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雜說

독자와 만나는 저널리즘, 한 일본매체 종사자의 경험담

by betulo 2012. 11. 9.
728x90


 

[한국언론정보학회 정기학술대회] 

저널리즘학연구소 '한국 저널리즘의 미래를 위한 10대과제']


2012년 11월9일 저널리즘학연구소에서 제시한 '미디어 아젠다' 가운데 하나는 '저널리즘 친화적 문화를 형성하라'이다. 이에 대해서는 일본 매체인 산교타임스 서울지국장으로 일하는 엄재한의 경험담이 중요한 시점이 될 것이다. 그가 구술한 내용을 발표문으로 정리했으며 전문을 옮겨놓는다. 



먼저 간단히 내 소개를 하겠다. 대학에선 중문학을 전공했고, 일본 도쿄에 있는 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했다. 일본 아시아경제연구원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다가 산교(産業)타임스에 1994년 입사했으니 내년이면 경력 20년차 기자다. 짧은 일본어 실력에도 불구하고 기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산교타임스가 아시아 지역뉴스를 강화하려 했기 때문에 한국어와 중국어, 일본어 3개 언어를 모두 할 수 있는 걸 높이 산 덕분이었다.


  산교타임스는 종신고용제인 반면 수습기간이 2년 6개월이나 된다. 수습기간에는 월급도 아르바이트 수준으로 받고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수습기간이 끝난 뒤 편집국이 아닌 사업부서로 배치할 수는 있지만 고용을 취소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나는 수습을 마치고 곧바로 상하이에서 3년간 특파원 생활을 했다. 이후 한국지국에서 일하고 있다.






 산교타임스는 한국인들에겐 생소한 매체다. 1964년 창간했으며 취재기자가 100여명이고 특파원은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중국 상하이, 한국 서울에 특파원을 두고 있다. 월~금까지 일주일에 5회 발행하는 주간 뉴스페이퍼인데 요일별로 특화된 지면을 내놓는다. 월요일에는 에너지와 환경, 화요일에는 유통 자동차 금융, 수요일엔 IT 반도체 디스플레이 신재생에너지, 목요일엔 의료 분야, 금요일은 산업계 동향 등이다. 이런 양식은 일본에서도 매우 독특한 경우다. 틈새시장을 노린 편집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1년 구독료 6만엔

 

산교타임스는 주된 수입이 유료독자에서 나온다. 구독 비중이 90%, 광고가 5%, 세미나 등 사업이 5% 정도 된다. 유료 부수가 10만부 가량이고 정기독자는 약 30만명이다. 사실 산교타임스는 일본은 물론 전세계를 통틀어 가장 비싼 신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연간 구독료가 무려 6만엔(약 90만원)이나 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연간 2만5000엔이라는 걸 생각하면 얼마나 비싼 신문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해마다 분야별 총람을 40권 발간하는데 유료독자라 하더라도 별도 비용을 지불해야 총람을 구입할 수 있다.


  매주 개최하는 세미나는 산교타임스를 독자들과 이어주는 중요한 행사다. 물론 별도 참가비 3만엔을 내야 한다. 그래도 세미나마다 50~100명이 참석한다. 예를 들어 한국의 신재생에너지 관련 동향을 다룬 세미나라고 하면 내가 한국 정부와 산업계 동향을 발표하고 한국 기업 관계자와 한국 정부 관계자가 각각 발표하는 식이다. 일본 국내 산업계를 다룬다고 하면 담당 기자, 관련 기업 임원급, 정부 관계자가 발표를 하는 형식이다. 다시 말해, 모든 세미나에서 현장기자는 주요 발표자로 참여한다.


매주 세미나를 개최하고 그 세미나마다 기자가 발표를 하는 저력은 무엇일까. 세미나에서 기자들이 발표하는 내용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이 취재하고 보도했던 내용이다. 총람 가운데 내가 담당하는 것만 해도 10권 가량 된다. 매달 총람 마감이 한 권씩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런 식으로 총람을 정리하다보면 산업계 동향에 해박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기자-언론-독자 상생을 통한 선순환구조

 

  세미나를 통해 인기 강사로 발돋움하기도 한다. 나만 해도 고정팬 20명 가량이 있다. 내 성을 ‘오무’라고 발음해서 ‘오무판’이라고 부른다. 내 팬들은 주로 기업에서 전략기획 쪽 일을 하는 분들이다. 그들은 내가 나오는 세미나가 있다고 하면 일단 내 이름만 보고도 오는 분들이다. 그들에겐 3만엔이 문제가 아니다. 생생한 취재 뒷얘기를 듣고 싶어한다. 그런 식으로 20년 가까이 하면서 나도 많은 단련이 됐다. 취재하고 기사쓰고 총람쓰고 세미나 발표하고 토론도 하고… 전문가로서 훈련이 되는 것이다. 회사로선 수입도 생기고.


내 경우엔 1년에 6~7번 강연을 한다. 어떨 때는 파워포인트로 100장 정도를 준비해서 몇 시간 동안 발표를 하기도 한다. 나는 15년쯤 전부터 강연을 시작했다. 당시는 무대에 서면 목이 말라서 말이 안나올 정도였다. 떨리고, 일본어로 하니까 더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세미나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는 시간이 무척이나 즐겁다.  


  산교타임스는 유료독자, 총람과 세미나라는 다양한 사업 등을 통한 안정된 경영기반을 갖고 있다. 이걸 바탕으로 기자들에게 종신고용을 보장하고 평균이 넘는 급여수준을 유지한다. 취재와 세미나, 총람 등을 통한 기자 훈련이 제도화돼 있다보니 기자 전문화에 유리하다. 이는 다시 양질의 기사로 이어진다. 좋은 기사가 있으니 비싼 구독료에도 구독자가 유지되고 이는 경영을 안정시킨다. 우수한 인재들이 기자로 유입된다.  


한마디로 기자-언론-독자가 모두 상생하는 선순환구조를 이뤄낸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 일하다보니 항상 독자서비스를 고민하게 된다. 짧은 기사 하나를 쓰더라도 독자 입장에서 기사를 쓰고, 통계 하나를 쓰더라도 좀 더 정확한 최신 통계를 찾게 된다. 경영과 취재, 기사, 편집 모든 면에서 독자를 생각하게 된다. 세미나를 통해 독자들의 요구를 자주 접하게 되고 그걸 현장 기사나 세미나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일본에서 기자는 사회적 지위가 한국만큼 높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우월감 없이 독자들과 더 친근하고 가까워질 수 있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오만한 한국 기자들

 

  한국 기자들은 잘난체하고 목이 뻗뻗하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잘난 건 맞다. 어려운 시험을 통과했고 많은 공부를 해서 기자가 됐다. 일본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학력이나 배경이 좋다. 하지만 독자에 대한 서비스 정신이 너무 없다. 단적으로 독자들이 질문하고 문제제기할 수 있는 창구를 제대로 갖춘 곳도 없다. 


  예전에 매일경제에서 방한한 일본 외무장관 이름을 잘못 쓴 걸 봤다. 편집국에 전화를 했다. 마침 주말이었는데, 전화받는 사람은 있는데 어쩔 줄을 모르더라. 편집국장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했는데 전화 안왔다. 며칠 뒤 편집국으로 전화를 했는데 회의하고 바쁘다며 편집국장이 전화를 받질 않는다. 나중에는 산교타임스 서울지국장이라고 신분을 밝혔는데도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그렇다고 정정기사가 나온 것도 아니다. 이런 태도가 한국 언론계에 만연해 있다.


 한국 언론은 국민을 중학생 정도로 취급한다. 몇 개월 전에 쓴 기사를 재탕해서 또 쓰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결국 국민들이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 아니겠나 싶다. 그 이면에는 우월감이 자리잡고 있다. 대개 한국 언론은 친정권 성향이다. 대다수 언론은 정권 초기에는 찬양기사 일색이다. 대선에서도 유력 후보한테 쏠린다. 그 와중에 국민들을 속이고 또 속인다. 이런 것들이 모두 독자가 신문을 멀리하는 요인이 된다. 이러니 독자들이 돈을 지불하고 신문을 읽지 않으려 한다. 자업자득이다.


  기자 초년병 시절 나를 가르쳤던 선배기자는 인터뷰가 있으면 무조건 인터뷰장소에 10분도 아니고 5분 전에 도착하도록 나를 교육시켰다. 약속시간에 늦는건 절대 금기다. 일찍 가더라도 근방에서 대기하다가 시간이 되면 뛰어서 헐레벌떡 가서 인사를 하도록 했다. 특히 인사는 반드시 세 번을 하도록 가르쳤다. 처음 인터뷰이를 만나서는 “바쁜데 시간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한다. 


  인터뷰를 하고 나서는 “독자들을 위해 좋은 말씀 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한다. 마지막으로 회사를 나와서는 인터뷰이가 일하는 건물을 바라보며 인사를 한다. 왜 그런가? 독자들을 위해서 뉴스를 만드는데 협력해준 분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의미였다. 세 번째 인사는 누가 본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혹시라도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 큰 감동을 받게 된다고 그 선배는 내게 가르쳐줬다.  


  한국 기업을 취재하다 보면 기업체에서 인터뷰는 곧 광고비라고 인식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처음엔 인터뷰 요청을 승낙했다가도 나중에 내게 전화를 걸어 광고비가 얼마인지 물어보는 것이다. 산교타임스에선 절대 그런게 없다. 지국장이 된 이후 지금까지 광고영업을 해본 적이 없다. 그게 가능한 것은 바로 산교타임스가 구독료 비중이 워낙 크니까 굳이 기업광고에 목을 매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현재는 일본의 과거, 그럼 미래는?

 

  내가 만나본 많은 한국 기자들은 대개 푸념만 한다. 자부심보다는 불만에 가득차 있다. 저렇게 능력있는 사람들이 뭔가 긍정적인 희망찬 얘길 하는 걸 보기 힘들다. 짜증을 내는 경우를 자주 본다. 나로서는 의아하다. 연차가 올라갈수록 당당하지 못하고 언론을 발판으로 뭔가 다른걸 하고 싶어하는 게 눈에 보인다. 데스크 하는걸 불편해하고, 광고나 사업 등 때문에 자기 생각대로 못하니까 뭔가 불만에 가득차 있다.


내 얘길 들으면 많은 한국 기자들이 부러워 한다. 하지만 일본도 1990년대까지는 정언유착이 매우 심했다. 차이가 있다면 한국에선 지금도 정언유착이 남아 있지만 일본에선 없어졌다는 점이다. 일본에서 정언유착이 가장 심했던건 1970년대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 시대였다. 당시는 일본 신문 행태가 지금 한국 언론환경과 비슷했다. 당시 기록이나 책을 보면 요미우리 신문은 다나카 총리를 대놓고 신격화할 정도였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30~1940년대엔 군국주의화 첨병 노릇을 했다.


2007년 대선 결과가 나오자 당시 SBS 앵커가 “오늘은 기쁜 날”이라고 말하는 걸 보고 숨이 턱 막힌 적이 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정언유착에 있다. 정언유착에 길들여진 자세가 재벌과 관계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신문이란 기본적으로 세상을 향한 창이다. 기자들은 기본적으로 권력이나 기업이 아니라 독자들 편에서 기사를 써야 한다. 그것이 선순환구조를 만드는 핵심이다. 당장엔 고통스럽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그게 신문이 사는 길이다. 쉬운것에 매몰되지 말고 본분을 생각해야 한다.


 종이신문 위기를 말하는 사람이 많지만 중요한 건 종이나 디지털 같은 형식이 아니다. 종이신문이 없어지더라도 신문은 남는다. 종이신문 죽는다고 지레 겁먹고 광고협찬하고 정권에 아부하는 건 자살행위다. 그렇지 않고 그 뛰어난 스펙을 가진 기자들을 잘 훈련시키고 활용을 하면 그야말로 언론 본연의 자세에서, 독자 편에서 일할 수 있다. 기사 쓰면서 독자들이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는 기자가 한국에 얼마나 있을까. 그런 기자가 있다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기쁜 마음으로 일할 수 있고 좋은 기사가 나온다. 그건 시스템 문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