생 출신고 현황> 표에 보니 문화부가 지목하는 이론과 현황을 알 수 있겠네요. ▲음악원 2명 ▲연극원 17명 ▲영상원 75명 ▲무용원 5명 ▲미술원 10명 ▲전통원 9명 ▲협동과정 15명. 모두 133명이 올해 신입생입니다.


‘09년 이론학과 신입생 출신고 현황(출처: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합계

예술고

인문계

검정

기타

133

11

97

19

5

음악원

2

0

2

0

0

연극원

17

0

15

1

0

영상원

75

4

56

10

5

무용원

5

1

3

1

0

미술원

10

0

6

4

0

전통원

9

6

2

1

0

협동과정

15

0

13

2

0



제가 입수한 다른 자료에 보면 문화부는 한예종이 현재 8개 과 127명 정원으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전문사 과정인데요. 문화부는 여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음악원 음악학과 6명 ▲연극원 연극학과 5명 ▲영상원 영상이론과 10명 ▲무용원 이론과 10명 ▲미술원 미술이론과 15명 ▲전통예술원 한국예술학과 6명 ▲협동과정 예술경영과 10명 ▲협동과정 서사창작과 5명 등을 꼽았습니다.



두가지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먼저 이론 전공학과를 별도로 개설해 운영하는데다 선발하는 학생들이 대부분 인문계 출신이고 예술고 출신은 10%도 안된다는 겁니다.


“예술학교는 단순한 기예적 실기 전문가를 뛰어 넘어 ‘예술산업의 시대적 흐름에 맞게 창의적 예술인을 양성한다’는 명분으로 이론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나, 실제 운영은 이론 전공학과를 별도로 개설, 학생선발 기준과 방식을 기존 실기과목과 달리 하고 있으며, 선발 학생은 대부분 인문계 학교 출신이며 실기능력이 있는 예술고 출신은 10% 미만에 불과함. 따라서 현재의 이론과정 교육은 실기역량을 확대 강화하기 보다는 이론가 양성을 위한 교육으로 운영되고 있는 바, 예술학교의 설립취지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음.”


두 번째 근거는 각 원별로 이론과목 8~30 학점을 공통필수로 두는 바람에 학생들에게 이론수업 부담을 지우는 바람에 실기학습 효과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겁니다.

“이론교과목에 대한 폐강기준(*수강인원 5명 이하)을 실기교과와 동일하게 적용하고, 각 원별로 이론과목 8~30학점을 공통필수로 두어 실기전공 학생들에게도 이론과정을 의무적으로 수강토록 하고 있어, 실제 수업시수가 타 학교에 비해 훨씬 많은 학생들에게 이론교과 수업부담에 따른 창의력 저하 등 실기학습 효과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음”


그밖에 “연구년제 연구교원, 연구전담교원 등의 이론교육시스템을 획일적으로 적용하여 실기교과의 전임교원 강의 비중을 축소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는 바, 학생들이 국내외 우수한 실기 전문교원들로부터 양질의 수업을 받을 기회가 축소되고 있음”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현 정권의 생각의 기준이 되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보면 어떨까요. 실기를 위해 이론을 적극 교육하는 외국 사례는 많습니다. 줄리아드도 그렇구요. 줄리아드는 20학점 이상의 전공 관련 이론과목이 필수입니다. 피바디음악대학은 음악학, 음악이론, 화성학과 인문학을 총 32학점 이수해야 합니다. 커티스음악대학은 음악전공, 음악현장, 인문학 분야 이론과목을 총 136학점 중 30학점 이수해야 하구요.


한예종 입장에선 “국내 일반예술대학에서는 교육적이고 표준적인 이론교육이 제공되어 실기교육이 상대적으로 취약”하지만 한예종은 “이론과를 예술 장르별로 각 원에 소속시켜 창작현장과 연계되도록 하였으며, 실기에 필수적인 양질의 이론교육을 시행”하고 있다고 반박합니다.


서사창장과 폐지 요구하는 문화부


처분요구서 제5번은 <예술학교 협동과정 운영 부적정>이란 제목이네요. 직접적으로는 서사창작과 폐지를 요구하지만 읽기에 따라서는 협동과정 전체를 없애라는 걸로 이해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문화부는 “서사창작과 설치 운영 부적정” 부분을 옮겨보겠습니다.

“서사창작과는 예술사과정 또는 예술전문사 과정에 2개 이상의 학과에서 연계하여 공동으로 운영하는 협동과정이 아닌, 극작과의 서사창작전공에서 협동과정의 서사창작과로 신설되었으므로 예술학교 설치령 제16조의2의 규정에 따른 협동이라고 볼 수 없으며, 서사창작과의 교과목이 글쓰기, 시․소설 창작 워크숍 등 주로 시․소설 창작을 위한 과목으로 구성되어 있고, 학과의 설립 동기도 문예창작 전문가를 키워내는 과정이라고 밝히고 있어 다른 일반대학의 문예창작과와 유사해 예술영재교육과 체계적인 예술실기교육을 통한 문화예술인의 양성을 위해 설치된 학교의 성격과 맞지 않음.”


“협동과정을 원(院)의 성격으로 운영”이 이어집니다.

"협동과정 설치 취지는 새롭게 전공학과를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2개 이상의 학과에서 연계하여 공동으로 운영하는 것인데도, 예술학교는 타 대학에서 운영하고 있는 협동과정과 다르게 사실상 별도의 원(院)으로서 새로운 학과를 설치하여 신입생을 따로 모집하고 독자적으로 행정실을 설치․운영하고 있음."


아울러 처분요구서 1번 <전공과 무관한 교수 채용 부당> 부분에 보면 ▲협동과정 예술경영 홍승찬 교수 ▲협동과정 예술경영 전주범 교수 ▲협동과정 예술경영 전수환 교수를 “전공과 무관한 자”로 지목했습니다. (영화과 김홍준 교수, 영상이론과 심광현 교수, 한국예술학과 이동연 교수도 전공과 무관한 교수채용으로 꼽았네요.)


서사창작과와 협동과정에 대한 문화부 지적에 대해 그 배경 등을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처분요구서와 함께 입수한 다른 문화부 내부 자료를 검토해봤는데요. 없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자료에는 서사창작과나 협동과정에 대해 문화부가 한예종에 해명을 요구한 내용이 없습니다. 문화부가 감사과정에서 그 부분을 문서형태로 물어보지 않은건지, 제가 그 부분에 해당하는 자료를 갖고 있지 않은건지는 더 취재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서사창작과 폐지 요구를 보면서 머리에 떠오르는 게 있습니다. 바로 국립오페라합창단인데요. 규정에 없이 전임 단장 시절 만든 것이니 바로 잡아야 한다며 그 대책으로 오페라합창단을 아예 없애버리겠다고 해서 한바탕 홍역을 치뤘지요. 서사창작과도 그렇고 오페라합창단도 그렇고, 설령 규정에 없이 혹은 규정에 어긋나게 만들었다고 해도 이미 거기에 속해 있는 노동자와 학생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나 대책은 어디에도 없네요. 노점상은 불법이라며 무작정 강제철거해버리는 것과 하나도 다를게 없는 모습입니다.

이와 관련해 5월 20일 서사창작과 학생들이 발표한 성명서를 첨부합니다. 중요한 내용에 제가 임의로 표시를 했습니다.

성명서: 왜 서사창작과인가?

지난 19일 황지우 총장님의 사퇴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문화부는 몇몇 선생님들에 대한 징계, 협동과정 해체 및 통섭교육 폐지, 이론과 축소/폐지, 서사창작과 폐지를 요구했습니다. 이것은 엄연한 교권 침해입니다. 한 나라의 정부가 일개 과의 폐지를 요구한 사태에 대하여 서사창작과의 입장을 밝힙니다.

왜 하필 서사창작과인가?

서사창작과는 교내에서도 최소 정원입니다. 전문사를 포함해도 총 정원이 서른 명이 채 안 되는 학과입니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학내 구성원조차 아직 정체성을 헷갈려 하는, 게다가 예산이 많이 드는 과도 아닌 이 조그만 과를 정부는 왜 지목한 것일까요?

협동과정은, 장르를 넘나들며 새로운 장르를 만드는 현대 예술의 경향을 반영해, 6개원을 가진 예술종합학교로서의 장점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장르 융합을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워크숍 수업(글쓰기, 플롯구성워크숍, 성격창조워크숍)과 인문학적 베이스를 제공하는 수업들(예술의 산책 및 각종 통합과목)을 6개원 전체에 개방하고 있으며, 음악극창작과와 예술경영과, 서사창작과처럼 하나의 장르로 묶을 수 없는 학과들이 개설되어 있습니다. 그 중 서사창작과는 다양한 매체에 대응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창작하기 위한 작가를 양성하기 위해 2007년에 개설되었습니다.

한예종의 장기적인 융합예술교육 계획에서 협동과정은 그 포석이었으나, 그것이 궤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고, 한예종의 거시적인 교육 계획을 저지한다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가장 먼저 축출 대상에 올랐습니다. 이것은 학교 존립 자체를 흔들겠다는 경고이고 이는 앞으로 학교 전체를 건드리기 위한 단계이기도 합니다. 재차 말하자면 ‘한예종을 실기위주로 재편성하려는 조짐’이 구체화되어 첫 발을 뗀 셈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준비해온 총탄 한 발 : 한예종 죽이기

전문사 학위인정을 위한 설치법 개정을 좌절시킨 것을 비롯해, “한예종 죽이기”는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 왔습니다. MB 정권이 들어선 이후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이 한예종을 해체 및 축소하여 타 교육기관들과 통폐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작년 하반기 학교 신문에도 보도된 바 있습니다.(한국예술종합학교 인터넷 신문 KNUAN, ‘한예종 괴담을 믿습니까?’ 참조)

MB 정부는 출범 이래 계속해서 아직 임기가 남은 문화예술 기관 인사들을 압박해 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과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을 필두로 끝끝내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마저 표적 대상이 된 것입니다.

MB 정부의 한예종 대책 중장기 플랜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눠집니다. 첫 번째 단계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사퇴 추진과 예산 삭감입니다. 실제로 회계 교비 단일화, 즉 국고 보조가 줄어듦에 따라 그 동안 한예종에 대한 실질적인 예산 삭감이 진행되어 왔고, 올해 한예종 UAT 교육 관련 예산은 전액 삭감되었으며, 5월 19일 “본교에 몰려 있는 수압을 덜기 위해서” 황지우 총장이 사퇴하였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작금의 사태, 표적 감사와 아우른 서사창작과 폐지와 이론과 축소 및 폐지, 협동과정 폐지입니다.

마지막 단계는 속칭 “한예종 괴담”으로 불리는, 6개원 해체입니다. 이것을 더 이상 한낱 루머나 우스갯소리로 치부할 일이 아닌 것은, 2005년 발족한 이후로 한예종을 곱지 않은 눈으로 보고 있는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과 뉴라이트 계열의 ‘문화미래포럼’이 한예종의 구조조정에 대한 주제발표회를 공동 주관으로 계속 진행시켜 왔고, 최근 문화부의 감사결과 발표와 동시에 ‘문화미래포럼’이 “연극원, 무용원 등은 음악원으로 통폐합하고, 미술원과 함께 두 개 단과면 충분하다, 특히 전통예술원은 기존의 국립기관들이 많기 때문에 한예종에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펼친 것으로 그 속셈을 명백하게 알 수 있습니다.

…지난 2008년 9월 3일, 예교련과 문화미래포럼의 공동 주관 아래 진행된 주제발표회에서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정재형 교수는 “한예종은 지난 정부의 실패작이며, 새 정부가 출범한 만큼 한예종의 구조조정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한예종 설립이 당시 국내 예술대학 풍토와 학계의 의견을 무시한 채, 무리하게 추진되어 국내 예술대학과의 불필요한 경쟁을 야기했으며, ‘사실상 종합대학체제’로 불릴 수 있는 한예종의 ‘6개원 체제’는 구 공산권 나라인 중국, 소련의 몇 곳을 제외하곤 선례가 없는 이상한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각 원의 이론과 및 협동과정은 물론 타 예술대학과 중복되는 모든 전공을 폐지하고, ‘대학’이 아닌 조기영재교육만을 담당하는 본래 취지를 살린 ‘작은 대안학교’로의 전환” 등을 주문했다.

서우석 서울대 음대 명예교수는 “해체를 우리가 직접 주장할 필요 없이 정부가 진행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된다”며, 다만 “해체 이후의 인력과 기자재 배치 문제를 논의하는 공청회를 하자”며 ‘후속모임’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토론자로 나온 정준모 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은 “과거 수도공대가 홍익대에, 서라벌예대가 중앙대에 넘어갔듯이, 해체 이후의 배치 걱정을 하지 말라”며, “부분 인수할 대학도 많고, 입찰을 붙여서 띄워주면 간단하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여러분은 여러 성명서에서 이것이 “서사창작과”와 “여러 이론과”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며, 때문에 이것을 방기하면 안 된다는 내용을 많이 보셨을 겁니다. 그리고 단지 이것을 단결 슬로건 정도로만 읽고 계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내가 아프니 조직의 일부인 너도 같이 아파야 한다는 으름장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셨던 것보다 사안은 훨씬 더 심각합니다. 이것은 한예종을 둘러싼 문화예술계의 해묵은 알력이 얽힌,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된 전초전에 가깝습니다.

대학의 자율성은 정권의 취향보다 우선합니다. 대학의 교육 과정을 실용주의에 물든 관료와 이해관계에 얽힌 외부인들이 휘두르도록 놔둘 수 없습니다. 더구나 그들이 학교의 존폐까지 이야기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더 이상 이 문제를 마냥 지켜보고만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식물이라는 단어는 참 아름다운 단어이나, 식물 총장이길 거부하며 사퇴하신 황지우 총장님을 보고도 우리가 식물 노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절절한 가슴으로 학우 여러분들의 가슴에 묻습니다.

우리 서사창작과 학생 일동은 교육 주체인 학생의 권리와 예술적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학우 여러분들과 연대해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한예종의 학우 여러분들께 깊은 관심과 연대를 호소합니다.

2009년 5월 20일

협동과정 서사창작과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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