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신문은 어떻게 망했나(1)
시민의신문을 그만둔 지 1년이 됐습니다. ‘시민의신문 사태’라고 하는 게 2006년 9월에 발생하고 나서 2007년 2월 1일 사표를 냈습니다. 사태 당시 항상 제 머릿속을 맴돈 건 비슷한 시기에 ‘사태’가 발생한 시사저널과 시민의신문의 차이가 뭘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쪽은 모든 편집국 기자들이 똘똘 뭉쳐 편집권독립을 위해 싸웠고 많은 분들이 이들과 함께 했습니다. 다른 한쪽에선 직원들도 사분오열된 채 초기 도와주려던 분들도 다 떨어져 나간 채 고립됐습니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요.
이제 시간도 얼추 흘렀고 당시 고민을 다시 들춰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 합니다. 제가 이 글에서 밝히는 건 순전히 제 개인적인 견해일 뿐입니다. 그것도 제가 하고 싶은 말의 작은 일부분일 뿐입니다. 저를 돌아보는 차원이라고 생각하며 두서없이 적어보렵니다.
그 동안 많은 인터넷 매체에서 시민의신문 사태를 보도했습니다. 관심과 연대의식에 늦게나마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관련 보도를 거의 다 읽어봤지만 시민의신문 사태를 종합적으로 다룬 기사는 아쉽게도 없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취재원 제약'이라는 생각도 듭니다만, 다르게 보는 사람들의 얘기가 완전히 묻히면서 노조-경영진의 양자대결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그렇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경영진과도 생각이 다르고 노조와도 생각이 다릅니다. 그리고 그런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2003년 초부터 시민의신문에 있었고 당시 사태를 직접 지켜봤던 사람으로서 시민의신문 사태를 한 마디로 정리하라면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이걸로 시민운동의 한 시대가 끝났다.” 아직 시민운동의 새 시대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이 글이 시민운동을 고민하는 모든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망하는 집구석과 잘되는 집구석의 차이를 통해 조직발전을 고민하는 분들에게도 나름대로 시사점을 던져주길 바랍니다.
‘성추행’은 사실이었나?
‘시민의신문 사태’는 직접적으로 2006년 8월 말 이형모 당시 사장이 모 시민의신문 유관단체 간사를 성추행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비롯됐습니다.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습니다.
피해자측에선 일부 시민의신문 관계자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도움을 청했고 시민의신문 내에서도 사태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이형모 사장은 9월 초순 시민의신문 직원들이 다 지켜보는 앞에서 모든 책임을 진다며 사장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상황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실체적 진실’ 이전에 ‘사실’을 거론해야겠습니다. 성추행 사실은 있었을까요? 있었습니다. 근무시간에 집무실에서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물론 2004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고 사장은 노조에 내용증명을 보내 사과와 재발방지를 약속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피해자는 시민의신문 직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1년만에 또다른 피해자가 유사한 피해를 당했다는 것은 시민의신문 모든 구성원들에게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나중에 사장측과 그를 옹호하는 시민단체 대표자급 일부에선 피해자측에서 사태를 침소봉대했고 그걸 빙자해 사장을 회사에서 몰아내려 했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제가 알기로 그것은 일부 시민의신문 인사들이 피해자 요구조건을 왜곡하면서 오해를 유발했습니다.
피해자는 애초 사장에게 시민의신문에서 물러나고 시민의신문 유관 조직에서도 물러나며 그가 이름을 올렸던 시민단체에서도 물러나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인사들은 그걸 사장측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시민의신문 주식을 다 내놓으라는 요구까지 집어넣었습니다. 사장측에선 당연히 그런 오해를 품을 수 있는 개연성은 존재했습니다.
사장 땜에 회사 망했다?
두번째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일부에서 끊임없이 주장하듯이 “사장 때문에 회사가 망했느냐”는 부분입니다. (물론 시민의신문은 현재 상법상 존재하기 때문에 망했다는 건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시민의신문 사태 당시 노조 집행부와 비상대책위원회 쪽에서 그런 주장을 폈습니다. 이는 제가 보기엔 사장의 책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를 비판하기 위해서 내놓는 면에서는 이해가 가지만 명확한 사실관계는 좀 다릅니다.
사장이 분명하게 비판을 받아야 할 부분은 그러저러한 사업들과 사세확장을 통해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지대추구에 몰두했다는 것이 될 것입니다. 분명히 비판받아야 하는 도덕적 해이였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사장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반대입니다.
분명히 사장이 물러나고 나서 비상경영체제가 되면서 시민의신문의 경영상태는 급속히 악화됐습니다.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시민의신문 광고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사장이 없어지니 광고영업에 직접적인 타격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걸 생각한다면 경영악화는 필연적입니다. 하지만 그게 사장 책임은 아니지요.
사장이 “문어발식으로”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했고 그 때문에 경영이 위기에 처했으니 사장 책임이라는 주장도 있지요. 일견 맞는 말입니다. 분명 사장은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했고 그 과정에서 냉정한 사업판단보다는 자기 영향력 확대와 친소관계에 얽매인 판단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장이 그렇게 한게 한 두 해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시민의신문은 2003년 무렵부터 2005년까지 흑자를 냈고 직원들 월급은 100% 가까이 늘었습니다.
사장이 급작스럽게 물러나지 않았다면 사장은 아마도 끊임없는 비판에 시달리면서도 나름대로 방식으로 경영을 계속해 나갔겠지요. 물론 한계에 부닥쳐 경영 위기상황이 발생했을수도 있지만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사실 사장이 확장한 사업들인 재외동포신문 창간, 희망포럼 창립 등은 직원들 입장에선 시민의신문에서 발생한 수익을 (“쓰잘데 없는) 다른 곳에 이전하는 행위였고 사장의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한 것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측면이 있지요.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런 다각화를 통해 시민의신문의 위상을 높이고 광고수익에 간접적으로 기여하는 면도 있었습니다. 가령 동북아포럼을 몇년간 교수들과 함께 했는데 동북아포럼이 기업에서 얻는 협찬이 1년에 1억원 가까이 됐는데 그 수익의 대부분은 시민의신문으로 흘러왔습니다.
마치 재벌들의 다각화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와 비슷한 면도 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사람들은 다각화나 문어발식 확장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입니다. 망국의 지름길인양 인식하지요. 하지만 최근 장하준 교수 등 일각에서 제기하는 문제제기처럼 다각화가 만악(萬惡)의 근원인양 얘기하는 것도 썩 합리적인 비판 같지는 않습니다.
망하는 집구석은 도덕적해이가 창궐한다
사실 경영악화의 직접적인 계기는 제가 보기엔 9월인가 10월에 발생했던 ‘공금횡령’ 사건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 사건이 시민의신문 경영악화에 ‘치명타’였습니다.
그 사건이 아니었다면 ‘전화위복’의 희망이 존재했지만 그 사건은, 그리고 그 사건을 둘러싼 난맥상은 전화위복의 가능성을 급격히 잠식해 버렸습니다. 더구나 가장 안타까운 건 그 사건을 일으켰던 이들이 그 후로도 상당 기간 시민의신문 직원들이었으며 시민의신문 노조원이었다는 겁니다. 기억에 의존해 당시 상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이번에도 불행의 씨앗은 사장이 뿌렸습니다. 나중에야 밝혀졌지만 사장은 단기자금이 필요할때 업무국 일부 직원들에게 사채를 빌려 썼습니다. 직원들 중 일부는 적금을 깨서 회사에 돈을 빌려주기도 했다는데 그건 이자가 아주 높았던게 크게 작용했습니다. 사태 당시에도 20% 가까운 이자를 말마다 꼬박꼬박 회사에서 받았으며 그 전에는 한때 30%를 넘나들었다고 합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은행이나 주식투자보다도 짭짤한 재테크였습니다. 심지어는 회사에 사채를 빌려주던 4명이 회사측에게서 “원금을 다 갚겠다”고 하자 서로 원금을 안받겠다며 눈치보기를 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원금을 받게 되면 이자수익이 없어지니 서로 “니가 받아라”고 했다는 거지요.
회사에 사채를 빌려준 사람은 그 직원들만 있었던게 아닙니다. 모 이사도 액수는 적었지만 그런 사람중 하나였고 심지어는 사장의 부인과 인척도 있었습니다. 사장은 물러나면서 자신의 친인척들의 사채는 원금까지 깨끗이 처리하고 물러났으니 그것만으로도 도덕적 해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겁니다.
사장이 물러났을 당시 그런 사채가 2억원 가까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모 이사와 직원 3명이 무단으로 회사통장에서 1억원 가량 인출해 자신들이 나눠가지는 사태가 발생한 겁니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각종 세금을 비롯해 인쇄비 등 결제대금까지 한순간에 구멍이 나 버렸습니다.
모 이사가 가져간 돈은 2000만원 안팎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결국 대다수는 직원들이 가져간 거지요. 명백한 공금횡령이었습니다. 이들이 당시 은행잔고를 거의 다 털어가면서 직원들은 10월 월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모 이사는 그 사실이 알려지자 재빨리 사표를 쓰고 회사를 나가 버렸습니다. 하지만 직원들은 그 후로도 상당기간 회사에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순간부터 직원이라기 보다는 회사에 상주한 사채업자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그 후 나머지 사채까지 갚으라며 회사를 압박했고 돈을 갚지 않으면 가압류를 걸겠다는 발언을 공공연히 했습니다. ‘회생’ 노력은 번번히 사채에 발목이 잡혀 버렸습니다. 심지어 광고수익으로 들어온 돈까지 이들이 낸 가압류에 걸려 지출을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회사는 직원대표와 편집국장, 몇몇 이사들로 비상경영위원회를 꾸렸는데 비상경영위원회도 노조도 이 문제에 대해 손을 전혀 쓰지 못했습니다. 물론 초기에 안일한 대응도 있었습니다만 징계를 한다거나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거나 하면 가압류가 들어온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지요.
2008년 2월17일 글을 쓰다 길어져서 첫 회를 먼저 올립니다.
<글 순서>
[2] 자칭 혹은 참칭 ‘시민단체 공동신문’
[3] "이형모는 나쁘다"는 우리편?
[4] "이형모 나쁜넘"을 넘어 우리를 돌아보자
"이형모는 나쁘다"는 우리편? (1) | 2008.0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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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혹은 참칭 ‘시민단체 공동신문’ (0) | 2008.0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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