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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2. 1. 14:16

한국 개신교의 반공주의, 친미주의, 근본주의


주말마다 광화문광장 주변은 목이 터져라 외치는 기도와 "아~아~ 우리 대한민국 아~아~ 우리 조국"을 외치는 노랫소리가 뒤엉켜 있다. 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들 다수는 60대 이상 노령층, 그리고 개신교 신자들로 보인다. 개신교와 별 인연이 없는 사람들로선 태극기와 성조기, 심지어 이스라엘 국기까지 들고 다니는 모습이 무척이나 낯설 수밖에 없다. 11월30일 열린 한국언론정보학회 학술대회에서 배덕만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전임연구위원이 발표한 <한국 개신교의 반공주의, 친미주의 그리고 근본주의>는 한국 개신교를 이해하는데 여러모로 도움이 됐다. 간략하게 발표문을 소개해본다. 


미국 종교사를 전공한 배덕만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전임연구위원 겸 백향나무교회 목사는 "한국 교회는 탄생과 성장을 미국과 함께 했으며 지금까지 그런 우호적 관계는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면서 한국 교회는 미국과 말 그대로 혈맹이었다고 말했다. 가령 미국에서 발간되는 교회 관련 단행본이 해외 수출되는 것의 60%를 한국이 차지한다. 미국 교회에서 유행하는 이머징운동이나 신사도개혁운동 같은 각종 캠페인이 곧바로 한국으로 흘러간다. "한국 교회는 미국 교회의 지속적인 영향 하에 놓여있다." 이는 한국 개신교가 시작부터 미국과 깊은 관계를 맺어 왔다는 것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개신교에 항구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1884년 북장로교 의료선교사로 입국한 호레스 알렌, 이듬해 입국한 장로교의 호레스 언더우드, 감리교의 헨리 아펜젤러 선교사들이었다. 배 위원은 "이후 미국이 남장로교회와 남감리교회도 한국에 선교사들을 파송했고, 구세군, 안식교, 성결교 소속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에 속속 입국하여 교회를 세웠다"고 설명했다. 태평양전쟁으로 잠심 중단됐던 한국교회와 미국교회의 관계는 해방 이후 미군정을 계기로 중요한 분기점을 맞게 된다. 미군정 아래서 한국 교회는 방송선교, 형목제도, 주일총선거일 변경, 주일의 공휴일 지정 등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배 위원에 따르면 과거 한국에서 활동했던 전직 선교사나 선교사 2세들이 미군정에서 참모, 고문, 통역, 군목 등으로 깊이 참여했고 한국 개신교가 군정 요직에 발탁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가령 하지 장군의 보좌관 및 통역관으로 입국한 조지 윌리엄스는 충남 공주 지역에서 활동했던 프랭크 윌리엄스의 아들이었다. 그는 미군정의 인사문제에 깊이 개입했다. 배 연구원는 "1945년 9월 미군정의 자문기구로 구성된 조선교육위원회 위원 12명 중 7명이 개신교였고 미군정에 참여했던 한국인 국장 9명 중 확인된 개신교인만 6명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한국의 개신교 인구가 3%였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은 한국 교회와 미국 교회의 유대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됐다. 게다가 1970년대 유신 시절 한국 교회는 빌 브라이트와 빌리 그레이엄 등 미국 목회자들을 초대한 초대형 집회를 연달아 열였다. 한국 교회는 양적으로 급성장하고 한미 교회간 유대관계는 더욱 긴밀해졌다. 배 위원은 "1980년대에는 미국에서 들어온 CCC, 네비게이토 등 학원선교단체들이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활발한 전도활동을 벌였고 그 영향은 그대로 한국 교회 전체로 확산됐다"고 밝혔다. 


배 위원이 말하는 한국 개신교가 갖는 두번째 특징은 반공주의다. 해방 직후 한국 개신교인의 70%가 북한 지역에 거주했고 특히 평양은 '동양의 예루살렘'으로 불렸다. 북한 개신교인들 중 친일경력자와 지주계급이 다수 존재했고, 이것이 친일청산과 토지개혁을 추진했던 김일성 정권과 갈등을 초래할 결정적 요인으로 작동했다. 결국 개신교인 대부분은 월남했고 강력한 반공세력으로 등장했다. 그들의 눈에는 공산주의자들은 설복할 수도 없고 회개할 수도 없는 마귀이자 적그리스도였다. 자연스레 한국전쟁은 십자군전쟁이자 성전이었다. 


1988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을 발표하며 북한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자 북한 출신 원로목회자들을 중심으로 급조한 단체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이다. 2004년을 기점으로 기독교 보수진영에서 소위 '뉴라이트'가 출현하기 시작했다. 최초로 조직된 기독교사회책임은 "대선을 통해 체제 밖 좌파세력과 그와 연결된 세력의 척결, 선진화 운동, 북한인권운동" 등을 핵심과제로 제시했다. 배 연구원는 "최근에는 반동성애운동과 종북좌파를 연계한 '종북게이'란 개념을 중심으로, 한국개신교가 반공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번째 특징으로 배 연구원가 지적한 것은 근본주의다. 미국에서 20세기 초반에 등장한 근본주의는 선교 초기부터 한국에서 힘을 발휘했다. 특히 1930년대 신학논쟁에서 진보주의자들이 패배하면서 한국 교회에 주도적 지위를 확보하면서 근본주의는 한국 교회의 주된 흐름으로 정착했다. 배 연구원는 "근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성경무오류설을 신봉하고, 성경에 대한 문자적 해석을 추구한다"면서 "동시에 묵시적 종말론의 영향 아래 영육이원론, 성속이원론을 수용하고 내세적 구원론을 추구하면서 사회개혁운동에 부정적 입장을 견지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미국 근본주의자들이 네오콘과 함께 공화당의 강력한 지지세력으로 부상해 미국 정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양상은 2000년대 한국 보수적 개신교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롤모델이 됐다. 특히 성장세 둔화와 내부 모순과 부조리로 인한 사회적 평판 추락, 사학법 개정 추진 등이 큰 부담을 주는 위기상황에서 '뉴라이트'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기독교 정당을 구성해 총선에 참여하며 서울시청광장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벌이는 것으로 이어졌다. 배 위원은 "최근 한국사회에서 전광훈, 한기총, 반동성애운동, 태극기부대로 상징되는 극우적 개신교 진영은 한국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근본주의, 친미주의, 반공주의의 화학작용으로 탄생한 독특한 기독교 현상"이라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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