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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패권 대결 시대,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자작나무책꽂이

by betulo 2023. 4. 22.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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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책에서 길어올린 이야기[세책길 5]

마이클 베글리,할 브랜즈. 2023. <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 미중 패권 대결 최악의 시간이 온다>. 부키.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게 외교의 본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한중수교 직후인 1990년대 들어 중국과 접촉을 많이 하게 되면서 중국은 위협이 아니라 그냥 후진국, 그렇지만 고도성장하고 언젠가는 옛 영광을 되찾을 수도 있는 잠재력과 기회의 땅이었다. 1990년대 한중관계가 좋았을 당시 국가주석 장쩌민이 대통령 김대중을 사석에서 “형님”이라고 불렀다는 얘기도 들은 적도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턴 미국의 전횡에 맞서는 대안세력 같은 인식도 생겨났다.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이 한중 양국의 끈끈한 우애를 강조하며 "대일전쟁이 가장 치열했을 때 양국 국민은 생사를 다 바쳐 있는 힘을 다 바쳐 서로 도와줬습니다"라고 강조한 게 9년 전이었다. 일본에서 한국문화상품이 인기를 끌던 것 못지않은 풍경이 중국에서 펼쳐졌다. 

그랬던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최근 몇 년간 중국에 대한 인식이 급격히 나빠진 건 격세지감이라고 할 만 하다. 현재 한국사회에선 ‘중국이라는 위협’ 에 대한 얘기가 광범위하다. 3년 전 <시사IN>에 실린 중국에 관한 선호도를 ‘감정온도’라는 개념으로 조사한 게 있다. 0도는 매우 차갑고 부정적인 감정, 100도는 매우 뜨겁고 긍정적인 감정이었는데, 미국이 57.3도, 일본 28.8도인데 중국은 26.4도에 불과했다. 특히 20대는 50~60대에 비해 두 배 가량 반감이 심했다. 중국어 공부 인기가 식었다거나, 언론사 중국특파원 후임자 찾기가 어렵다는 얘기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한국인들은 중국을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사드배치를 둘러싼 갈등을 겪으면서 중국은 듬직한 이웃이라는 성격은 완전히 사라지고 덩치 큰 옆집 깡패같은 이미지로 굳어지고 있다. 아무리 중국에 비판적인 사람이라도 중국 역사와 문화에는 한 수 접고 들어갔는데 요즘은 그런 것조처 바닥났다. 

최근 <차이나 쇼크, 한국의 선택>에 뒤이어 읽은 <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는 중국 위협론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 책이다. 물론 미국 시각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거북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안고 있는 위협요인에 대해 상세히 분석한 건 참고할 만 하다. 여기서 중요하게 거론되는 것은 농촌 문제, 농민공 문제, 인구감소와 고령화, 지정학적 긴장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중국판 카스트 제도나 다름없는 6억명이나 되는 농민공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결코 중진국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한반도 평화문제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건 역시나 대만 문제다. 이 책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을 매우 높게 본다. 설령 중국 침공 가능성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충분한 분석과 대비는 시급해 보인다. 특히 대만 문제가 시진핑 정권의 정치적 정당성 문제와 직접 연결되는 상황에선 더욱더 그렇다. 

이 책은 미국 중심주의를 숨길 생각이 없고, 그런만큼 구체적인 사이버전과 첩보전까지 언급하며 중국을 어떻게 공격할지 다룬다. 미국 사람이 미국 국익을 위하는 거야 어쩔 수 없다 쳐도 아전인수로 흐르는 건 무척 거슬린다. 다음 대목을 보자. "미국이 의도적으로 독재자들을 약화시킬 생각이 없을 때조차 미국은 독재자들에게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존재 자체가 반체제 인사들에게 희망의 등대로 작용하기 때문이다(50쪽)." 박정희나 전두환같은 독재들에게 미국이 위협이었을까? 친미정권을 이끄는 독재자들 가운데 미국을 위협으로 느끼는 독재자들이 하나라도 있을지 의문이다. 

중국이 성장하는 제국인지 쇠퇴하기 시작한 제국인지 지금 당장 판단하긴 쉽지 않다. 사실 중국이라는 충격보다 더 걱정되는 건 결국 우리의 국익이고 우리의 선택이 아닐까 싶다. 냉정하게 국익을 판단하고 전략을 세우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당장 한국 정부를 보면 별로 그런 것 같지도 않다. 한국에서 보수를 자처하는 분들은 조선시대 외교정책을 폄하하는 경향이 있는데, 정작 조선시대 외교안보정책 최대 참사라고 할 수 있는 병자호란 당시 조선의 경직된 대외정책에 대해선 그리 비판하면서도 미중갈등으로 눈을 돌리기만 하면 ‘양잿물도 미국이 좋다’는 태도로 나오니 당황스럽기만 하다. 

미국만 쳐다보는 국가전략이 얼마나 허망한지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건 사실 번역자가 아닐까 싶다. 번역자는 서문에서 "한반도 문제와 한국의 역할이 미국의 전략적 구상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은 것은 그동안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정쩡한 태도를 취해 온 결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곧이어 나오는 처방전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게도 "이제는 한국도 어떤 방식이든 전략적 입장을 분명해 표명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본다"는 것이다. 하지만 책을 찬찬히 읽어보면 저자들이 왜 한국의 역할이 거의 언급되지 않았는지 매우 분명하게 밝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미국의 세계전략에서 "남한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241쪽)"는 게 이유였다.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트루먼이 한국전쟁에 뛰어들기로 한 것은 남한 자체가 핵심일 정도로 중요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서 공산주의의 노골적 공격을 저지하는 데 실패하면 보다 중요한 지역에서 미국이 쌓으려고 애쓰던 신뢰가 산산조각 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241쪽)." "보다 중요한 지역"은 어디일까? 유럽에선 독일이었고, 아시아에서는 일본이었다. 

1940년대 미국은 미소경쟁이라는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냉정한 우선순위를 설정했는데, 그 결과 일본을 반공보루로 만들기 위해 "미국 국민총생산의 5퍼센트에 해당하는" "사상 유례없는 원조"(239쪽)를 퍼부은 반면 "불안정하고 가난한 국가였던 남한에서 미군 병력을 철수시켰다. 애치슨은 이 나라가 태평양에서 미국의 방위선 밖에 있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했다(240쪽)". 한국전쟁의 성격도 명확하게 언급돼 있다. "전략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외딴곳에서 벌어지는 잔혹하고 피 말리는 전쟁(242쪽)"이라고. 

우리가 장기적인 전략에 입각한 일관된 정책을 펴지 못한다면, 중국이 성공하건 실패하건 우리는 상당한 충격파에 노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멀리 볼 것도 없다. 문재인 정부 내내 한국 주류 담론은 줄곧 '중국은 패권국이 될 수 없다, 중국은 믿을 수 없다, 우리는 미국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노래를 부르며 문재인 정부 외교정책을 물어뜯기 바빴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에 박근혜가 중국 전승절 기념식에 참석한 건 실리외교라며 빨아대기 바빴다는 건 언제 그랬냐는 듯 외면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건 “세상에 영원한 동맹이란 없다"고 강조했던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말씀을 항상 가슴에 새기는 것, 그리고 천동설에서 벗어나 지동설로 인식을 전환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인권연대 기고문으로 쓴 글을 대폭 수정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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