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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시민의신문 기사

주민증없는 노숙인은 국민 자격없다?

by betulo 2007.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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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증없는 노숙인은 국민 자격없다?
인권위 인권실태조사… “임시신분증”이라도 마련해야
2006/2/22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일산에서 화원의 허드렛일이나 아는 사람들을 따라 간 공사장에서 허드렛일을 해 3만원에서 5만원 정도 일당을 받고 일하곤 했다. 일을 했던 건 2개월 되었다. … 일자리를 얻기 위해선 신분증이 가장 필요하다. 말소된 지 꽤 오래 됐다. … 돈의동 쪽방에 머물 당시 주민등록을 살리려고 여기저기 알아본 적이 있다. 채무관계에 대한 처리 시한이 만료되어 이제 다시 살리고 싶었는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관두었다. (머뭇거리다가) 솔직히 말해서 돈 때문에 살리지 못했다. 사실 나한테 가장 필요한 건 주민증 복원이다. 그런데 돈이 없는 사람이 돈을 만들어서 주민증을 살려야 하니…”

국가인권위는 노숙인 인권상황 실태 조사 결과를 21일 인권위 배움터에서 발표하고 토론회를 열었다. 조사를 맡았던 정원오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양적인 설문조사보다 노숙인 고민을 충분히 들을 수 있도록 심층면접 방법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김유리기자 

국가인권위는 노숙인 인권상황 실태 조사 결과를 21일 인권위 배움터에서 발표하고 토론회를 열었다. 조사를 맡았던 정원오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양적인 설문조사보다 노숙인 고민을 충분히 들을 수 있도록 심층면접 방법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주민등록증은 국가가 모든 국민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는 수단이다. 그리고 주민등록증이 없는 '타자'는 배제한다. 주민등록증이 없는 대다수 노숙인들은 국민이 될 자격도 없는 것일까. 이들은 노동시장에 진입하지도 못하고 정보접근도 제약받으며 의료체계에서도 소외된다. 주민등록증을 복원하기 위해 필요한 돈 10만원도 이들에겐 큰 부담이다. 더 큰 문제는 주민등록을 복원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정한 주거지’가 이들에게 없다는 점이다.

성공회대 사회복지연구소는 지난 21일 2005년도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상황실태조사 연구용역 보고서를 통해 이같은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노숙인들이 주민등록 복원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와 함께 주민등록 복원이 당장 불가능한 경우에는 임시신분증 발급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숙인 대부분은 신용불량, 주소지 불분명 등으로 인해 주민등록이 말소돼 있다. 이로 인해 3D업종이나 일용직 노동시장에서도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태이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도 받지 못한다. 그런데 주민등록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10만원 정도가 필요하며 일정한 주거지가 있어야 한다. 결국 노숙인들이 주민등록을 복원하고자 하고자 하더라도 현실은 쉽지 않은 것이다. 남기철 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주민등록증을 복원하는 비용을 절감해주는 제도가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사문화됐다”며 “신분증 문제가 사회에 복귀하는 데 심각한 장애가 된다”고 지적했다.

주민등록증은 여러 가지 사유로 말소된다. 실태조사 결과 처음부터 주민등록증을 가져보지 못한 노숙인도 있다. 이에 대해 한 노숙인은 이렇게 증언했다. “이 갑갑하다는 게 말소비(주민등록 복원에 필요한 비용)는 공짜로 대 주겠다 카는데도, 도와주겠다고 카지만 주소지를 내보고 만들어 오라고 하는데 내 어디 가서 주소지를 만들어요. 차라리 내보고 돈 10만원 만들어 오라는 게 더 빠르다니까… 10만원 만들면 만들지, 주소지를 지금 내가 어디 가서 만듭니까.”

주민등록증 없이는 직장을 갖는 것이 불가능하다. 심지어 일용직으로 일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한 노숙인은 “막노동도 주민등록증이 없으면 일을 잘 안주기 때문에 취직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며 “주거지도 불분명한 사람을 어느 누가 믿고 쓰겠냐”고 지적했다. 그는 “3D업종조차 가고 싶어도 일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다른 한 노숙인은 “일을 사흘 정도 할 수 있었는데도 신분증이 없으니까 하루 하고 ‘아, 신분증 안 갖고 왔다’고 해버린다”며 “하루만 더 일해 달라고 하면 아침에 온다고 해놓고 안 가버린다”고 털어놨다. 그는 “신분증이 없어서 용역인력시장에 나갔다가 선발이 안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약점을 이용한 노동착취 사례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는 노숙인들을 강제철거현장에 방패막이로 동원하는 경우도 있었다.  

현행 법률에 따르면 노숙인은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대상자로 선정돼야 기초적인 생계비와 주거비, 의료급여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수급대상자 선정기준이 까다롭고 주민등록이 말소됐거나 주거지가 불특정한 대부분 노숙인들은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에서 제외돼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로 선정돼야만 모든 급여의 수급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노숙인들이 신분증을 분실하거나 도난당하는 경우 명의를 도용당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빚이 쌓이고 빚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돼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주민등록증을 분실한 적이 있는 한 노숙인은 신분을 도용한 사람이 휴대전화 6대를 개통하고 그 요금이 연체돼 수천만원에 이르렀다. 그는 경찰에 신고해 빚 문제는 해결했지만 여전히 신용불량 상태로 남아있다.

이번 실태조사는 2005년 10월부터 11월까지 서울 23사례, 대구 7사례 등으로 거리 20사례, 쉼터·쪽방·고시원 등 불안정 주거생활 노숙인 10사례 등 총 30사례를 대상으로 했다. 특히 노숙인 당사자 6명이 기획 단계부터 참여한 것이 눈길을 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2월 22일 오전 10시 31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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