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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

대통령 선거, 13번을 찍는 한이 있더라도...

by 자작나무숲 2012.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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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대통령 선거. 긴장이 안될수가 없습니다. 불현듯 5년전 썼던 글을 다시 꺼냈습니다. 간곡한 마음으로 투표를 촉구하는 글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투표율은 63%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5년간 댓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내일 투표에 따라 우리는 또다시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번에는 제발 좀 제대로 된 선거를 해봅시다. 


1차 발행: 2007년 12월19일. 

2차 발행: 2012년 12월18일.



‘투표시간 연장 대전공동행동 대전시민아카데미’가 내건 현수막. 이걸 보고도 투표를 안하시겠습니까?



내가 선거권을 갖게 된 건 90년대 초반이었다. 하지만 실제 투표장에 가 본 건 1998년이었다. 1998년 지방선거에 투표하러 집 근처 투표장에 갔다. 면전에서 쫓겨났다. 신분증을 선거인 명부와 대조하던 공무원은 잠시 나를 밖으로 불런 낸 뒤 “선거권이 없다”고 말해줬다. 집행유예 기간이라는 거였다.


나는 “1998년 초 특별사면과 복권 조치를 받았다”고 반박했지만 그 공무원은 “복권 사실을 주소지에 신고하지 않았다.”면서 당시 주소지였던 면사무소에서 나온 공문을 보여줬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해해 달라.”는 말과 함께.


사실 자세하기 밝히고 싶지 않은 이유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아서 1996년 국회의원선거, 1998년 대통령선거에 투표를 못했다. 1995년 지방선거도 비슷한 상황.


아침 6시에 들뜬 마음으로 투표장에 갔던 나는 기분만 잡쳐서 돌아왔다. 학교 도서관에 갔지만 곧 짐을 싸서 집에 들어와 버렸다. 2000년 국회의원 선거 때는 미국에 있었는데 부재자 투표를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또 투표를 못했다. 결국 나에게 최초 투표는 2002년 지방선거가 돼 버렸다. 20대 후반에야 처음으로 투표를 하게 됐을 때 심정은 투표일을 그냥 하루 쉬는 날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해 못할 ‘감동’이었다.


오늘은 대통령 선거일이다. 동사무소에서 투표를 하면서 13번을 찍을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1994년 말 서울대에서 ‘학우들의 반란’이 일어났다. 무효표가 규정 이상으로 많이 나와버렸다. 결국 재투표를 해야 했다. ‘찍을 사람이 없다’는 사람들, ‘찍어봐야 다 똑같더라’는 분들에게 간곡하게 권하고 싶다. 차라리 13번을 찍는 한이 있더라도 투표는 해야 한다.


‘침묵하는 다수’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건 정치든 사회든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품’에 불과하다. 사회를 움직이는 건 목소리를 내는 소수다. ‘침묵하는 다수’는 ‘침묵하지 않는 소수’를 결코 이길 수 없다. 오로지 ‘침묵하는 다수’가 침묵을 때고 ‘침묵하지 않는 다수’가 될 때만 변화가 있다. 민주주의는 결국 ‘침묵하는 다수’에서 최대한 많은 이들을 끌어내서 ‘침묵하지 않는 다수’로 만들어내는데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떤 이들은 ‘국민들은 투표일에만 민주주의를 누리고 그 다음 투표일이 있는 몇 년 동안 노예 상태로 돌아간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그 말은 투표일에도 노예가 돼서 백년만년 노예가 되라고 권하는 말이 아니다. 대표를 뽑은 사람들이 노예가 될지 주인이 될지는 그 다음 문제다. 일단 하루라도 주인이 되고 다음 투표일까지도 주인이 되도록 노력하는게 중요하다.


두서없는 얘길 마치겠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투표는 하시라. 당신이 정치인들 욕할 때 그 정치인을 뽑은 건 바로 당신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라.


“국민들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대표를 갖는다. 그리고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민주주의를 갖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침묵하는 다수’는 ‘침묵하지 않는 소수’를 결코 이길 수 없다. 오로지 ‘침묵하는 다수’가 침묵을 때고 ‘침묵하지 않는 다수’가 될 때만 변화가 있다. 민주주의는 결국 ‘침묵하는 다수’에서 최대한 많은 이들을 끌어내서 ‘침묵하지 않는 다수’로 만들어내는데 있지 않을까... (사진춮처=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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