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재뒷얘기/기록관리.정보공개

국가기록물 재분류 ‘졸속’ (07.06.18)

by 자작나무숲 2007. 6. 18.

***괄호로 표시한 부분은 지면 한계상 신문에서는 줄인 부분입니다.

(3737만권이나 되는 기록물 목록을 2년만에 모조리 검토해 중요도에 따라 재분류하는 게 50명도 안되는 인력으로 가능할까? 국가기록원이 불가능에 도전하고 있다.)


국가기록물에 대한 재분류 작업이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재분류 사업은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보존기간 20년 이하의 한시보존 기록물의 보존 기간이 끝나 폐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추진되고 있다. 중앙행정기관과 지방병무청 등 특별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교육청, 국·공립대학 등 706개 기관에서 2003년 이전에 생산한 기록물의 보존 기간을 새롭게 부여하는 사업이다. 이는 2005년 4월 정부가 마련한 ‘국가기록관리혁신 로드맵 중 미(未)이관기록물 관리대책’에 따라 국가기록원이 시행하고 있다. 


17일 서울신문이 국가기록원의 ‘보존기간 20년 이하 기록물 재분류 사업’ 관련 자료를 입수해 전문가들과 분석한 결과, 국가기록원은 2005년 11월부터 3737만 4599권의 한시적 기록물을 대상으로 재분류 사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 4월 현재 1465만 6623권을 제출받아 71만 5337권을 준영구 기록물로 상향 조정하는데 그쳤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8개월 동안 전체의 39.2%에 해당하는 기록물을 제출받아 1.9%밖에 재분류를 못한 셈이다. 준영구 기록물로 재분류하는 기준은 ▲외국 원수나 총리, 주요 외국인사 동정 중 대한민국과 관련되는 사항 ▲국제기구조약, 협약, 의정서 추진관련 주요 활동 ▲대규모 예산이 투입된 공사 등이다. 국가기록원 자료에는 준영구 기록물로 재분류된 사례는 예시하지 않았다.


이 사업에 외부 전문가로 참여했던 이승휘 한국국가기록연구원 부원장은 “단기간에 산더미 같은 기록물을 재분류한다는 발상 자체가 부실을 예고했다.”면서 “재분류 사업을 장기적인 계획없이 임기응변식으로 진행해서는 안되며 충분한 검토와 장기적 계획을 가지고 재분류 사업을 다시 해야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선 기관들 “제목만 보고 재분류”


재분류 사업은 의욕만 앞세워 애초부터 무리한 사업을 추진했다는 게 국가기록원 안팎의 평가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기록물이 폐기되는 것을 막자는 취지가 국가기록원의 사업 예측 실패와 조급증, 형식적인 조사로 인해 취지가 훼손당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기록원은 2005년 11월부터 2개월 만에 ‘보존기간 20년 이하 기록물’ 3737만권을 재분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2005년 11월3일 각 기관에 공문을 보내 “11월15일까지 ‘기관별 재분류계획’을 마련, 국가기록원으로 보내고 최종 결과를 12월31일까지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재분류사업은 각급 행정기관들이 기한을 맞출 수 없어 수차례 연기했고, 올해 6월까지 끝내려 했지만 이마저도 힘들어 다시 12월까지 연기된 상태다.


일선에선 기한을 맞추기 위해 기록물의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검토하지 못하고 ‘제목’만 보고 재분류를 해야 했다고 증언한다. 국가기록원의 내부 중간보고서조차도 “목록만으로 검토함으로써 최적 재분류 결과 도출에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2005년 4월 국가기록관리혁신 로드맵 중 미이관기록물관리대책에서는 보존기간 10·20년만 재분류 대상이었다.”면서 “그러나 국가기록원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보존기한 1년,3년,5년까지 포함시키면서 대상 기록물이 830만권에서 3737만권으로 늘어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애초 사업 예측을 제대로 못했다.”고 인정했다.


●“무리한 추진” 우려에도 강행


각급 기관들은 “무리하게 추진돼서는 안된다.”고 요청했으나 독촉 공문을 계속해 내려 보냈다. 결국 계속되는 독촉에 의해 각급 기관들이 무리하게 자료를 제출했고, 이로 인해 역사·증거·업무적인 가치를 기준으로 한 정상적인 재분류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처음에는 기관 제출을 유도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사업을 추진해 보니 특별행정기관이나 지자체는 기록연구사 등 자체 전문가가 없어서 국가기록원이 직접 검토를 하면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털어 놨다. 실제로 지난 5월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한시보존기록물 재분류 현황’에 따르면 특별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는 제출 실적이 거의 없었다.


(급하게 서두르다 보니 일선 행정기관과 조율이 제대로 안돼 사업차질이 심각하다. 국가기록원 관계자조차 “기관마다 사정이 있어서 단기간에 끝내기 어렵다.”면서 “기관협조가 많이 안되고 있다.”고 인정한다. 그는 “처음엔 기관제출을 유도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사업을 추진해보니 특별행정기관이나 지자체는 자체 전문가가 없어서 기준적용하기도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한시보존기록물 재분류 현황’(2007년 4월 현재)을 보면 특별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는 제출 실적이 거의 없었다. 특별행정기관은 재분류검토대상 892만권 가운데 200만권, 지방자치단체는 1650만권 가운데 218만권만 국가기록원에 제출했을 뿐이다.

중앙행정기관은 524만권 가운데 494만권을 국가기록원에 제출했다. 심지어 국가기록원 상급기관인 행정자치부도 국가기록물DB사업과 맞물리면서 사업추진이 늦어져 전체 대상 3만여권 가운데 2100여권만 제출했을 뿐이다.)


●국가기록원 ‘실적 올리기´ 급급


국가기록원은 안팎의 비판에 직면하자 5월부터 7월까지 2단계 사업이란 이름으로 재분류 사업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2단계 사업은 재분류를 마친 기관 가운데 40개 기관을 국가기록원 담당자가 직접 실사를 하는 것”이라면서 “목록을 보고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내용도 검토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한 정부 기록연구사는 “기록원의 발상은 기존에 했던 재분류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라며 “장기 계획 없이 기록관리정책을 임기응변으로만 진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정부 기록연구사는 “일선의 문제 제기를 잠재우고 사업을 강행하려고 국가기록원이 ‘청와대 지시’라는 표현을 써서 마치 재분류사업을 청와대에서 주도하는 것처럼 왜곡한다.”고 주장했다.


(국가기록원이 단기간에 실적 올리기에만 급급한 것이 졸속추진의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관계자는 “국가기록원 상층부에 있는 관료 출신들이 ‘기록’을 너무 행정 절차로만 인식한다.”면서 “최근에는 대외홍보에만 열중하는 경향이 심하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중앙부처 기록연구사는 “로드맵에서 제시한 시간표에 맞춰 뭔가 해야 한다는 식으로 성과만 내려는 관료주의 경향”을 꼬집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기사일자 : 2007-06-18    5 면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