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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공무원들 이야기

뉴라이트 학자가 독립기념관 임원으로…다시 시작된 '이념 전쟁'

by betulo 2024.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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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잠잠하던 ‘이념전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20일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보훈부 산하 독립기념관은 식민지근대화론을 옹호해온 낙성대경제연구소 소장 박이택을 최근 신임 이사에 임명했다. 임원 선임 과정에서도 적절하지 않다는 논란이 적지 않았던 인사가 독립기념관 이사로 선임되면서 광복회 등 독립운동 관련 단체는 물론 독립운동사 연구자들도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최근 정부·여당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을 미화하는 영화 ‘건국전쟁’ 띄우기에 한창인 것과 맞물려 지난해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에 이은 또다른 이념갈등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박이택은 일제 식민지 시기의 경제발전이 우리 근대화와 산업화 성공의 토대가 됐다고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입각해 한국 근현대 경제사를 연구해 온 학자다. 낙성대경제연구소 공동 설립자인 안병직(서울대 교수)은 박이택의 박사 학위 지도교수였다. 이영훈(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장)을 비롯해 낙성대경제연구소 학자들이 2019년 출간한 ‘반일 종족주의’는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정하고 독도를 한국 영토라고 볼 근거가 적다는 주장으로 큰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다만 박이택은 ‘반일 종족주의’ 필자로 참여하진 않았다. 

독립기념관은 지난해 9월 기존 이사 5명이 임기가 만료되면서 독립유공자 후손과 학계 관계자 등 외부인사 중에서 임원추천위를 거쳐 보훈부 장관이 임명했다고 설명했다. 독립기념관 이사회는 15명 이내로 구성하며 이 가운데 8명은 관장과 보훈부 담당 국장 등 당연직이다.

박이택은 임원추천 당시에도 논란이 적지 않았다. 독립기념관 관계자 등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열렸던 임원추천위에 참여했던 김갑년(독립기념관 이사)는 “당시 여러 위원들이 ‘박 소장은 독립운동 관련 연구실적이 전혀 없어서 이사 후보로 적절하지 않다’며 심사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면서 “보훈부 담당 국장이 ‘사전 배제는 절차상 문제가 있으니 일단 심사를 하자’고 해서 3배수 후보에 들어갔던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임원추천위는 박이택에게 상당히 낮은 순위로 결론내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독립기념관 안팎에선 22일부터 시작되는 새 관장 선임 절차가 더 문제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 독립기념관 관계자는 “박 소장은 관장 선임을 위한 임원추천위에 참석하고, 이른바 ‘뉴라이트’ 인사가 독립기념관장이 되고, 그 다음엔 독립기념관을 이승만기념관처럼 만들려는 것 아닌지 걱정하는 직원들이 많다”고 말했다.

독립기념관 전직 임원들도 이번 이사 임명에 비판 목소리를 냈다. 윤주경(전 독립기념관장, 2014~2017년)은 “식민지근대화론은 역사왜곡이다. 독립운동 연구도 아직 부족한데,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 역사를 함부로 얘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독립기념관 이사를 지냈던 호사카 유지(세종대 교수)도 “식민지근대화론은 일본에서도 극우 정치운동으로 취급받는다”고 말했다. 독립운동사 전공인 반병률(한국외대 명예교수) 역시 “독립운동의 가치를 낮춰 보는 분이 독립기념관에서 활동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박이택은 보훈부를 통해 낸 입장문에서 “독립열사들의 숭고한 희생을 선양하는 독립기념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 이사 공채에 지원했으며, 독립기념관이 이러한 일을 수행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한 역사학자는 “정치적 성향과 별개로 독립운동과 관련한 논문 한 편 쓴 적이 없는 분이다. 독립기념관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광복회는 이날 ‘뉴라이트 출신 독립기념관 이사 선임에 대한 입장’을 내고 “다른 기관도 아니고 독립운동의 국가 표징인 독립기념관 이사에 위안부 강제성을 부인하고 일본의 입장에 서서 식민지근대화론을 설파하는 연구소 소장을 임명한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며 “즉시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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