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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생각

오바마는 이명박과 정반대 길을 선택했다

by betulo 2009.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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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예산안'을 생각한다(上)


메릴랜드대 교수 피터 모리시가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말했다. “오바마가 정치적 이득을 위해 계급전쟁을 다시 일으켰다.” 그가 “로빈 후드보다 더 나쁘다.”며 오바마를 비난한 대목으로 짐작하건데 그는 전쟁이 일어난 것보다는 이 전쟁에서 오바마 편이 패배하기를 더 희망할 것이다. “(계급전쟁은) 결국은 눈물바다로 끝나게 될 것이다.”


사실 ‘세금’ 그리고 ‘예산’이 ‘계급전쟁’ 아닌 적이 있었나 싶다. ‘전쟁’이라는 표현이 거부감을 줄 지 모르지만 예산은 언제나 ‘정책의 최전선’이었다. 삽질예산은 배가 산으로 가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다. 비정규직에게도 고용보험 혜택을 주자는 주장이 불쌍한 사람들 적선하자는 소리로 들리나?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레이거노믹스 이후 미국을 지배해온 시장근본주의에 전쟁을 선포했다. 최전선은 국가재정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이다. 쉽게 말해 예산문제다. 오바마는 분명하게 ‘부자증세’로 거둔 돈을 교육개혁과 의료개혁에 쓰겠다고 선언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오바마라는 이름을 가진 미국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과 정반대 길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한국 대통령이 앉으나 서나 역할모델로 삼아온 게 미국이요 '글로벌 스탠다드'였다는 걸 생각하면 참 얄궂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한겨레. 2월23


오바마와 그의 참모들이 구상하는 걸 살펴보자. 2월26일(현지시각) 오바마는 앞으로 10년 동안 부유층 6560억 달러 증세, 서민층 1490억 달러 감세를 뼈대로 한 2010회계연도 예산안을 발표했다.의료보험 혜택을 보지 못하는 계층에게 10년간 6340억 달러를 투입한다. 교육부문은 올해보다 약 5억 달러, 12.8% 증가한 467억 달러를 책정했다.


방법은 사실 간단하다. “전임 대통령인 조지 부시가 연간 25만달러(약 3억 7000만원) 이상 고소득자에게 소득․배당․자본소득에 부여한 감세 혜택을 2011년 이후 소멸시킬 것”이다.


인위적으로 없앤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일몰조항'에 걸린 부자감세를 더 연장하지 않겠다는 거다. 이렇게 하면 “부자들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현행 35%에서 39.6%까지, 자본소득과 배당의 최고세율은 15%에서 20%로 올라간다.”


한겨레에 따르면 다국적기업의 국외 수익에 대한 세수를 2014년까지 연평균 250억달러 가량 늘리고, 석유 기업에 주던 세제혜택을 줄이는 방법으로 10년 동안 315억 달러를 추가로 거둔다. 


경향신문(2월28일자 3면)은 미국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를 인용해 오바마 예산안의 5대 피해자와 수혜자를 선정했다. 피해자는 부유층과 상위 중산층, 부유층 농장주, 에너지기업, 국방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다.


수혜자는 환자, 힐러리 클린턴, 환경보호주의자, 대중교통 이용자, 일자리를 찾는 대학생 등이다. 부유층은 아까 얘기했지만 연 소득 50만 달러 이상 농장주에게 지급하던 연방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폐지한다. 향후 국방예산은 참전용사를 위한 예산을 빼고는 줄어든다.


감세와 증세 30년 논쟁


이번 오바마 예산안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감세, 규제완화, 복지축소라는 세가지를 핵심으로 한 ‘레이거노믹스’가 30년만에 ‘오바마노믹스’에 의해 종식됐다.”고 보도했다고 한다. 규제나 복지 모두 예산을 통해 구현된다는 점에서 감세와 증세는 레이거노믹스라는 시장근본주의와 오바마노믹스의 ‘최전선’을 차지한다. 그럼 여기서 증세와 감세를 둘러싼 30년 논쟁을 살펴보자.


미국의 조세수입 구조는 개인소득세, 법인세, 지급급여세, 소비세 네가지 원천으로 돼 있다. 한국과 비교해 정말 간단하다. 미국에서 소비세는 역사적으로 비중이 적고 총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4%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다시 말해 북유럽이 세금을 거두는 것 보다는 거둔 세금을 재분배에 쓰는데 비중을 두는 것에 비해 미국은 강력한 누진세를 거두는 것에 재분배정책의 초점을 둔다. (한국은 거둘 때는 유럽식이고 쓸 때는 미국식이다.)


미국은 1981년 평균소득세율을 3년간 25% 내리는 걸 승인했다. 이 법으로 1970년대 14%~70%에 달하던 과세범위가 11~50%로 달라졌다. 다시 말해, 최상위 소득계층의 최고세율은 70%에서 50%, 최하위 소득계층의 최고세율은 14%에서 11%로 낮아졌다(바트라, 2006: 257).


클린턴은 다시 최상위 소득계층의 세율을 31%에서 39.6%로 올리고 최하위 소득계층의 세율을 15%로, 사회보장세 수입을 300억달러 증가시키며 정부지출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 법안은 상원에서 찬반이 각각 50표씩 나와 고어 부통령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해 가까스로 통과시켰다(바트라, 2006: 156).


전임 대통령 부시는 2001년 6월에 1조3500억 달러에 이르는 조세를 감면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바로 이 법안이 최상위 소득계층이 부담하는 소득세율을 39.6%에서 35%, 하위 소득계층의 소득세율은 15%에서 10%로 낮추는 내용이다. 이어 2003년 5월에는 배당세를 향후 5년간 15%로 크게 내려 기업 조세부담을 다소 줄이는 내용으로 새 조세감면법을 통과시켰다. 위 조세감면법은 2011년까지 유효하다(바트라, 2006: 180).


연방의회예산사무국(CBO)이 2004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상위 1%에 속하는 소득계층이 올해 평균 7만 8,460달러 조세감면을 받는다. 반면 연간소득 5만 7000달러인 중간 20% 소득계층은 1090달러, 하위 25%에 속하는 소득계층은 단지 250달러 조세감면밖에 받지 못한다(바트라, 2006: 258).


50년 전 미국 최고소득세율은 89%


좀 더 넓은 시야에서 미국 역사를 보면 재미있는 현실에 직면한다. 바로 1950년대 미국이 세계를 호령하던 시절 미국인들이 얼마나 많은 세금을 냈느냐 하는 점이다. 법인세율은 52%, 최상위소득계층 세율은 무려 89%나 된다. 2차대전과 한국전쟁으로 인한 재정부담을 해소하기 위한 측면을 감안하더라도 “몰수”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세금이다.


<미국의 GDP성장, 법인세율, 최상위소득계층 소득세율 변화>

연대

법인세율(%)

연평균 성장률(%)

최상위소득계층 세율(%)

1950년대

52

4.1

84~92(89)

1960년대

52~48

4.4

91~70(80)

1970년대

48~46

3.3

70

1980년대

45~34

3.1

50~28(39)*

1990년대

35~38

3.1

31~39.6(36)*

2000-2004년

33

2.8

36이하*

출처: 경제자문위원회가 발간한 1988년, 2004년도 「대통령 경제보고서」 1975년 상무부 발간 「식민지시대에서 1970년까지 미국의 역사통계집」 1095쪽. 상무부가 발간한 1981년과 2004년 「미국의 통계요약집」

* : 저자의 추정

(바트라, 2006: 264)


1950년대 최상위 소득계층 평균세율 89%는 당시 20만달러(2005년경 가치로 100만달러)가 넘는 소득에 대해 1달러 당 89센트를 정부에 지불했다는 뜻이다. 대부분 당시 조세제도를 몰수에 가까운 제도라 불렀고 충분히 그럴 만했다(바트라, 2006: 264~265).


<참고문헌>

래비 바트라, 황해선 옮김, 2006, <그린스펀 경제학의 위험한 유산>, 돈키호테.

김종면, “주요국의 재정정책 동향”, 『재정포럼』2009년 1월호, 41~52쪽.

한국은행 “선진국 재정적자 확대의 문제점과 향후 전망” 『해외경제정보 제2009-14호』, 2009.2.18.


2월28일자 경향


2월28일자 국민일보


2월28일자 한겨레 1면


2월28일자 한겨레 5면



동아일보(2월28일자 12면)는 '저세율정책'이라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제목을 썼다. 일부러 그랬을까?


중앙일보(2월28일자 11면)는 '논란'이라는 프레임 속에 오바마 예산안의 역사적 맥락을 구겨넣어 버렸다. 좌편향이니 큰 정부니 하는 말 속에 오바마 예산안을 바라보는 시각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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