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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경제雜說

외환위기 20년, "감기걸린 사람을 악성폐렴환자 취급했다"

by betulo 2017.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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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 인터뷰>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가 제조업보다는 금융과 서비스업을 중시한 것이 오히려 성장과 분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나왔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가 금융과 서비스업을 중시해 왔지만 근본적인 체질 강화를 위해서는 허약해진 제조업을 다시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기업이 제조업 투자를 늘리고 중소기업과 동반 성장할 수 있는 산업금융 시스템 복구가 시급하다”고 주문했다. 4차 산업혁명 논의가 ‘제조업 패싱(건너뛰기)’으로 흘러가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상식’을 비판하며 “감기환자를 수술대에 올리는 바람에 위기를 확대재생산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와 함께 외환위기 과정을 분석한 ‘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을 내는 등 한국 경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해 왔다. (이 분에 대한 소개로 적당한 글은 여기를 참조하기 바란다. 예전에 했던  미-중 환율갈등에 대한 인터뷰, 그리스 재정위기에 관한 인터뷰, 세계금융위기에 대한 인터뷰 등도 있다.)



문: 20년전 11월21일 한국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정경 유착과 관치금융, 재벌체제의 구조적 모순, 과잉투자 등이 1997년 외환위기를 초래했다는 진단에 동의하나.

 

-진단이 정확해야 제대로 된 처방이 나온다. 한국의 금융시스템이 문제였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건 너무 무책임하다. 위기 전까지 한국 경제는 결코 암흑기가 아니었다. 성장과 투자, 일자리, 소득 증가로 순항하고 있었다. 외환위기는 총체적 기업 부실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외환이 모자란 데서 왔다. 외국 금융사들이 국내 종합금융사에 투자했던 단기자금을 한꺼번에 회수했던 게 도화선이었다. 그런 점에서 당시 임창열(경제부총리) 경제팀은 IMF 구제금융 신청이 아니라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선언한 뒤 채권자들과 협상에 나섰어야 했다. IMF 처방이 과도했다는 데는 이제 거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은가. 건강한 사람도 감기는 걸릴 수 있는데 그걸 악성폐렴환자 취급하며 수술까지 해버린 형국이다.


문: 기업의 과잉투자가 문제였던 것은 사실 아닌가.

 

-기업 부채비율이 높다는 것은 주식시장이 아니라 은행에서 자금을 빌려 대규모 투자를 한다는 차이일 뿐, 그 자체로 문제는 아니다. 기업이란 기본적으로 위험 부담을 짊어지는 주체다. 전반적인 위기관리에 실패한 김영삼 정부의 책임 대신 오히려 기업들이 위기의 주범으로 몰렸다. 게다가 고금리를 강요하며 과격한 구조조정을 주문하면서 국가경제의 손실을 키웠다. 기업 부채비율을 단기간에 400%에서 200%로 낮추라고 한 게 대표적이다. 이는 결국 대규모 해고로 이어졌다.


문: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됐다. 그 해결책으로 문재인 정부는 ‘사람 중심 경제’로의 전환을 선언했는데.

 

-성장을 해야 국가경제가 굴러간다. 문재인 정부는 성장에 대한 철학이 부족한 것 같다. 벤처기업만 육성해서는 경제가 클 수 없다. 벤처기업 20개 창업해서 한 개만 살아남아도 성공이라고들 하는데, 망한 사람들은 누가 책임지나. 그걸 정부가 나서서 장려하는게 칭찬할 일일까.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보완관계로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소기업 성장을 지원하는 산업금융 시스템을 복구해야 하고 어떻게든 대기업이 국내 투자를 늘리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래야 일자리가 늘어나고 동반성장 선순환도 쉬워진다. ‘갑질’은 법과 제도로 규제하면 된다. 국가경제가 성장하려면 금융자본보다 산업자본이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문: 최근 4차산업혁명 논의가 활발하다.

 

-‘4차’ 산업혁명이라기 보다는 ‘3차’ 산업혁명이 성숙되는 것으로 본다. 오히려 4차산업혁명 얘기하느라 국가경쟁력의 핵심인 중화학공업이나 부품소재산업 등 제조업을 사양산업인 양 취급하는 걸 경계해야 한다. 제조업을 중심에 놓고 금융과 서비스가 함께 가야 한다. 금융업과 서비스산업 모두 제조업 토대가 튼튼해야 한다.  


문: 문재인 정부 들어 다시 재벌개혁이 화두다.

 

-재벌개혁 얘기 나온지 30년이 넘었다. 목표를 이루지도 못했고 분배가 개선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그 개혁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재검토해볼 때도 된 것 아닌가? 재벌의 특성인 다각화(그룹체제)와 가족경영은 세계적인 차원에서 보면 결코 ‘일탈’이 아니다. 듀폰(미국), 지멘스(독일), 루이비통(프랑스), 피아트(이탈리아), 발렌베리(스웨덴) 모두 ‘재벌’이다. 재벌이 단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수십년을 생각하는 장기투자가 가능하고, 국제경쟁에서 자원을 효과적으로 동원할 수 있다는 장점도 존재한다. 삼성이 다각화와 장기투자를 무기삼아 반도체 시장에서 인텔에 앞서나가는 걸 생각해보라.


문: 최근 장하성 대통령 정책실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최종구 금융위원장 등이 강조한 ‘스튜어드십 코드’는 어떻게 보나.

 

-정부에선 스튜어드십 코드를 ‘기관투자자가 기업 경영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모범규준’이라며 기업개혁 수단으로 자리매김한다. 하지만 ‘선한 청지기(스튜어드)’로서 능력과 자격도 없는 기관투자가나 펀드매니저들에게 어떻게 ‘기업개혁’이라는 중차대한 과제를 맡기는가? ‘자율규제’라는 허울을 쓰지 말고 정부가 들어가서 기관투자자와 기업 간에 공평하고 생산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규제 틀을 만들어줘야 한다. (좀 더 자세한 논의는 여기, 그리고 여기를 참조)


문: 일각에선 한국 경제를 서서히 죽어가는 ‘뜨거운 냄비 속 개구리’에 비유하는 얘기가 많다. 제2 환란을 맞을 위험은 없는가.

 

-나는 그런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본다. 외국자본의 급격한 유입·유출 가능성도 낮고, 무엇보다 정부의 외환보유고와 외환관리체계가 20년전과는 비교할 수 없게 좋아졌다. 다만, 경제가 잘 되려면 정부가 기업가정신을 고취해야 하는데 오히려 기업인들을 통째로 죄인 취급하는 건 아닌가 싶은 건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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