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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생각

신장섭 교수, 투기자본 공격 이겨내야 금융위기 극복 가능

by betulo 2011.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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얽히고 설킨 국제경제 위기국면에선 식견있는 전문가가 짚어주는 맥락이 절실하지요. 지난번엔 장하준 교수 진단을 들었는데 이번엔 신장섭 교수 진단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국제금융 전문가인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927일 국제전화로 인터뷰를 했습니다. 신 교수는 최근 세계 각국의 금융위기에 대해 국제투기자본의 공격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활성화와 투기자본규제를 강조했습니다.

1999년부터 싱가포르국립대에서 일하는 신 교수는 영국 캐임브리지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도교수였던 장하준 교수와 함께 한국 외환위기 원인과 구조조정 과정을 분석한 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으로 국제적인 호평을 받았습니다.


<신장섭 교수가 말하는 금융명제 다섯가지>

몸통이 꼬리를 흔든다

 - 투기가 몸통이고 펀더멘틀은 꼬리에 불과하다

돈은 신흥국에서 선진국으로 흐른다

 - 신흥국에 돈이 들어오는 것보다 빠져나가는 것이 훨씬 쉽다 

버블은 터지기 마련이고 새로운 버블을 만들어서 해결한다

  - ‘버블 만들기가 자본주의 발전과정이다 

음모론을 믿어라

 - 어느 음모론을 믿을지가 중요할 뿐이다 

성장률 숫자에 현혹되지 말라

  - 자산가치가 더 중요하다 

 출처: ‘금융전쟁: 한국 경제의 기회와 위험’(2009)




: 최근 세계 경제위기의 원인은.


현 상황은 투기에 대해 전세계 당국이 제대로 대처를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각국 정부는 정부 곳간을 열어 경기를 부양해 위기를 극복하기로 국제공조를 합의했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리면 단기적으로 재정건전성이 나빠지는게 당연한 일이다.


지난해 이후 그리스는 유로연합군국제투기세력의 전장이었다. 특정 세력이 그리스를 목표로 대규모 투기를 하면서 사태가 벌어졌다.


 재정악화를 감수하는 것이 국제공조의 기본정신인데 그리스 위기가 자기들에게 불똥 튈까봐 문제의 원인을 그리스 정부부채로 돌리며 재정긴축이라는 각자도생을 선택했다. 한마디로 투기자본에게 굴복한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투기자본의 공격이 갈수록 거세지면서 위기가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그래도 최근엔 유럽 자체가 박살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커지면서 더 강력하게 대응할 여지가 커졌다. 유럽이 얼마나 강력하고 신속한 대응책을 합의하느냐가 관건이다.

 

정부부채에 대한 환상을 버려라

신장섭 교수는 유럽이 정부부채로 인한 위기를 겪고 있다는 세간의 '상식'을 거부한다. 그는 정부부채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하는 입장이다.

정부부채 자체는 국가를 위기에 빠트리지 않는다. 그걸 갚을 수 있느냐 하는 신뢰가 관건이다. 1930년대 미국에서도 재정위기 논란이 있었다. 당시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는 40% 수준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지만 당시에는 엄청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장하준 교수도 인터뷰에서 비슷한 의견을 밝힌 적이 있다.

자유시장주의자들은 정부부채와 가계부채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한국처럼 기축통화를 갖고 있지 않는 나라라면 외채 증가가 국가부도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이나 영국,유로존처럼 기축통화 성격이 있는 경제에서는 돈을 더 많이 찍고 정부부채가 늘어난다고 해서 그 자체로 나라가 망하진 않는다. 

가령 국채를 국민에게 팔면 국가는 부채가 늘어나겠지만 채권자인 국민들은 이자수입이 생긴다.물론 장기적으로 재정적자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순 없다. 돈이 돌고 투자가 늘어나고 일자리가 생기고 성장을 해야 세수가 늘어난다. 그래야 재정적자가 줄어든다.


 

: 그리스는 결국 질서있는 디폴트로 갈까.


국제시장에서 그리스 채권 거래 양상을 보면 그리스는 이미 사실상 질서있는 디폴트상황이다. 그리스는 2009년에 성장률이 마이너스 1.9%였다. 2010년에 성장률이 -6.6%로 떨어졌다. 올해 연초 예상이 -4%였는데, 지금은 더 나빠질 것이다. 작년에 그리스 사태를 봉합한 방식은 바로 그리스에 돈을 빌려주는, 다시 말해 부채규모를 키우는 것이었다. 부채 문제는 오히려 더 악화됐다. 계속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데 돈 벌어서 빚을 갚을 수가 없으니 지금으로선 달리 방법이 없다.

 

: : 최근 한국 경제상황은 2008년보다 낙관적인가.


한국 경제만 놓고 보면 2008년보다 더 악화될 요인은 없다. 2008년 상황을 떠올려보자. 당시 아킬레스건은 단기외채가 많다는 것이었는데 그 절반 가량이 외국계은행이 본점과 지점간 거래 형태로 들여온 것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외국계 은행이 유동성 위기에 빠질 거란 생각을 전혀 못했는데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외국계 은행들이 한국 지점에 내놨던 달러화 현금을 본격으로 일제히 환수하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이 한국 외환시장 위기를 부채질했다.

당시 경험을 통해 지금은 정부가 외국계 은행간 거래에 대해 제한을 두기 때문에 당시처럼 갑작스럽게 빠져나가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 ‘자유로운 자본유출입에 대한 미신도 많이 줄었다. 단기외채 비중도 훨씬 줄었다는 것도 긍정적이다.

 

: : 한국 주식시장이 외국 자본의 먹잇감이 됐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이 질문은 배경설명이 필요하다. 당초 사전에 신 교수에게 전달한 질문지엔 이렇게 돼 있다.

지난 9223309억원, 236761억원 순매도 등 지난 8월 이후 외국인 주식 순매도액이 7조원을 넘어섰다. 이는 위기국면엔 자금이 신흥국에서 선진국으로 빠져나간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 924일 보도에 따르면 이호상 한화증권 연구원은 "외국인은 위험회피 목적으로 지난달 초에 선물을 42000계약 순매도해 이후 증시 급락으로 1조원 안팎의 수익을 실현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 얘기는 오래 전부터 나왔다. 다른 신흥경제국도 별 차이가 없지만 한국이 좀 더 크게 당해서 도드라져 보이긴 한다. 지금 상황은 달러화가 모자라는 유럽계 은행들이 투자수익을 회수해서 현금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지금같은 위기 국면에선 신흥국 자산이 선진국으로 간다는 역사적 경험이 있다. 그러니까 국내 투자자들이나 외국인 투자자들이 너나 없이 자금을 회수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거기까진 헷지(위험회피)용이다. 거기에 더해 그런 흐름을 이용하는 투기세력도 개입한다. 2008년에도 세 주체가 경쟁적으로 자금을 회수하면서 위기설이 나온 적이 있다. 지금도 기본적으로 비슷한 상황이다.

 

: : 지난 923일을 예로 들어보면 환율이 1200원선을 위협할 때마다 정부가 개입해 달러를 매도하는 식으로 환율을 조정했다. 이 상황은 2008년 하반기를 떠올리게 한다. 현 상황은 수출대기업을 위한 환율개입인가.


정부가 환율에 개입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해야만 하는 것이라 본다. 지금 환율이 올라가는 것에 대해 개입하는 것은 수출대기업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경제 전체 불안정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너무 갑자기 약세 쪽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2008년 하반기에도 고환율정책이란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과연 그랬는지 의문이다. 당시 당국이 수출을 통해 경제활력을 이끌겠다는 의도는 있었지만 문제는 유가가 100달러를 돌파했다는 점이다. 원자재 가격에 대단히 취약한 한국 경제 성격상 무역적자가 쌓이고 환율 약세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건 당연한 과정이었지만, 원자재 가격 증가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는 딜레마도 있다.

정부가 고환율과 물가안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틈에 환투기 세력에게 집중 공격을 당했다. 현재 정부는 당시 뼈아픈 경험을 고려해서 외환시장에 개입하더라도 상황 보면서 조심스럽게 개입하고 있다는 점은 평가해주고 싶다.

 

: : 한국 위기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물안 개구리가 되면 안된다. 과거보다 정부부채와 가계부채가 늘어난 건 맞다. 하지만 그건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한국 부채 상황이 다른 선진국보다 특별히 더 나쁘다고 보진 않는다.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문제 투성이다. 투기는 그 중에서도 약한 고리를 노리고 들어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같은 상황에선 역설적으로 한국 경제의 문제점보단 강점을 더 얘기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 문제만 찾아보면 약점이 얼마나 많겠느냐. 외국과 정확히 비교하면서 장점과 단점을 찾아야 한다. 한쪽만 바라보고 그것만 들추다 보면 오히려 국제투기자본에 의도하지 않게 이용당할 수 있다.

 

신 교수가 말하는 한국 외환위기와 그리스 위기 공통점과 차이점

그리스에 대한 과도한 구조조정은 일견 한국이 외환위기 당시 겪었던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신 교수 역시 그런 점은 일부 인정하지만 위기의 원인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이에 덧붙여, 외환위기 당시 한국이 취했던 태도를 매우 아쉬워했다.

그리스와 한국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리스는 제조업이 없었다. 갖다 쓴 돈은 소비를 위한 것이었다. 막말로, 위기를 당해도 싸다. 반면, 한국은 돈을 주로 기업이 빌려서 다 투자하는데 썼다. 과잉투자로 비판을 받았지 돈을 쓸때는 제대로 썼다. 한국과 중남미, 한국과 그리스를 비교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본다.

더 말도 안되는 것은 외환위기 당시 IMF 등에서 한국을 중남미와 비교하면서 지나친 구조조정을 했다는 점이다. 한국이 위기를 잘 극복했다고들 하지만 나는 그것에 대해, 너무 우직하게 하라는 대로 다 해서 극복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한국은 갚나가는 재산 상당수 헐값에 팔아넘겼다. 경제의 심장을 내줬다.

그런 식으로 미국이 한다면 위기 극복 벌써 다 했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절대 그런 짓 안할 거다. 부도 지경에 간 나라들 어떻게 할 것인가. 그건 다 협상이다. 협상은 하되, 너무 뻔뻔할 필요도 없지만, 너무 달라는 대로 다 주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엔 펀더멘털 좋았는데 외환보유액이 형편없어서 박살났다. 정부가 외환보유액 실태를 쉬쉬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우리가 큰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고 본다. 나는 당시 정부가 모라토리엄(채무상환유예)를 선언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일반 기업도 상황 안 좋아서 계약대로 채무 못갚을 때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한다. 한국은 안그러다가 결국 IMF에 손벌렸다. 당시 금융위기에 김영삼 정부 책임이 크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그가 임기 마지막에 할 수 있는 애국이 모라토리엄이었는데 그걸 안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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