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액티브X 없는 연말정산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정부에서 ‘이번엔 다르다’고 하는 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올해부턴 액티브X 없는 연말정산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말 자체는 사실이다. 액티브X는 없어졌다. 대신 범용 실행파일(exe)을 설치해야 한다.
지난해 12월 18일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액티브X 제거 추진계획’ 보고하면서 국세청 연말정산 서비스에서 우선적으로 액티브X를 제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틀 뒤 국세청은 연말정산 관련 브리핑에서 “웹표준 기술로 교체해서 2017년도 연말정산에선 익스플러로 외에 크롬 사파리 등에서도 이용할 수 있도록 개선”이라며 액티브X 없는 연말정산을 강조했다.
과연 그럴까. 실제 연말정산을 해보니 “정부한테 속았다”는 말이 나오는데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첫 화면에서부터 공인인증서와 함께 액티브X를 설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게다가 공인인증서를 설치하기 위해 은행 사이트에 들어가니 액티브X 5개를 한꺼번에 깔아야 한다고 한다.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익스플러로를 열고 액티브X를 덕지덕지 깔고 나서야 연말정산을 할 수 있었다.
아주 거칠게 표현해서 액티브X는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붙어서만 실행되는 윈도우 응용프로그램이다. 익스플로러가 아닌 크롬이나 파이어폭스 같은 웹브라우저에선 사용할 수 없다. 마이크로소프트(MS)조차 보안에 취약하다는 이유로 액티브X를 사용하지 말라고 소비자들에게 권한다. 액티브X를 없애라는 요구는 하루이틀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때부터 액티브X 폐지를 공약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천송이 코트” 운운하며 액티브X를 없애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리고 나서 달라진 게 있긴 했다. 액티브X 대신 범용 실행파일(exe)을 한번에 설치하는 방식이 등장했다. 국세청 연말정산 사이트 역시 다르지 않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번 연말정산부터 액티브X를 모두 제거했다”면서 “(액티브X 대신 도입한) exe는 액티브X와 달리 모든 웹브라우저에서 사용 가능한 웹 표준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강제로 내려받아야 하는 건 exe나 액티브X나 차이가 없다.
국세청에선 “일부 컴퓨터에선 보안 설정 등 기술적 이유로 호환이 안 될 수 있다”고 하면서도 기본적으론 다양한 웹브라우저에서 호환이 된다는 걸 강조하지만 직접 사용해본 입장에선 와닿지 않았다. 국세청으로선 왜 일부에서 “액티브X 대신 액티브Y가 등장했다”는 비아냥이 나오는지 되새겨야 할 것 같다.
정부로선 왜 액티브X를 없애자는 얘기가 계속 나오는지 그 이유를 곱씹어 봐야 한다. 무늬만 액티브X 퇴출이면 되겠지 하는 잘못된 정책결정 때문 ‘인터넷 갈라파고스’라는 오명도 벗을 수 없다. 그러는 사이 국민들은 액티브X나 exe가 필요없는 해외직접구매로 탈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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