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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병제를 다시 생각한다

자작나무책꽂이

by betulo 2023. 6. 17.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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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책에서 길어올린 이야기[세책길 6]

이민환, 중세사료강독회 옮김, 2014, <책중일록: 1619년 심하 전쟁과 포로수용소 일기>, 서해문집. 

이민환이라는 사람이 있다. 1600년 문과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친 그는 1619년 도원수 강홍립을 보좌해 후금(後金)을 공격하는 조명연합군에 참전했다. 조선군은 1619년 3월 당시 후금 수도였던 허투알라에서 60리 가량 떨어진 부차(富車)에서 후금 기병의 공격을 받아 전멸하고 말았다. 1만 3000명 중에서 7000명이 죽고 4000명이 포로가 됐다. 

이민환 역시 포로가 됐고 17개월 동안 혹독한 수용소 생활을 견뎌야 했다. 추위와 굶주림, 학대 끝에 고국에 돌아온 사람에 3000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천신만고 끝에 1620년 7월 고국에 돌아온 이민환은 포로수용소 당시 경험을 담아 <책중일록(柵中日錄)>을 저술했다. 

깔끔한 한글 번역본으로 나와 있는 이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청나라 경험을 통해 청나라 군대의 특성과 장단점을 분석한 대목이다. 이민환은 1620년 7월에 돌아와 조정에 바친 <건주문견록>이라는 정보보고서에서 후금 방어대책으로 산성을 수축하고, 군마(軍馬)를 육성해 무장 기병대를 편성하고, 정예군대를 육성하고, 국경지역 군사들을 우대하며, 무기를 정예화하고 무예를 장려하는 여섯가지를 제시한다. 

조선군이 항복하는 모습.

그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직업군인으로 구성된 정예부대 위주로 군대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바꿔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한 요즘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제안이 아닐 수 없다. 이민환은 “우리나라의 군사 제도는 본래 직업 군사가 아니라, 농민을 모집하여 전장에게 나아가게 하는 것”인데다 “근래는 군역의 고통 때문에 열 집에 아홉 집이 파산하는 지경이다. 이 때문에 백방으로 빠지기를 도모한다”며 군대 자체가 허약해졌음을 지적한다. 지휘관 충원도 문제다. “대개 지금까지 무과에 급제한 사람은 수만명도 더 되지만, 벼슬길로 나아갈 희망은 거의 없고 변방에서 방어해야 하는 고역(苦役)만 있으니, 비록 재능 있는 용사라도 머리를 절레절래 흔들고 나오지 않는다(136~137쪽).”

이민환이 제시하는 대안은 이렇다. “전국에 명을 내려 사족이나 공노비, 사노비, 잡류를 따지지 말고 건장하고 무예에 재능있는 자들을 정밀하게 선발하고, 부역이나 조세를 일체 부담하지 않게 함으로써 그 처자식의 생계를 안정시켜야 한다. 변방에 투입한 후에는 의복과 양식을 넉넉히 주어서 따뜻하고 배부르게 하며, 절대로 졸병이 하는 일을 시키지 말고, 날마다 말을 타고 전투하는 훈련을 할 일이다(137쪽).”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일종의 국민개병제를 실시하는 걸 기본 국방정책으로 하는 나라였다. 하지만 이민환은 “부유하고 건실한 장정은 갖은 수단으로 군역을 면탈하고, 힘없는 사람들로 구차히 수만 채우니 실로 쓸모가 없다(136쪽)”면서, 이런 군대로는 ‘전쟁기계’나 다름없는 청나라 군대를 당해낼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물론 수백년 이어온 제도를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쉽지 않은 노릇이다. 이민환은 훗날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고향인 경상북도 의성에서 의병을 모집해 참전했는데, 삼전도 굴욕을 겪고 온 나라가 피바다가 되는 비극을 보면서 얼마나 참담한 심정이었을까 싶다.

징병제가 단점만 있는 건 결코 아니다. 근대적 징병제를 최초로 도입한 프랑스는 신분제에 기초한 다른 유럽 군대를 모조리 박살내며 국민군대의 장점을 제대로 보여줬다. 대한민국 역시 징병제가 없었다면 국가로서 존립을 장담하기 쉽지 않은 시기를 겪었다. 성인 남성 거의 대부분이 총을 어떻게 쏘고 어떻게 다루는지 안다는 것도 생각해보면 국방 측면에서 적잖은 장점이다. 적어도 한국에선 조준을 한답시고 개머리판에 눈을 갖다 대는 것 같은 코미디는 여간해선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는 것 역시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흔히 인구감소를 강조하지만 인구감소가 아니더라도 모병제 개혁은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국가적 과제가 돼 버렸다. 무엇보다 전쟁 패러다임 자체가 달라졌다. 아니, 이미 상당히 바뀌었다. 당장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서 드론(무인기)이 어떤 활약을 하는지만 봐도 옛날처럼 ‘한 손엔 소총 다른 손엔 곡괭이’ 들던 짬밥으로 굴러가던 군대가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자동화와 유무인복합체계 발전으로 사람 손은 덜 가는 대신 전문성은 더 필요한 군대가 되고 있다. 내가 군대에서 맡았던 핵심 임무 가운데 하나가 휴전선 경계근무였는데 그마저도 지금은 관측장비를 활용하기 때문에 인력 수요 자체가 극적으로 줄었다고 한다. 이제 우리에겐 머릿수가 아니라 전문성으로 승부하는 군대가 절실해졌다.

‘병장 급여 200만원 시대’가 된다는데 이 정도면 사실 9급 공무원 수준이다. 충분한 급여와 출퇴근 등 노동 조건을 보장하는 모병제로 전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직업군인에 더해 예비군을 제대로 운영해 정예화하는 방식을 조합한다면 ‘한반도가 처한 특수성’에 대한 답변도 될 듯싶다. 현역 장교들이 모병제 개혁을 지지하는 것도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대목이 아닐까 싶다.

일부에서는 모병제가 도입되면 ‘흙수저 집합소’가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하지만 생각을 좀 달리해 충분한 대우만 해 준다면 군대가 흙수저들에게 ‘기회의 창’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개혁은 발상의 전환에서 출발한다.

(모병제 개혁과 관련한 구체적인 사항은 진호영 예비역 공군 준장과 인터뷰하면서 얻었음을 밝힌다.) 

2023년 6월16일자 서울신문에 실린 칼럼을 대폭 수정보완했다.

허투알라는 현재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푸순시(撫順市) 신빈(新賓)만주족자치현 소자하 강가에 있다고 한다, 하투알라는 만주어로 ‘옆으로 펼쳐진 언덕’이라는 뜻이다. (허투알라 위치는 여기를 참조.) 심하전투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여기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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