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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

자칭 혹은 참칭 ‘시민단체 공동신문’

by betulo 2008.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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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신문은 어떻게 망했나 (2)

2006년 12월 14일 시민의신문 주주총회장에서 시민의신문 전 사장이었던 이형모 ‘대주주’께서는 우렁하고 분명한 목소리로 한국 시민운동의 한 시대를 끝맺는 기념사를 했다.

“시민의신문 사장 내정자는 주주들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시민의신문 주식을 무상감자하려고 합니다. 이는 시민의신문 주주들의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동입니다. 저는 시민의신문 대주주로써 그리고 수많은 분들을 시민의신문 주주로 모셨던 사람으로서 시민의신문 주주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 저는 시민의신문 사장 내정자 취임에 반대하며 주주들의 의견을 모아 새로운 사장을 선임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는 시민의신문 전체 주식의 20~30%를 갖고 있었고 우호지분까지 합하면 그 비율은 거의 50%나 됐다. 시민의신문 주주총회를 통해 그는 자신을 완전히 몰아낼 무상감자와 새 사장 선임에 딴지를 걸었다. 그 그 딴지는 너무나 강력해서 주총장에서 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시간을 끌어서 주총을 무산시키는 것 뿐이었다.

시민의신문은 1993년 경실련신문에서 시작했다. 1994년 독립한 시민의신문은 이후 ‘시민단체 공동신문’을 모토로 내세우며 조금씩 성장했다. 시민운동 확대와 함께 시민운동 전문지였던 시민의신문의 위상은 높아졌다. 시민단체들은 ‘시민단체 공동신문’이라는 모토 사용을 용인했으며 일부는 ‘묵인’했다. 초기에 십시일반 돈도 보탰다고 들었다. 하지만 2006년 주주총회 당시 시민단체들의 주식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이형모씨는 주주총회 내내 ‘대주주 권리’와 ‘주주 이익’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 주주들은 시민의신문 내내 얼굴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이형모씨는 ‘주주 이익’이라는 말 한마디로 ‘시민단체 공동신문’을 개인회사로, 광범위한 시민운동가와 직원, 독자 등 이해관계자들의 회사를 자신과 일부 주주들이 주인인 회사로 성격을 바꿔버렸다. (그날 이후로 나는 참여연대와 경제개혁연대가 벌이는 소액주주운동에 회의적인 사람이 됐다.)

시민의신문 이사회, 편집위원회 면면을 보라. 내노라하는 시민단체 대표자들과 시민단체에 열심인 인사들 이름으로 가득차다. 시민의신문 창간기념행사에는 시민단체 대표급 관계자들과 정치인, 장관들까지 인산인해를 이뤘다. 하지만 주총장에서 진실이 드러났다.

시민의신문은 ‘시민단체 공동신문’도 아니었고 ‘시민단체 공동신문’을 자처한 신문도 아니었다. 시민의신문은 ‘시민단체 공동신문’을 참칭했을 뿐이다.

‘시민단체 공동신문’은 이형모라는 매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시민의신문에 이름을 걸어줬던 명망가들은 대부분 이형모씨를 통해서 그랬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자주 자주 시민단체 명망가들을 만나고 ‘관리’함으로써 ‘시민단체 공동신문’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확대재생산했다. 그게 시민의신문을 먹여살렸던 거다. 하지만 시민의신문 사태를 통해서, 그리고 주주총회를 통해서 그건 모래성에 불과했다는 게 드러나 버렸다.

시민의신문 사태 내내 ‘시민운동’이 같이 비판을 받았다. 시민단체들이 시민의신문을 도와주지 않는다는 말에 나는 꼭 동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민운동 명망가들의 행태는 꼭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그들이 누리는 ‘과잉 대표성’은 시민단체들의 연대활동을 제약했다. 자기 단체 대표가 시민의신문 이사로 있는데 시민의신문을 비판하기는 쉽지 않은 노릇이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다. 명망가들이 단체에 미치는 영향력은 분명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단체 따로, 대표 따로’라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지난 1월10일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30여개 시민단체들은 최근 파행을 겪고 있는 시민의신문 사태 해결을 위해 ‘시민의신문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이들은 시민의신문 이사회를 비판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지만 당시 이 신문 이사 B씨는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를 겸하고 있었다. (서울신문, 2007.4.27일자 기사. 내가 썼다.)


시민의신문 사태는 시민단체들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과잉 대표성’을 만천하에 보여줬다. 시민운동식 경제민주화운동에 대한 회의감을 높였다. 이러저러한 인적 네트워크가 얽히고 설키면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상황도 초래했다. 그 결과 시민단체들의 정치적 정당성을 훼손했으며 위기관리능력 부재와 이름걸기식 연대활동의 한계를 만천하에 드러냈다.

그렇게 시민운동의 한 시대가 끝을 맺었다. 이에 대한 성찰은 여전히 부족하다. 시민운동의 또다른 시대는 아직 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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