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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

펜으로 휘갈겨 썼던 ‘KOR’…수영연맹 회장·부회장은 왜 수사 대상이 됐나

by betulo 2019.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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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수영연맹이 11월 21일 문화체육관광부 특정감사에서 수사의뢰와 임원 중징계 등 강도높은 조치를 요구받았다. 대한수영연맹 김지용(46) 회장과 박지영(49) 부회장은 왜 경찰 수사 대상이 됐을까. 


지난 7월 국내 최초로 열렸던 국제수영연맹(FINA) 광주세계선수권대회가 우리 기억에 남긴 건 화려한 다이빙이나 우아한 수중발레가 전부가 아니다. 국가명을 매직펜으로 쓴 수영모와 은색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여 스폰서 로고를 숨긴 대표 선수들의 유니폼도 있다. 특히 오픈워터 남자 5㎞ 경기에 출전했던 백승호(29·오산시청), 조재후(20·한국체대) 두 선수에게는 7월 13일 벌어진 일은 국가대표의 자부심까지 뭉개버린 악몽이었다.  


그날 경기에 출전하려고 경기장에 들어서는 조재후를 경기감독관이 가로막았다. “규정위반이다. 이 수용모로는 출전할 수 없다.” 당황한 조재후는 검사 순서를 기다리며 스트레칭을 하고 있던 백승호에게 다급하게 외쳤다. “형 이거 안된대요.” 영문 국가코드를 수영모 양쪽에 8㎝ 이상 크기로 명시해야 하는데 대한수영연맹이 이들에게 지급한 수영모에는 대회 스폰서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백승호는 21일 전화통화에서 “당시 경기 시작 1시간을 남겨 두고 수영모 때문에 출전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권순한 감독이 부랴부랴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다. 경기 시작 30분 전에 퀵서비스 기사가 이들에게 아무런 표시가 없는 수영모를 전해줬다. 자원봉사자가 갖고 있던 매직펜으로 큼지막하게 ‘KOR’이라고 쓰고서야 출전이 가능했다.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수영모가 머리에 맞질 않았다. 조재후는 수영모가 계속 머리에서 벗겨지는 수영모를 붙잡고 경기를 해야 했다. 백승호는 “수영모가 조금 조금씩 밀려서 올라갔다”고 말했다. 펜으로 휘갈겨 쓴, 자꾸 벗겨지려는 수영모는 전세계에 생중계됐다. 


이 황당한 사태는 어쩌다 벌어진 것일까. 발단은 지난 4월 4일 수영연맹 이사회로 거슬로 올라간다. 수영연맹은 지난 2월 기존 스폰서였던 아레나를 경쟁사인 스피도,배럴 두 업체로 교체하기로 의결했지만 김 회장이 돌연 ‘기타 안건’을 이사회에 상정해 뒤집었다. 수영연맹은 5월 22일 용품후원사 입찰공고를 냈다. 아무도 응하지 않았다. 5월 29일 재공고를 냈다. 우여곡절 끝에 수영연맹은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열흘도 남지 않은 7월 1일이 되어서야 1992년부터 연맹의 공식후원사를 했던 아레나를 다시 후원용품사로 선정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김 회장과 함께 스폰서 계약 취소를 주도했던 박 부회장은 이 시점 이후 연맹의 행정을 총괄하는 책임자가 됐다. 하지만 행정 경험이 없다보니 곳곳에서 사단이 나기 시작했다. 수영연맹은 아레나가 제작한 수영모와 유니폼 로고가 FINA 규정을 위반했다는 걸 6월 27일 발견했다. 하지만 아레나는 “시간이 부족해 신규 제품을 제작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수영연맹은 7월 3일 수영모를 납품받았지만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레나에서 직접 선수촌으로 각각 납품했다. 수영연맹 사무처에선 검수도 하지 않았다. 사무처에선 “그 문제를 박 부회장에게 7월 3일 대면보고하고 모바일 메신저로 보고도 했다”고 하지만 정작 박 부회장은 “9일이 되어서야 현장 파견 직원한테 처음 보고받았다”고 진술했다. 


문체부는 용품 후원업체 선정 및 교체 과정에서 현금 수입금 9억원의 손실을 초래한 김 회장과 박 부회장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아울러 수영연맹에 대해 징계 14건, 기관경고 4건, 기관주의 1건, 시정 1건, 권고 3건 등 무더기 처분도 요구했다.익명을 요구한 전 수영 국가대표팀 감독은 “참담하고 부끄럽다”면서 “수영선수권대회에 출전할 국가대표팀 구성도 6월에 마무리됐으니 나머지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고 꼬집었다. 


<2019년 11월 22일 기사를 바탕으로 수정보완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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