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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

"이형모는 나쁘다"는 우리편?

by betulo 2008.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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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신문은 어떻게 망했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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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편가르기는 우리편을 떠나 보낸다

모든 것의 원인을 자신이 설정한 어떤 것에 환원해 버리는 환원주의는 언제나 위험하다. 반공주의는 “북한은 무상교육을 실시하는데 우리도 그런 걸 배워야 한다.”는 말을 북한을 고무찬양하는 것으로 환원해 버린다.

그 반대 극단에 있는 분들은 민주노동당이 이번 대선에서 참패한 것조차 미국의 책동으로 아주 편하게 환원해버린다. 길을 걷다 소나기를 만나도 노무현 탓 (혹은 김정일 탓, 마귀 탓, 극우꼴통 탓, 빨갱이 탓)이라는 사람은 속은 편해서 좋을 거다.

환원주의는 사태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하면서 ‘성찰’을 가로막는다. 한국의 수많은 반공주의자들은 자신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자유민주주의’가 뭔지조차 잊어버리고 “간첩 척결을 위해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제약해야 한다.”고 외친다. 그 반대 극단에 계신 분들은 주체사상의 핵심이 ‘자주성’이라는 것도 잊어버린 채 북한에 대해서는 조그만 비판도 참지 못하고 미국에 대해서도 자주적인 성찰은 뒷전으로 밀어내 버린다.

시민의신문 사태 과정에서도 환원주의는 기승을 부렸다. 공금횡령이 문제가 됐을 때 어떤 분은 “이형모 사장과 맞서 싸워야 하니까 우리 직원들은 단결해야 한다.”는 이유로 징계를 반대한 적이 있는데 모든 사태의 원인과 책임을 이형모에 돌리는 태도는 우리들의 부족한 점을 잊게 만든다.

反이형모가 아니면 親이형모?

시민의신문 노조, 정확하게는 언론노조 출판지부 시민의신문 분회는 이형모 사장 퇴진을 계기로 총회를 열었다. 공석이던 노조 지부장을 선출하고 집행부를 구성했다. 그리고 시민의신문 사태 해결을 위한 활동에 나섰다. 하지만 가장 큰 우군이 되어야 할 시민단체들은 관망세로 돌아섰다.

왜 그렇게 됐을까. 구구절절한 얘기는 자칫 감정싸움만 일으킬 수 있으니 핵심만 얘기해보자. 먼저 무리한 ‘피아 구분’을 지적하고 싶다.

노조는, 그리고 그 후 결성된 시민의신문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처음엔 ‘이형모 빼고 우리 편’으로 나섰다. 하지만 시민의신문 이사회를 구성하던 시민단체 명망가들이 사실상 이형모 전 사장 감싸기로 일관하자 ‘이형모와 시민의신문 이사회 빼고 우리 편’이 됐다.

기대에도 불구하고 시민단체들의 참여가 지지부진하자 “메이저 단체들은 어디로 갔느냐.”면서 ‘이형모와 시민의신문 이사회와 직원들을 지지하지 않는 시민단체들을 빼고 우리 편’이 돼 버렸다. 명시적이진 않았지만 이런 활동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일부 직원들도 ‘우리 편’에서 제외됐다.

사태의 직접적 계기가 됐던 피해자가 일부 시민운동 명망가들의 중재로 가해자측과 ‘합의’를 보자 일부 ‘우리 편’은 피해자조차도 ‘니네 편’으로 몰기도 했다. 마지막에 남은 건 시민의신문 노조 ‘집행부’와 일부 시민단체들 뿐이었다.

이런 전술의 뒤에는 전략설정에 대한 논쟁이 자리하고 있다. 공대위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노조 집행부를 비롯한 시민의신문 직원들의 다수 여론은 일관되게 ‘이형모 공격’에 맞춰져 있었고 그건 그들이 설정한 전략에 충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나는 거기서 첫단추를 잘못 뀄다고 본다.

“이형모는 나쁜 편”이라고 외치는 게 우리 목적이었나

시민의사태에서 핵심 정세 혹은 과제는 두가지였다. 하나는 성추행 가해자에 대한 분명한 책임을 묻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시민의신문을 정상화하는 것이었다.

가해자는 책임을 인정하고 사장에서 물러났으며 이후 (시점에 대해서는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상호 합의를 봤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피해자가 사태 발생 이후 겪었을 극심한 마음고생을 조금이라도 생각해 본다면 어떤 식으로든 피해자의 행동을 비판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어쨌든 핵심 정세에서 첫번째 문제는 핵심에서 벗어났다. 이제 중요한 건 두번째 문제였다. 하지만 노조 혹은 공대위는 첫번째 목표에 너무 많은 정력과 시간을 쏟느라 두번째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만약 두번째 목표를 중시했다면 시민단체들과 섣불리 선을 긋지는 않아야 했다. 마찬가지로 시민의신문 이사들을 비롯한 시민단체 명망가들을 너무나 쉽게 적으로 돌리지도 않았을거다.

이 부분은 논란의 소지가 있을거다. 시민단체 명망가들의 실망스런 행태를 인정하냐는 반론이 벌써부터 귓가에 울린다. 하지만 시민의신문 정상화를 위해서는 그들의 힘이 필요했다. 최소한 그들을 가해자와 분리시키려는 노력이라도 했어야 했다.

2007년 1월 시민단체 사무국장급들을 초청해서 간담회를 한 적이 있다. 방금 내가 얘기한 정세의 두 축은 사실 그 자리에서 인권연대 사무국장 오창익이 얘기했던 내용을 빌린 것이다.

당시 오 국장은 이제는 이형모를 공격하는 것보다는 시민의신문 정상화에 힘을 쏟아야 하며 그걸 위해 시민단체들이 어떻게 도우면 좋겠는지 물었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초청했던 노조에서는 이에 관한 어떠한 대안도 내놓지 못했다.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나는 노조 혹은 공대위가 모든 사태의 책임을 이형모에게 지우는 환원주의에 빠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 환원주의가 노조 혹은 공대위가 보여준 ‘내 편 아니면 저 편’ 식의 이분법과 이형모 타격에만 초점을 두는 협소한 투쟁전술의 원인이라고 하면 지나친 발언일까? 사실 어떨 때는 그 환원주의야말로 그 모든 것을 설명하는 행동들의 진정한 목표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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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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