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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시민의신문 기사

포장마차에서 쏟아진 탄핵과 총선이야기 (2004.3.26)

by betulo 2007.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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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마차에서 쏟아진 탄핵과 총선이야기
"촛불집회는 역사를 다시 썼다" 민노당에 대해서는 애증 엇갈려
"멋들어진 친구야, 시민사회 저력 확인해보자" 다짐
2004/3/26
강국진 globalngo@ngotimes.net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20일도 채 남지 않은 이번 총선은 특히나 탄핵안 가결로 인해 장금이 열풍을 능가하는 국민적 관심사가 돼 버렸다. 지난 22일 밤 서울 안국동의 한 포장마차에 모인 4명도 마찬가지. 모두 탄핵무효 촛불집회에 참석했다가 자연스럽게 만나 술한잔 하러 모인 자리였다. 학생운동을 통해 만난 이들은 탄핵정국과 총선 전망 등에 대해 새벽까지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들 가운데 두 명은 시민단체 활동가, 조씨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허씨는 정당에서 선거참모로 일하고 있다. 참고로 이날 참석자들 요청으로 실명을 사용하지 않았음을 밝힌다.

이날 술자리의 첫 토론 주제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시국선언이었다.

민씨는 “시국선언 발표한 뜻은 알겠는데 너무 앞서나간 거 아니냐”고 물었다. 불필요한 역풍을 우려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조씨의 입장은 확고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조씨는 “차에 깔린 개구리처럼 될 각오를 하고 발표한 것”이라며 “모두가 취지에 동의했고 사표 쓸 각오까지 했다”고 뒷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다.

20일 촛불집회도 빼놓을 수 없는 안주꺼리. “한방에 한민당을 박살냈다”는 얘기부터 “우리가 역사를 다시 쓰는 현장에 있었다”는 자부심까지. 특히 시민들의 각종 아이디어와 대중적 참여가 화제가 됐다.

허씨는 “촛불집회 한켠에서 어떤 사람이 ‘우리가 사오정 이태백이 아니란 걸 증명하기 위해 모금함에 성금 대신 명함을 넣어달라’고 하는 걸 봤다”며 “그걸 모아서 한나라당에 보내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3월 20일 탄핵무효 범국민대회에 한 시민이 목에 탄핵무효를 매단 강아지를 데리고
               와서 많은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연씨는 “어느 회사는 전직원 10명 가운데 8명이 참여연대 회원이고 6명이 촛불집회에 참가했다”며 “촛불집회 끝나고 촛불집회 나온 거래처 직원들과 술마시러 가는 걸 봤다”고 소개했다. 조씨는 “××× 전 청와대 보좌관을 시청 근처에서 봤다”며 “×××가 남들 눈에 띌까봐 마스크를 쓰고 나왔는데 그게 오히려 도드라져 보이는 바람에 사람들이 그를 알아봤다”고 귀뜸하기도 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한국 시민사회의 저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탄핵정국으로 다른 중요 현안이 묻히는 것 아니냐는 아쉬움을 보였다. 허씨는 “시민사회단체가 탄핵정국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와 관련 연씨는 “탄핵무효 국민행동에서 그 문제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고 들었다”며 “조만간 어떤 식으로든 교통정리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탄핵무효 국민행동이 더 높은 수준의 요구조건을 내걸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민씨는 “한 표만 강조하는 건 스스로 선택의 폭을 좁히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민씨는 “정개협의 정치개혁안 수용을 요구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정치개혁과 참여민주주의 확대를 위한 정책대안으로 정치권을 더 압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씨는 “국민행동에서도 그 문제를 놓고 토론하고 있다”며 “조만간 구체적인 요구가 나올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총선얘기로 흘렀다. 민노당이 원내진출에 성공하고 열린우리당이 원내1당이 될 것이라는데 이견은 없었다. “수구세력을 몰락시켜야 한다”는 바람도 마찬가지. 그러면서도 민노당에 대한 입장은 미묘하게 엇갈렸다. 민노당에 큰 희망을 걸고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민노당이야말로 비판적지지론의 최대 수혜자”라며 “민노당도 원내진출해 검증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민노당을 찍을 것”이란 사람도 있었다.


민노당 당원인 민씨는 민노당 비례대표 선출 온라인 투표를 못한 걸로 민노당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다. 온라인 투표 마지막날 투표를 하려고 민노당 홈페이지에 접속한 그는 그만 핸드폰 인증의 벽에 막혀 투표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것이다. “난 패밀리요금으로 등록해서 아버지 명의로 돼 있단 말야. 근데 인증이 안된다는 거야.” 그는 “민노당이 노동자 서민의 정당이라면 패밀리요금 같은 거를 대비해서 투표 인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꼬집었다. 당원 인증이 안돼 투표를 못한 사람도 있었다. 민노당 당원이 된 지 4년째인데도 실명인증이 안됐다는 것이다. 그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화가 나서 문의도 안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열린우리당 총선 후보를 준비하는 사람을 많이 알고 있다. 조씨와 허씨는 대전과 부산에서 열린우리당 총선 후보로 나서려고 몇 년간 준비하던 정치 신인들이 해당 지역구가 전략지구당으로 선정되는 바람에 경선도 못해보고 눈물을 삼켜야 했던 사실을 얘기하며 열린우리당을 비판했다. 민씨는 이에 대해 “경선 초기에 김성호 의원 떨어지고 영입인사 떨어지니까 우리당 지도부에서 ‘앗 뜨거워라’ 한 거 아니겠느냐”고 우리당 지도부를 옹호하기도 했지만 그조차도 젊은 신인들이 꿈을 접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긴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이들은 과거 민노당과 모 시민단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던 한 선배가 우여곡절 끝에 경선에서 이긴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조씨가 “당지도부에서 처음엔 경선도 안하려고 하다가 평당원들이 조직적으로 나서서 경선을 성사시켜 결국 총선 후보가 됐다”고 일러주자 모두들 자기 일처럼 기뻐하기도 했다.


이들 네 사람의 공통점은 90년대 초반에 학생운동을 경험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80년대 학생운동은 다양한 방식으로 평가작업이 있었지만 90년대 학생운동은 그런게 아직 없다는 점에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강국진 기자 sechenkhan@ngotimes.net

2004년 3월 26일 오전 1시 18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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