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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생각

허깨비와 숨바꼭질하기, 연금충당부채 유감

by 자작나무숲 2021. 4. 12.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정부는 국가회계 결산자료를 발표한다. 그러면 어김없이 나랏빚이 역대 최대 규모라거나 국내총생산(GDP) 두 배를 초과했다느니 하며 재정건전성 논란이 폭발한다. 그 중심에는 연금충당부채가 있다.


 연금충당부채란 현재 공무원·군인연금 수급자와 재직자에게 앞으로 지급해야 할 미래 연금액을 약 70년 이상 추정치를 적용해 현재 가치로 환산한 금액을 말한다. 정부 발표로는 지난해 기준 연금충당부채는 1044조원이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백척간두, 풍전등화, 국가파산 같은 무시무시한 생각이 머리를 스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기획재정부가 4월6일 발표한 자료에서 발췌


 최근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공기업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총부채는 132조원이다. 일개 공기업이 100조원 넘는 빚을 지고 있으니 언제 망할지 몰라 걱정된다는 사람이 있을까. 마찬가지로 어느 누구도 국민은행 부채 규모가 570조원이나 된다고 불안에 떨지 않는다. 왜 그럴까. 집안 살림이나 기업, 국가를 막론하고 부채 규모만 봐서는 재정이 얼마나 건강한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먼저 부채와 함께 자산도 봐야 한다. LH는 자산이 184조원이다. 국내총생산의 30%나 되는 국민은행 부채 가운데 340조원은 예수부채, 그러니까 우리가 국민은행에 맡긴 돈이다. 대출채권 규모도 380조원이나 된다. 국가 결산자료를 다시 살펴보자. 자산이 2490조원이다. 게다가 연금충당부채는 연금 수입을 포함하지 않고 예상 지출액만 계산한 액수다.

국민은행 비유의 발화점이 된 이상민(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 최근 쓴 페이스북 글.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연금충당부채 자체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일단 할인율(미래 연금 지급액을 현재가치로 환산한 비율) 자체가 불합리하다. 한국은 10년치 국채이자율 평균(2.7%)을 적용한다. 그런데 국가파산 가능성은 민간기업보다 훨씬 낮은데도 민간기업이 발행하는 채권 할인율보다도 낮은 국채이자율을 적용해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실제 영국은 민간기업에서 발행하는 우량회사채 할인율(3.5%)을 사용한다. 영국식으로 계산하면 한국의 연금충당부채는 대번에 713조원으로 줄어든다.

기획재정부가 4월6일 발표한 자료에서 발췌


 연금충당부채에는 국가직뿐 아니라 지방직 공무원의 연금 지급 추정액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서도 지적했듯이 국가와 지방회계가 구분돼 있는 것과 상호 모순된다. 실제 미국은 국가 충당부채에서 지방공무원은 제외한다. 미국식으로 계산해 보면 연금충당부채는 289조원으로 줄어든다. 게다가 영국처럼 우량회사채 할인율까지 적용하면 250조원까지 떨어진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2020. <OECD 국가별 연금충당부채 주요국(해외) 사례조사. 30쪽에서 발췌. 


 좀더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해 보자. 연금충당부채를 발표하는 게 타당한 것일까. 기획재정부도 누누이 강조하듯이 연금충당부채는 ‘나랏빚’이 아니다. 국가 간 부채 규모를 비교할 때도 제외한다. 게다가 연금충당부채란 민간기업 파산에 대비해 충당부채에 상응하는 적립자산을 보유하도록 하려는 게 목적인데, 공적연금은 파산하지도 않고 연금을 적립하지 않는 부과 방식이기 때문에 연금충당부채를 산정해야 할 필요성 자체가 크다고 할 수 없다.


 혹자는 아껴야 잘산다거나 재정건전성이 중요하다고 반박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국가재정은 집안 살림과 전혀 다르다. 정부가 코로나19 위기라고 허리띠 졸라맨다면 한마디로 미친 짓이다. 그런데도 연금충당부채를 들어 정부를 비판하는 이들은 국가가 국가로서 해야 할 역할을 문제 삼는다. 사실 연금충당부채는 그래서 더 위험한 허깨비다.


 우리 스스로 허깨비를 만든 뒤 그 허깨비에 쫓겨 밤마다 잠을 설치는 건 이제 그만하는 게 좋지 않을까. 연금충당부채 때문에 나라가 망할 일도 없는데 말이다.

이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두가지 해보고 싶다. 

1. 민주당 계열 정부는 항상 재정건전성 공격 앞에 흔들리는 갈대다. 복지강화를 외치면서도 재정건전성 비판받을까 좌고우면하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국힘계열은 야당일때와 여당일때 차이가 확실하다. 야당일땐 재정건전성이야말로 국가의 존망을 다투는 주제라 하고 여당되면 재정건전성을 그냥 속편하게 잊어버린다. 그래서 재정건전성 지표만 보면 국힘계열일때 더 나쁜데 논란은 민주당 계열에서 폭발한다. 그래서 첫번째 질문. 문재인정부는 재정건전성 논란에 발목이 잡힌걸까, 아니면 발목을 맡긴걸까. 


2. 해마다 연금충당부채 논란이 거세지면 기획재정부는 해명자료를 내고 ‘연금충당부채는 국가채무가 아닙니다’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참 공허하다. 국가결산자료에 버젓이 ‘부채’ 항목으로 연금충당부채를 포함시켜놓고는 ‘채무’는 아니라고 하니 국민들은 혼란스러울수밖에 없다. 거기다 국가채무(D1) 일반정부부채(D2) 등 전문적인 용어 얘기해봐야 뭐가뭔지 뒤죽박죽되기 십상이다. 한국인의 언어습관에서 부채와 채무란 기본적으로 ‘빚’의 일종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에 사실 당연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기재부는 어려운 용어 잔뜩 써 가면서 ‘너네가 잘 몰라서 그런건데…’하고 있다. 기재부에 묻고 싶다. 기재부 여러분,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죠? 

조영철 전 국회예산정책처 국장이 2018년에 쓴 페이스북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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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9일자 칼럼을 바탕으로 수정보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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