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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생각한다/경찰 개혁론

시집이 간첩장비라고? (2005.6.10)

by 자작나무숲 2007. 3. 24.
시집이 간첩장비라고?
[경찰개혁] 남영동분실 간첩장비자료실에 시집 전시
오씨, “법적 대응하겠다”
2005/6/13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경찰청 보안국 보안3과가 시인 오봉옥씨가 쓴 시집 ‘붉은 산 검은 피’를 ‘간첩장비’로 전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오씨는 법적인 대응을 강구하겠다며 분노하고 있다.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도 공식 대응을 논의하고 나서는 등 파문이 예상된다.

붉은산
실천문학사

‘남영동분실’로 불리는 보안3과 청사는 본관 옆 부속건물 1층에 간첩 관련 ‘내부 교육용’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실은 20평 규모이며 북한이 보낸 간첩들이 사용한다는 난수표, 각종 무기, 독침 등이 전시되어 있다. ‘간첩이 쓰는 물품들을 전시’하는 자료실에 오씨의 시집이 같이 전시돼 있는 것이다.

‘붉은 산 검은 피’는 1989년 5월 출판되었으며 작가는 1990년 2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이 사건으로 당시 전 발행인이었던 소설가 송기원씨도 실형을 받았고 송기원씨의 전임 발행인이었던 소설가 이문구씨는 불구속되는 등 파장이 일었다. 시집은 판매금지를 당했으며 아직까지 해금이 되지 않았다. 오씨는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왜 ‘푸른 산’ 아니고 ‘붉은 산’이냐”

오봉옥 시인
<시민의신문 DB자료> 
오봉옥 시인

이에 대해 장경욱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차장은 “명백한 인격권 침해”라고 말했다.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이면 다 간첩으로 통용되는 게 현실이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이는 허위사실유포”라고 지적했다. 국가보안법 위반이 자동으로 ‘간첩’이 되는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장 사무차장은 이어 “이적표현물과 간첩장비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라며 “국가보안법으로 유죄를 받았다 하더라도 작가의 허락도 받지 않고 예술품을 매도한 행위이기 때문에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당사자인 오봉옥씨는 “간첩들이 그 시집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냐”며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공안기관은 민중이라는 표현은 북한에서 쓰는 인민대중의 줄임말이라고 하고 왜 제목이 ‘푸른 산’이 아니고 ‘붉은 산’이냐고 트집을 잡았다”며 “문단에서도 높이 평가받았던 작품을 문제삼은 코미디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오씨는 “내 작품이 그런 곳에 있을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그는 “시집은 1930년대 후반부터 1946년까지 일제시대와 해방 직후 민중들의 삶을 다룬 두권짜리 서사시”라며 “당시 판사도 표현이 국가보안법상 문제가 된 것이지 시집의 내용이 문제가 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고 말했다.

김형수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총장의 첫 반응은 “황당하다”였다. 그는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중대한 사안”이라며 “민족문학작가회의 차원에서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문학인에게 죽음을 부르는 일을 공안기관들은 실적을 올리기 위해 붉은 딱지를 붙여 국민대중과 격리시켰다”며 “지적인 작업들을 함부로 다룬 결과가 분노와 증오로 가득찬 사회를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고 개탄했다. 그는 “상처를 입힐 때는 적극적으로 해놓고는 아무도 상처를 치유해 주려 하지 않는다”며 “누군가는 반드시 그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1990년 당시 ‘붉은 산 검은 피’를 출판한 뒤 전직 발행인들이 고초를 당하기도 했던 실천문학사의 박문수 편집국장은 “사람도 아닌 책을 간첩자료로 낙인찍는 야만행위”라며 “한마디로 어처구니가 없다”고 개탄했다. 그는 “그 책이 당시 시대상황 때문에 판금이 되고 작가가 실형을 받았다 하더라도 지금은 국가보안법 개폐를 논의하는 때”라며 “다른 곳도 아니고 간첩자료실에 버젓이 전시한다는 것이 출판인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경찰청 보안국, “뭐가 문제냐”

이에 대해 경찰청 보안국 관계자는 “공공연하게 전시하는 것도 아니고 직원 교육용으로 내부에 전시한 것인데 문제될 것이 있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그 시집이 국가안전에 위해를 끼쳐서 유죄판결 받은 건 사실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오봉옥 시인은 창작과비평사의 ‘16인 신작시집’으로 1985년 등단했다. 시집 ‘지리산 갈대꽃’ ‘붉은 산 검은 피’ ‘나같은 것도 사랑을 한다’, 비평집 ‘서정주 다시 읽기’, 동화집 ‘서울에 온 어린왕자’ 등을 펴냈다. 현재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위원회 남측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그림자를 본다’ 외 5편의 시로 지난 4월 문학과비평사가 제정한 제1회 ‘문학과 비평’ 올해의 작가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남영동분실은 대북 업무, 특히 방첩 업무를 담당한다. 대지 3천26평, 건평 1천6백평 규모이며 모두 51명이 근무한다. 경찰청 직제시행규칙에 따르면 보안국 보안3과는 간첩 등 중요 방첩수사와 중요 좌익사범 수사를 분장한다. 1987년 당시 서울대생 박종철씨가 물고문을 받다가 숨진 곳이 바로 남영동분실이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5년 6월 10일 오후 17시 48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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