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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시민의신문 기사

시대를 거스르는 개혁?

by betulo 2007.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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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거스르는 개혁?
[기자수첩]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며 느끼는 단상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14권
2006/2/23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한길사 

묘한 역설이다. 시대를 거스르는 개혁이 가능할까? 역사는 진보한다고 굳게 믿으며 진보를 위해 노력하는 ‘개혁’을 그리는 이들에게 ‘시대를 거스르는 개혁’은 색동저고리에 넥타이를 맨 모습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런 개혁은 존재했다.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 14권에서 펼쳐 보이는 율리아누스 황제는 외로이 시대정신이 된 기독교에 맞서는 ‘개혁가’이다. 그 개혁이란 로마제국의 번영을 일궜던 ‘패자마저도 자기편으로 만드는’ 관용정신을 살리는 것이었다.

‘배교자’라는 통칭이 상징하듯 율리아누스의 정책은 격렬한 반대에 부딪힌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콘스탄티우스 황제 이래 각광받는 지배계급이 된 성직자들에게 율리아누스 황제는 ‘그리스도의 적’이었을 것이다. 성직자들의 특권을 폐지하고 다종교 정책을 유지하는 정책은 그 정점이었다. 결국 석연치 않은 죽음으로 19개월에 걸친 치세는 거센 물결을 잠시 막은 조그만 방파제에 불과했다.

시대를 거스르는 개혁은 실패를 예고한다. 하지만 율리아누스에게 그 ‘시대 흐름’은 퇴행으로 비쳤을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고대에는 유일하게 일신교의 폐해를 깨달은 사람이 아니었을까”라고 말하며 율리아누스에게 후한 점수를 준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인다. “고대에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포교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 종교는 오직 기독교 뿐이었다.”

율리아누스의 정책에 대한 호불호는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다인종, 다종교 시대에서 ‘종교간 관용’이 없으면 공동체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다종교 사회를 ‘단일종교’ 사회로 바꾸는 것이 율리아누스에 반대한 기독교도들의 목표였다면 다종교를 유지하려는 것이 율리아누스의 목표였다.

율리아누스의 비극은 다종교를 유지하기에는 이미 로마사회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는 데 있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광역 경제권은 분절되고 자급자족 경제로 퇴행하면서 경제는 위축되고 잦은 외침으로 인해 사회는 폐쇄적으로 변하고 군사비는 급증한다. 혼란하고 위축된 시대에 로마인들은 기독교가 제시하는 ‘천국’과 국가를 대신하는 사회복지정책들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율리아누스를 보면서 조선후기 임금이었던 ‘정조’를 떠올리는 것은 왜일까. 임금보다도 강력한 힘을 가진 ‘노론’이라는 일당독재에 맞서 개혁정치를 펴려고 했던 정조도 어떤 면에서는 율리아누스처럼 ‘시대를 거스르는 개혁가’였다. 그 또한 율리아누스처럼 사명감에 쫒겨 마음이 급했다. 율리아누스처럼 짧지는 않았지만 시대를 되돌리기엔 정조도 그리 오래 옥좌에 있진 못했다. 물론 어느 학자가 지적한대로 “방향은 옳았지만 때를 놓쳐 버렸다”는 것도 감안해야겠지만 말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율리아누스의 ‘개혁정치’에 대해 방향은 옳게 잡은 것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 ‘개혁’이 왜 시대를 거스르게 됐는지, 다시 말해 그 시대가 왜 ‘퇴행’했는지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을 제시하지 못하고 기독교에 너무 초점을 맞춘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사실 그것은 ‘로마인 이야기’ 전체를 통틀어 아쉬운 점이다. 정치중심으로만 로마를 분석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사회경제적인 이면을 통해 ‘시대의 흐름’을 보여주지 못한 점은 내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시오노 나나미는 ‘그리스도의 승리’라는 14권을 통해 ‘관용’에 대한 매우 예리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중언부언으로 인해 가끔 지겨워지는 일부 부분을 빼고는 유려한 문체와 깔끔한 번역을 ‘유쾌’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은 큰 복을 얻은 셈이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2월 23일 오전 10시 54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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