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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

신장섭 교수, "미-중 환율갈등은 국내정치용"

by betulo 2010.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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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 사이에 위안화 절상 문제를 놓고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는 엄포를 놓고 중국은 부당한 압력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양국간 환율갈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금융문제 전문가인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한테서 미·중 환율갈등 관전법을 들어봤다.


Q: 미국이 위안화 절상 압박하는 이유는 무역적자 해소 때문인가.
A: NO

미국으로서는 단순히 무역적자만 해결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미국이 단순히 무역적자만 생각한다면 달러가치를 약하게 해서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이면 될 것이다. 근본 문제는 재정적자다.


출처: 한국은행 국제금융센터


미국은 심각한 수준인 재정적자를 메꾸기 위해 국채를 대폭 발행하는 한편으로 경기회복을 위해 저금리를 유지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위안화 절상, 다시 말해 달러화 절하가 되면 외국의 미 국채 구매자들은 고금리를 요구하게 되고 이는 자연스레 국내 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 경기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달러가치 절하는 무역적자를 줄일 수도 있지만 금리를 상승시켜 경기회복을 가로막는 양날의 칼로 작용한다.


신장섭 교수는 시사IN 2010년 3월10일자 129호에 실린 인터뷰에선 미중관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의 경우 무역적자를 줄일 수 없다. 무역적자를 줄이려면 소비를 감소시켜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경기침체가 더욱 심해지지 않겠나. 중국 역시 수출 증가세에 제동이 걸리면 실업 문제가 엄청나게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보면 기존의 양국 관계는 서로에게 이익이었다. 앞으로도 중국은 수출을 더 많이 하고, 미국은 소비를 더 많이 늘려야 경제가 회복될 수 있다.”


Q: 미국 국내정치적 상황이 위안화 절상 압박에 영향을 미치나.
A: YES

미국은 지금 무역적자 해소보단 국채 발행을 통한 경기회복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미국이 중국에 대해 위안화 절상을 강하게 요구하는 것이 얼마나 경제적인 합리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1980년대 이후 엔화 강세였다고 미국 무역적자 회복되지 않았던 과거 경험을 보더라도 위안화 절상한다고 미국 무역적자가 줄어든다고 보기도 힘들다.


미국 무역적자의 근본원인은 저축은 적고 소비는 많다는 것이다. 소비를 위축시키면 경기회복이 안되니까 과소비 구조를 바꾸기도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위안화 절상이 되면 중국산 제품의 가격이 올라가면서 소비 위축을 불러올 수도 있다.

출처: 한국은행 국제금융센터


그럼에도 위안화 절상압력을 넣는 것은 경제상황에 대한 불만을 외부로 돌리면서 강한 지도자로서 모습을 각인시키기 위한 ‘국내용’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세계 최대 미국 국채 보유국인 중국이 미국 국채를 계속 매입하도록 압박하기 위한 일종의 ‘성동격서’ 차원도 있다. 다른 나라들에게 엄포를 주는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Q: 중국이 미국 요구에 굴복할까.
A: NO

중국 역시 다분히 ‘국내용’이다. 중국을 잘 아는 사람들은 ‘어차피 중국은 필요에 따라 천천히 위안화 절상한텐데 왜 압력을 넣어 일을 꼬이게 만드느냐’고 미국에 충고한다. 중국은 미국 압력에 끌려가는 모양새를 원치 않는다. 중국은 점진적으로 위안화를 절상해 왔지만 미국이 위안화 절상 압력을 넣고 나서부터 그게 멈췄다.


그렇다고 위안화 절상을 언제까지나 거부하진 않을 것이다. 어차피 위안화 절상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미국 압력이 이를 늦추고 있다. 중국은 버티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적당한 선에서 합의하려 할꺼다.


중국은 환율을 급작스럽게 조정해서 문제가 생겼던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 일본은 과거 미국과 플라자합의를 한 이후 엔화 환율이 달러당 320~330엔에서 한 순간에 달러당 100엔이 됐다. 정부가 경제충격을 막기 위해 돈을 풀면서 거품이 커졌고 결국 장기간 경기침체를 맞게 됐다.


Q: 미·중 관계의 앞날은.
A: 긴장 속 협력

양국 모두 관계 악화를 바라지 않는다. 긴장관계는 계속되겠지만 환율문제는 적당한 선에서 합의가 될거라 본다. 중국은 평화롭게 대외관계를 유지하면서 경제성장을 이룬다는 게 기본 국가전략이다. 이는 달러 헤게모니를 인정한 속에서 실속을 챙기겠다는 접근법이다. 그것 때문에 그동안 손해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채를 계속 매입해왔던 것이다.

위안화 환율은 2008년 8월 이후 고정돼 있지만 교역국 간 물가변동을 반영한 실질실효환율(REER)이 크게 하락했다. 이는 중국에는 수입품가격인상에 따른 수입 억제 효과를, 교역 상대국에는 수출품 가격인상으로 인한 수출둔화를 유발한다. 실질실효환율 수치가 떨어질수록 통화가치가 저평가돼 있다는 의미다. (출처: 한국은행 국제금융센터)


미국 입장에서도 재정적자가 늘어나고 이를 메꾸기 위한 국채를 더 발행하면 할수록 중국과 협력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중국이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구입하는 국가라는 점을 더 강하게 의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이 미국 국채 비중을 줄이고 있다는 외신보도가 있었지만 세계 최대 달러보유국인 중국 입장에서 보면 전체 외환보유액에서 달러 비중을 지금보다 늘린다는게 더 현실성이 없다.


 
중국은 경제성장을 당면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미국에 대규모 구매사절단을 보낼 수는 있겠지만 환율을 통해 문제를 풀려고 하진 않을꺼다.


Q: 중국이 앞으로 환율제도를 바꿀 가능성이 있을까.
A: NO

환율제도에는 완전고정, 완전자유변동, 관리변동 세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중국은 고정환율제를 쓰다가 몇 년 전부턴 위안화 절상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관리변동환율제의 일종인 바스켓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바스켓 제도는 교역비중이 높거나 외환시장에서 자주 거래되는 주요 통화를 한 바구니(basket)에 담듯 묶은 다음 그 거래량의 가중 평균을 산출하고 여기에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해 환율을 결정하는 제도다. 중국은 경제성장을 위해 앞으로도 정부가 환율을 관리하려고 할 것이다.


중국과 싱가포르 모두 바스켓 방식인데 차이가 있다면 중국은 환율변동폭을 굉장히 작게 두는 반면 싱가포르는 폭을 많이 둔다. 싱가포르는 폭을 많이 주는 대신 외환거래를 그 안에서 자유롭게 하고 정부가 설정한 선을 넘지 못하도록 강제한다.


중국은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어떤 환율제도가 좋은지 모색하는 단계다. 공식적으로는 바스켓 방식이지만 지금까진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걸 다뤘다. 위안화가 약세로 갈 때는 어떻게 할지 테스트 해본 적이 아직 없다.


Q: 미·중 환율갈등이 한국에 주는 시사점은.
A: 환율은 관리대상이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완전자유변동환율제로 바꿨는데 아시아에서 이 제도를 쓰는 나라는 한국, 일본, 필리핀 뿐이다. 이 제도를 쓰고 나서 한국은 환율변동폭이 너무 커지면서 손해만 보고 있다. 더구나 환율변동이 위험할 경우엔 정부가 손해보면서 개입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도 존재한다. 



환율은 거래를 위한 저울인데 저울 눈금이 시시때때로 변하면 투기꾼만 이익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환율을 결정하면서도 환율변동폭에 신축성을 주는 싱가포르 방식의 바스켓 제도가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한국도 1980년대 바스켓 방식을 운영했다. 당시엔 외환자유가가 안됐기 때문에 정부가 그날 그날 환율을 고시하는 방식이었다. 지금 시스템에선 당시처럼 하면 외환시장을 다 죽이게 된다. 그래서 싱가포르처럼 밴드를 여유있게 두면서 정부가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한국이 80년대 사용했던 방식과 중국, 싱가포르 지금 쓰는 방식은 기본 철학이 같다. 바로 환율을 정부가 관리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완전자유변동환율제라 하더라도 정부가 개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생긴다. 2008년 환율 상황을 기억해보라.


시장이 적정 환율 결정한다는 전제를 이미 깔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개입한다고 하면 정부가 명분에서도 지고 동원할 수 있는 자금규모도 작다. 반면 관리변동환율제도에선 시장이 적정환율을 담보해주지 못하니까 국가의 필요에 따라 시장을 관리한다는 철학이다. 시스템을 만든 다음에 시장 참가자들에게 그 범위 안에서 하라는 국가적 명령을 내리는 거다. 이를 바탕으로 명분을 갖고 도덕적 설득도 할 수 있다.


국가 차원에서 환율에 개입하면 안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오해일 뿐이다. 시장환율이 절대적이라는 전제 자체가 잘못됐다. 또 그렇게 해서 한국 경제에 한번이라도 이익을 준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신장섭 교수는 시사IN 2010년 3월10일자 129호에 실린 인터뷰에선 이 부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현재 국제금융시장의 통화 거래 규모는 연간 1000조 달러에 달한다. 이 중 실물 교역에 해당하는 부분은 2%도 안 된다. 대다수가 투기적 거래이고 이런 투기의 대상은 각국의 통화인 것이다. 국제금융시장에 좋은 것은 개별 국가경제에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투기꾼과 투기 대상의 이해가 일치한다고 보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나.”

 

신장섭 교수와 장하준 교수

신장섭 교수는 장하준 교수와 내세우는 주장이 여러모로 닮은꼴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두명 다 캐임브리지대학에서 공부했고, 제도경제학을 이론적 기반으로 한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본다. 특히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두 명은 많은 점을 공유하고 있다. 특히 <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 무엇이 문제인가>란 책을 같이 쓰기도 했다.
 
인터뷰 말미에 평소 궁금했던 두 사람의 인연에 대해 물어봤다. 신 교수는 80학번이고 장 교수는 82학번인데 신 교수가 입학 직후 군대를 갔다와서 장 교수와 학교는 같이 다녔다고 한다. 신 교수는 졸업 후 매일경제에서 기자로 일했고 장 교수는 영국에 유학갔다. 신 교수가 1990년에 영국에 유학을 갔는데 그때 장 교수는 '교수'가 돼 있었다고 한다.

신 교수는 두사람의 관계를 이렇게 정리한다. "후배이자 선생님, 혹은 선배이자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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