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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기록관리.정보공개

기록 없는 암흑시대, 온라인의 역설

by betulo 2008.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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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구글 이미지 검색. <바람의 검심-추억편>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건 특정한 꽃을 통해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와 운명을 은유하는 부분이었다.


7년인가 8년 전에 한 후배한테 빌린 극장판 <바람의 검심-추억편> CD를 보고 나서 영화평을 곁들인 이메일을 후배에게 보낸 적이 있다. 내 기억으로는 그 영화에 등장했던 여러 꽃들과 꽃과 색깔이 갖는 상징과 은유에 대해 나름대로 분석을 해봤다. 분량도 두세장은 됐던 것 같다.

내가 썼던 많고 많은 이메일 중에 그 메일을 기억하는 건 내가 당시 썼던 글이 내 나름대로 영화에 대해 혹은 ‘문화’에 대해 100% 내 머리에 의지해 써본 첫 글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바람의 검심-추억편>은 영화 자체로도 충분히 인상적이었고 배경음악도 환상이었다. 하지만 어줍잖게 ‘영화비평’을 쓸 정도로 나를 매혹시킨 것은 각 등장인물을 특정한 ‘꽃’과 연결시킨 부분이었다.

길을 걷다가 화단에 있는 이름 모를 꽃을 보고 당시 기억이 났다. 이메일을 보고 나서 한번도 돌아보지 않았는데 한번 다시 찾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도대체 찾을 수가 없었다. 보낸편지함에는 물론 없었다. 물론 지금 생각해도 꽤 창의적인 ‘꽃을 통해 본 바람의 검심 추억편’은 추억꺼리도 못된 채 머릿 속에서 날아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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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바람의 검심-추억편>의 대미를 장식하는 장면이다. '이열치열'(?)을 통해 주인공 켄신을 구원하는 토모에. 장면 해석이 너무 썰렁한가? 온라인시대의 역설에 대한 글을 썼지만 온라인 시대가 아니었다면 이런 사진파일을 어떻게 구했을까. ^^


지난해 2월 서울신문에 입사하고 나서 이전에 일했던 시민의신문에서 쓰던 메일함을 다시 열려고 했지만 실패했던 경험이 있다. 물론 그 전에도 컴퓨터 고장으로 혹은 “단추 하나 잘못 눌러서” 통째로 중요한 이메일이 날아가 버린 적이 있다.

더 큰 문제는 주고 받은 이메일이 워낙 많아 뭔가 중요한 메일이었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거다. 가령 이런 식이다. “누군지 기억은 안나는 어떤 사람한테 언제 받았는지 생각나지 않는 이메일을 받았다. 그 메일에는 뭔가 굉장히 재미있는 기삿꺼리가 있었다. 하지만 허공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언제 사라졌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갈수록 인터넷이 활성화되는 시대, 종이 없는 시대로 가고 있다고들 한다. 사실 온라인이 대단히 효율적이고 편리하다는 걸 부정할 사람은 거의 없을꺼다. 더이상 종이에 쓴 편지를 우표 붙여 우체통에 넣지 않는다. 실시간 전송이 가능하니까. 이젠 국책연구원이나 학회 등에서 나오는 연구보고서도 온라인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보도자료도 팩스로 보내는 건 구식이고 이메일을 통해 전달받는다.

연구소나 학회 등에 전화를 해서 취재차 필요해서 자료를 얻고 싶다고 하면 제일 먼저 듣는 말이 “홈페이지에서 파일을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이다. 그래도 나는 가능하면 고집스럽게 ‘종이’로 얻고 싶다고 한다. 파일은 파일이고 ‘종이’는 종이라는 ‘똥고집’ 때문이다.

인터넷 없이는 업무가 안될 정도까지 환경이 바뀌는 속에 우리는 ‘온라인’이 지식의 저장창고라는 걸 상식처럼 생각하고 산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가끔 전혀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개인적으로 대통령 노무현을 상당히 비판적으로 보지만 노무현이 기록관리와 정보공개 등에 쏟은 의지와 노력은 대단히 높게 평가하는 편이다. 그가 대통령으로 있을 당시에는 청와대 홈페이지에도 가끔 들어가곤 했는데 제일 먼저 찾는게 ‘대통령과 함께 읽는 보고서’라는 거였다.

대통령이 보고받은 보고서 중에 혼자 보기 아까운 게 많다며 국민과 함께 나누자는 차원에서 보고서를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거다. 가끔 굉장히 유용한 보고서도 찾을 수 있었고 성의 자체를 높게 평가해줄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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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청와대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자. 대통령과 함께 읽었던 보고서가 통째로 사라져 버렸다. 지난 정권 5년 동안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자유게시판은 어디 갔는지 알 길이 없다. 현재 청와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은 첫번째 글을 입력한 날이 2월25일로 돼 있다.

노무현이 한번 발송할 때마다 각종 논란을 일으켰던 대통령의 편지는 또 어디가서 찾을 수 있을까. 당시 각종 정책자료, 발표자료는 어디로 사라졌나.

경희사이버대 교수 민경배는 시사IN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홈페이지는 그 어디에서도 역대 정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만약 지금 누군가 노무현 정부 시절의 청와대 홈페이지 자료를 찾을 일이 있다면, 유일한 방안은 미국 비영리 재단이 운영하는 ‘인터넷 아카이브’(www.archive.org) 사이트를 검색하는 일이다. 외세 침략으로 유물을 약탈당한 것도 아닌데, 겨우 얼마 전 우리 정부의 기록을 외국 사이트에 가서 뒤져야 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만약 인터넷 아카이브라도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인터넷 이전 시대에는 종이로 된 서류라도 남아 있었을 텐데 그마저 없어졌을꺼다.

물론 이렇게 반론을 펴는 분이 있을거다. 종이 시절에도 기록이 폐기되는 건 부지기수였다. 편지지에 쓴 편지도 분실하는 경우는 숱했다. 오히려 온라인 시대가 되면서 더 간편하게 방대한 자료를 보관할 수 있지 않느냐.

물론 동의한다. 맞는 말씀이다. 하지만 온라인 시대, 컴퓨터 시대가 되면서 자료를 폐기하기가 더 쉬워진 걸 얘기하고 싶은거다. 커뮤니티 사이트 운영하던 회사 망하면서 셀 수 없이 많은 카페 글들이 한순간에 사라진 걸 기억해보자. 어떤 면에서 자료 유실 위험성은 사실 더 높아졌다. 그리고 중요한 건, 우리 스스로 자료 분실 혹은 폐기에 대해 예전보다 더 심사숙고하지 않는다는거다.

중요한 파일 모음을 컴퓨터를 바꾸거나 단추를 잘못 눌러서 혹은 컴퓨터 고장으로 통째로 날린 적이 한번도 없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나는 심지어 어느 사진기자 선배가 사내 전산망에 저장했던 몇년치 보도사진을 업무국 직원이 무심결에 Delete 단추 누르는 바람에 통째로 날아가는 사태가 발생해 업무국 직원과 죽자 살자 싸우는 걸 본 적도 있다.

기록은 소중한거다. 온라인 시대, 기록관리는 더 중요하다. 국가정책 차원에서 인터넷 아카이브를 구축하자는 주장에 동의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뱀다리(蛇足)

그 이메일을 후배에게 보내고 나서 하룬가 이틀인가 답장이 왔다. “이메일 잘못 보내셨습니다. 누구세요?” 김이 확 새버렸다. 결국 나는 그 이메일을 원래 보내려고 했던 후배에게 보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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