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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

'새빨간 거짓말'로 본 양극화

by betulo 2007.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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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세가지 종류 거짓말이 있다. 그럴듯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

통계 수치로 외환위기 10년이 남긴 '양극화'를 살펴보려고 자료를 뒤지는 내내 어떤 위인이 통계의 본질을 짚었던 말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말하는 비정규직과 시민단체나 노동단체가 말하는 비정규직은 왜 그리 숫자가 다를까요. 비밀은 임시일용직에 있습니다. 정부통계는 임시일용직을 비정규직에 포함시키지 않습니다. 그것 때문에 통계는 200만명 가까운 차이가 발생합니다. 전체 임금노동자의 36%와 절반이상인 56%는 꽤 느낌이 다르니까요.

그럼 정부는 임시일용직을 어디에 포함시키는 걸까요? 설마 정규직에? 아님 실업자?

실업자 통계도 희한합니다. 정부발표로는 실업자가 계속 줄고 있습니다. 통계청은 9월 청년층 실업률이 7%로 지난해(7.3%)보다 0.3%포인트 감소했다고 발표했습니다. 2004년(7%)과 비교해도 큰 변화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정부 통계가 실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그게 아니라면 실상을 제대로 반영하고 싶지 않든가요.

역시 비밀은 실업률 통계가 전체 청년 인구를 기준으로 하지 않고 경제활동 인구만 기준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경제활동 인구란 ‘조사 대상 기간 중 한 시간 이상 일한 사람’인 취업자 수와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했지만 수입이 있는 일을 하지 못한 사람’인 실업자를 합한 인구라고 합니다. 이 기준대로 하면 취업 포기 상태인 '백수'나 '백조'는 실업률이나 취업률 통계에서 제외되는 거지요.

물론 정부 고충이 쬐금 이해가는 면이 있습니다. 가령 최저생계비 통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해서 비판을 많이 받는데 최저생계비를 현실에 맞추면 못해도 빈곤층 인구가 갑자기 100만명 이상 늘어날 겁니다.

그럼 대번에 똑똑하기로는 귀신 신나락 까먹는 국회의원들께서 "좌파정권 때문에 빈곤층이 몇백만명이 늘었다. 대안은 역시 시장만능주의 뿐이다."라고 게거품을 물 겁니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비명횡사할지도 모르지요. 그런 사태를 피하기 위한 '인본주의적' 정책결정이라고 이해해 줍시다.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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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급증

외환위기 이후 가장 달라진 점 가운데 하나가 급증한 비정규직이다. 통계청이 지난 8월 발표한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를 보면 비정규직은 2003년 460만명으로 전체 임금노동자 중 32.6%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 수치는 올해 570만3000명(35.9%)으로 급증했다. 4년 동안만 110만명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하지만 정부가 발표하는 비정규직 통계는 임시일용직을 배제한다. 임시일용직을 포함할 경우 비정규직은 2006년 8월 845만명(55%)였고 올해 3월에는 876만명(55.7%)나 된다.

●노동시장 양극화

이제는 노동자라도 다 같은 노동자가 아니다. 노동시장 양극화가 갈수록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정규직을 100으로 할 때 비정규직 월평균임금은 2005년 8월 50.9%, 2006년 8월 51.3%, 2007년 3월 50.5%이다. 시간당 임금은 각각 51.9%, 52.4%, 52.4%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 임금격차는 구조화되어 있다. 2003년 이후 임금 불평등은 5.1∼5.4배로 OECD 국가 중 임금 불평등이 가장 심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2005년 4.5배)보다도 심하다.

노동을 해도 빈곤을 벗어날 수 없는 ‘노동빈민’도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3월 법정 최저임금(3480원) 미달자는 192만명(전체 노동자 12.2%)에 이른다. 2001년 8월 59만명(4.4%)에서 2006년 8월 144만명(9.4%) 등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심지어 공공부문조차 최저임금 미달자가 5만3000명(6.7%)이나 된다.

●넘쳐 나는 청년실업 ‘88만원 세대’

통계청 통계상으로는 실업자가 줄어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청년실업자는 넘쳐난다. 취업이 힘들어지자 구직을 아예 포기하는 ‘청년 백수’도 늘고 있다. 이 때문에 2004년 48.7%였던 청년층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07년 44.8%로 낮아졌다.

우석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과 박권일씨는 지난 8월 출간한 ‘88만원 세대’라는 책에서 20대를 ‘88만원 세대’라고 명명했다. 이들은 “지금 20대는 상위 5%만 안정된 직장에 들어갈 수 있고, 나머지는 비정규직의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면서 ”비정규직 평균 임금 119만원에 20대 급여의 평균비율 74%를 곱하면 88만원이 된다.“고 근거를 제시했다.

●금융소득 양극화

재테크 수단이 갈수록 금융 쪽으로 옮아가는 가운데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사이의 금융자산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지난 9월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 수지 동향 자료’를 보면, 올해 2분기 도시 근로자가구 중 소득 수준 상위 20% 계층은 하위 20% 계층보다 5.04배 더 많이 번다. 이자 소득과 배당 소득 등 주로 금융자산 보유로 생기는 재산 소득만을 따로 계산하면 그 격차는 8.12배로 벌어진다.

지난해 통계청 자료는 지난해 5월 말 현재 상위 20%와 하위 20% 간 저축액(가계의 금융자산 중 전·월세 보증금만 빼고 예·적금과 주식·채권 투자액을 모두 합친 액수) 격차가 7.24배에 이른다. 1996년 통계에선 이 수치가 5.34배였고 2000년에는 6.69배였다. 전문가들은 “금융소득에 과세해야만 금융자산 불평등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토지소유 양극화

토지 소유 편중 현상은 토지 자산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우리 국민 가운데 땅을 조금이라도 갖고 있는 사람은 1367만명으로 전체 국민의 28%에 불과하다. 그런데 전국토의 56%에 이르는 민간 보유 토지 가운데 57%가 땅부자 상위 1% 차지다.

지난 17일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이낙연 의원(대통합민주신당)은 “행정자치부의 2005년 토지 소유 현황 자료를 전문 연구기관에 의뢰한 결과 2005년 기준 토지 자산 지니계수가 0.689로 나왔다.”고 밝혔다. 지니계수는 빈부격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로 0과 1사이의 수치로 나타내는데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하고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하다는 것을 뜻한다. 2006년 기준 주택 자산 지니계수와 소득 지니계수는 각각 0.568과 0.351이다.

2007년 10월30일자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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