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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번역이 망쳐놓은 추천도서(5) <마오의 대기근>

자작나무책꽂이

by betulo 2023. 4. 12.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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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디쾨터, 최파일 옮김, 2017, <마오의 대기근>, 열린책들. 


프랑크 디쾨터(Frank Dikotter)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학자다. 1961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났다는 이 역사학자는 스위스대학교에서 역사학과 러시아어를 전공했다. 1990년 런던 대학교 SOAS(동양 아프리카 연구 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중간에 중국에 2년간 체류했다고 한다. 2006년부터 홍콩 대학교 인문학 석좌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인민 3부작>은 가히 중국현대사를 보는 우리의 시각을 뒤흔들고 뒤바꾸기에 충분하다. 특히 중국 각지에 있는 문서보관소와 공산당 기록 보관소를 뒤져서 찾아낸 다양한 1차자료를 바탕으로 국공내전부터 문화대혁명에 이르는 중국현대사의 ‘공식 역사’ 뒤에 감춰졌던 당대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펼쳐낸다. 


<인민 3부작>은 정말 재미있고 꼭 권해주고 싶은 책이지만, 번역 자체는 전반적으로 불친절하고, 일부에선 대충 번역한 티가 너무 많이 나기 때문에 불편하다. 물론 아주 가끔 배꼽 잡게  웃기는 맛도 있다. 가령 3부 <문화대혁명>에선 “북송 시대를 배경으로 부유한 난봉꾼의 성적인 경험을 묘사한 성애 소설 ‘황금 연꽃(The Golden Lotus) 무삭제판(271쪽)”이라고 돼 있는데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와 함께 중국 4대 고전소설로 꼽히는 ‘금병매(金甁梅)’의 영문번역본 제목인 ‘The Golden Lotus’를 한국어로 직역하면서 ‘황금 연꽃’이라는 족보도 없는 소설을 창조하는 코미디를 만들어 버렸다.


그런 와중에도 가장 독자를 곤란하게 만드는 건 역시 2부인 <마오의 대기근>이 아닐까 싶다. 매우 의아한 게 이 책 전반부와 후반부의 번역 품질에 꽤 차이가 난다. <마오의 대기근>은 전체 6부로 돼 있는데 특히 4부부터 번역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한다. 그 전까지 현대 중국어표기법에 맞춰 구이저우로 표기했던 걸 “기근이 할퀴고 간 귀주 성 나융 현(290쪽)”이라고 생뚱맞게 번역할 때부터 징조가 좋지 않았다. “풍요의 도래를 축하기 위해 열린 연회에서(292쪽)”나 “막대기는 농촌에서 선호되는 무기였다. 그것은 값이 싼 데다 쓸모도 많았다(426쪽)” 같은 건 그냥 맛보기일 뿐이다. 다음 문장을 소개해본다. 


“어떤 공동 식당들을 라디오를 설치한 한편 푸퉈의 한 공동식당은 금붕어가 담긴 어항을 설치했다. 다른 한편으로 일부 도시 공사들에서는 식량 공급 사슬이 제대로 감독되지 않아서 이따금씩 직원들이 먹을 게 많았다(293쪽).” 

이 어색하기 짝이 없고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뜯게 하는 문장이 책 전체에 걸쳐 셀 수 없이 등장한다. “후난 성 청둥 인민공사의 당 서기인 쉬잉제는 생리를 이유로 휴식을 요청한 여성들한테 바지를 내리게 하는 피상적인 검사를 강요했다(376쪽)”는데 피상적인 검사란 도대체 어떤 검사일까. “시골 여자들이 도시에서 남편을 얻기 위해 나이나 혼인 관계를 속이면서 이런 성매매의 자연스러운 확장은 중혼이었다(382쪽)”라는 문장은 또 어떤가. “푸링의 곡창으로 알려진 인구 1만 5000명의 인민공사 바오쯔는 수확량이 풍부해서 보통은 생산량의 절반을 조공으로 국가에 바쳤다(450쪽)”는 문장을 접하면 번역자는 조공이 정확히 뭔지 이해는 하고 이렇게 옮긴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중국 지명을 제대로 옮기지 않아서 이 책에서 언급하는 일이 정확히 어디에서 벌어진 건지 알기 어렵다는 것도 책을 읽는 내내 괴로운 노릇이다. 가량 “1959년 관쯔 자치구의 세르타르(써다) 현에서 티베트인들을 한 곳에 집합시킨 뒤 모두 공사로 몰아넣었다(453쪽)”는 문장에 있는 관쯔는 사실 현행 외래어표기법상 간쯔(甘孜)이고, 자치구가 아니라 자치주, 그러니까 티베트 자치주(정식 명칭은 ‘甘孜藏族自治州’)이다.


중국에서 자치구와 자치주가 어떻게 다른지 번역자가 신경을 안썼다는 건 중국현대사를 다루는 책에서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구이저우 성에 있는 “쓰촨과의 변경 지대에 위치한 쓸쓸한 벽지(453쪽)”라는 “치수이”란 지명 역시 구글지도로 한참을 찾아보고서야 <시수이 현(习水县)>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이 책에선 <쉬수이 현>이란 이름으로 10번 이상 등장한다. 한어병음으론 Xíshuǐ라고 돼 있는데 애초에 왜 "쉬수이"라고 번역했는지도 의문이다.  
  

그나저나 “광둥 성의 갈매기 농장은 약 27톤의 시트로넬라 기름을 국가에 인도하는 대신 상하이의 어느 향수 공장에 팔았다(297~298쪽)”는데 갈매기 농장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얘기 꺼낸 김에 한마디만 더 하자. 책 표지가 너무 괴상하다. 귀신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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