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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페란토로 진정한 국제연대를”

취재뒷얘기/시민의신문 기사

by betulo 2007. 3. 3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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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페란토로 진정한 국제연대를”
에스페란토로 4개월간 유라시아여행한 파즈씨
2006/3/30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너나 없이 영어를 배워야 한다고 하지만 막상 외국에 나가보니 에스페란토가 더 실용적이던데요.”

4개월동안 유라시아여행을 한 정현수씨(파즈, 대항지구화행동 회원)는 영어 광풍이 불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오히려 이름도 생소한 에스페란토(Esperanto) 예찬론자가 되어 돌아왔다.
 

양계탁기자
에스페란토주의자 파즈씨.

“지난해 12월 세계여행을 떠날 당시만 해도 에스페란토 기초만 겨우 뗀 정도”였다는 그는 각지에 있는 에스페란티스토(에스페란토를 구사하는 사람)들과 친구를 맺고 그들을 통해 각국의 문화와 역사를 배우면서 “에스페란토야말로 진정한 ‘운동가들의 언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강조한다. 물론 에스페란토도 자유자재로 구사할 정도가 됐다. 그는 “에스페란토가 얼마나 배우기 쉬운가를 보여주는 산 증거”라고 자신을 소개할 정도다.

파즈는 지난해 12월 홍콩을 거쳐 중국, 러시아, 핀란드,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폴란드, 체코 등 수십개 나라를 여행했다. 각국에 사는 에스페란티스토들이 그를 친가족처럼 맞아줬고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들려줬다. 그들과 밤새도록 토론도 했다.

에스페란티스토들은 에스페란토를 국제(國際)연대가 아닌 민제(民際)연대의 수단으로 생각한다. 파즈씨가 유라시아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도 사실 에스페란티스토들 사이의 끈끈한 공동체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에스페란토가 없었다면 저는 ‘여행’이 아닌 ‘관광’만 하다 돌아왔을 겁니다. 유명한 곳을 방문해 사진을 찍고 구경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나라 민중들의 삶을 이해할 수는 없었겠죠.”

양계탁기자

19세기 폴란드의 안과의사였던 자멘호프가 ‘발명’한 에스페란토는 언어를 통한 평화를 지향한다. 자국에서는 자국어를 쓰고 다른 나라와 민족과는 에스페란토를 통해 교류하자는 자멘호프의 이상은 전세계 평화운동가와 아니키스트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지금도 전세계 에스페란티스토들은 에스페란토를 유엔공용어로 쓸 것을 청원하는 운동을 펼치고 프랑스녹색당은 에스페란토를 유럽연합 공용어로 하자고 주장한다. “배우기 쉽고 평등하게 배울 수 있는 인공어인 에스페란토”를 통해 ‘언어 제국주의’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이상 때문에 일제시대 홍명희, 박헌영, 김산, 신채호 등이 에스페란토를 공부했다.

에스페란토는 불규칙이나 예외가 전혀 없다. 기본 문법만 배우고 낱말만 열심히 외우면 누구라도 몇 달만에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단순한 문법체계가 매력적이다. sano는 건강, sana는 건강한, sane는 건강하게, sani는 건강하다 … 이처럼 어미변화를 통해 다른 낱말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낱말 하나를 알면 자연스레 수많은 낱말들을 알 수 있다.

“유럽에서 세계에스페란토협회 회장과 저녁을 먹은 적이 있는데 오리를 뜻하는 에스페란토 낱말을 까먹어 나에게 물어보더라구요. 에스페란토에서는 절대강자가 없습니다.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이 에스페란토를 배워서 소통한다면 훌륭한 연대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산재로 고통받았던 기계가 한국으로 와서 원진레이온이 됐습니다. 그 후 그 기계는 중국으로 갔다. 그 경험을 일본의 노동자, 한국의 노동자, 중국의 노동자들이 에스페란토로 서로 소통했다면 고통을 줄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파즈가 자랑하는 에스페란토의 장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에스페란토를 하면서 외국 친구가 생겼어요. 그 전에는 외국 사람과 친구를 맺는다는 걸 상상도 못했지만 지금은 수십명이나 되거든요. 그들과 대화하면서 편견과 선입견도 깰 수 있었구요.”

파즈는 “국제연대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하는 활동인 경우가 대단히 많다”며 “새로운 세상을 일구기 위해 국제연대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라도 에스페란토를 통해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시민운동가들이라도 에스페란토를 공용어로 사용하자는 게 그의 신념이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3월 30일 오후 15시 14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43호 19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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