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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사해/한반도-동아시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느끼는 남북 화해를 위한 ‘비법’

by betulo 2016.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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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시드니 올림픽처럼 남북한 공동입장같은 감동은 없었다. 어색한 침묵과 경계심이 흘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땀을 통해 하나되는 우애와 화합은 있었다. 국가간 관계에서 정치군사적 긴장이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날때는 진심과 눈빛이 더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 올림픽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金)씨가 가장 많이 출전한 올림픽이었다. 전세계 206개국 1만 500여명이나 되는 선수 가운데 김씨는 남측에서 45명, 북측에서 13명으로 58명이나 됐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통해 남북한 현주소와 평화를 위한 단초를 찾아본다.

 8월 6일(이하 한국시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올림픽 개막식이 열렸다. 선수 204명, 임원 129명 등 모두 333명이나 되는 한국 선수단은 207개국 중 52번째로 마라카낭 주경기장에 입장했다. 흰색 바지에 군청색 재킷의 단복을 입고 흰 모자를 쓴 선수단은 한 손에 태극기를 들었다. 일부 선수들은 인증샷을 찍었다. 한국은 28개 종목 중 24개 종목에 참가했다. 당초 목표는 금메달 10개 이상, 종합 순위 10위 이내였다. 이른바 10-10계획이었다. 북측 선수단은 156번째로 입장했다. 남자 역도 선수 최전위가 기수를 섰다. 한 손에 인공기를 든 선수들은 른 나라 선수들과 달리 줄을 맞춰 질서 있게 입장해서 오히려 눈길을 끌었다.
 
 #목표는 금메달 10개와 5개

 북측은 리우 올림픽에 육상, 수영, 탁구, 레슬링, 양궁, 체조, 역도, 유도, 사격 등 9개 종목에 남자 11명, 여자 20명 등 선수 31명과 임원 4명을 파견했다. 미국 스포츠 데이터 분석업체나 USA투데이 같은 언론에선 대체로 금메달 3개가 현실적인 목표라고 봤다. 북측은 4년전 런던 올림픽에선 11개 종목 56명이 출전해 금메달 4개, 동메달 2개를 획득했다. 대체로 기계체조 리세광, 역도 엄윤철과 림정심 등이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다.

 리우 올림픽 직전인 5일 엄윤철, 림정심, 김국향 등 북측 선수들이 브라질 리우 센트루 파빌리온 5에서 두 시간 동안 훈련하는 모습을 취재한 남측 언론에 따르면 이들은 남측 기자들을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림정심과 김국향은 훈련 내내 서로를 바라보며 농담을 하고 미소를 지었다. 오른 어깨에 테이핑하고 나타난 엄윤철 역시 훈련 내내 밝은 표정을 보였다. 하지만 공동취재구역에서는 침묵을 지켰다. 최근 몇년간 계속된 남북 긴장국면의 영향은 국제대회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생각해보면 얄궂은 노릇이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남북 선수단이 공동 입장했다.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 야후스포츠가 올림픽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순간 20개를 선정했는데 첫번째가 바로 남북한 공동입장이었다. 당시 선수들 180명은 단일기를 들고 같은 옷을 입고 개회식에 들어섰다. 12만명이 넘는 관중들이 기립해 남북한 화해와 협력을 기뻐해줬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남북한 선수들은 공동입장했다. 하지만 2008년 베이징올림픽부터는 더이상 공동입장을 볼 수 없게 됐다.

 리우 올림픽에서 처음 열린 남북대결은 11일 양궁 여자 개인전 16강이었다. 장혜진은 강은주를 이기고 8강에 올랐다. 그리고 금메달까지 땄다. 16강전을 마친뒤 장혜진은 “요즈음은 북한의 경호가 심해져 못하지만 예전에는 강은주와 국제무대에서 만나면 아는 척을 했다”면서 “2013년 월드컵 대회에서는 은주가 ‘언니’라고 부르며 자세와 활 쏘는 방법에 관해 묻기도 했다”고 말했다. 당시 두 선수가 사용한 활은 모두 한국기업인 ‘윈앤윈’이었다.
 
 #남북 모두 기대에 못미친 성적

 올림픽을 마치고 보니 남측은 금메달 9개, 은메달 3개, 동메달 9개를 땄다. 북측은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였다. 목표에 미치지 못하기는 남과 북이 모두 마찬가지였다. 북측으로선 첫 금메달을 기대하며 최룡해 조선노동당 부위원장이 경기장을 찾을 정도로 ‘가장 확실한 금메달 후보’로 꼽히던 역도 남자 56㎏급 엄윤철이 8일 중국 룽칭취안에게 밀려 은메달에 그친게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역도 여자 63㎏ 최효심(은메달), 사격 남자 50m 권총 김성국(동메달), 탁구 여자단식 김송이(동메달) 등이 메달 소식을 전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마침내 13일 역도 여자 75㎏급에서 림정심이 인상 121㎏, 용상 153㎏, 합계 274㎏을 들어 북한 최초로 올림픽에서 금메달 두 개를 딴 여자 선수 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림정심은 13일(한국시간) 역도 여자 75㎏급 결승에서 정상에 올랐다. 2012년 런던올림픽 69㎏급에서 금메달을 땄던 림정심은 이번 대회에선 한 체급  올린 75㎏급에 나서 우승을 차지했다. 림정심은 남자 레슬링 자유형에서 올림픽 2연패(1992년 바르셀로나, 1996년 애틀랜타)에 성공한 김일에 이어 북한 선수 중 두 번째로 금메달을 두 개 차지했다.

 두 번째 금메달은 16일 남자 체조 도마에서 리세광이 따냈다. 강력한 우승 경쟁자인 남측 양학선이 없는 올림픽 도마는 리세광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북한으로선 이번 대회 두 번째 금메달이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배길수가 남자 안마에서 금메달을 딴 뒤 남자 기계체조에서 따낸 역대 두 번째 금메달이었다. 하지만 여자 체조 홍은정이 도마에서 착지에 실패해 입상권에서 멀어졌고, 다이빙 김국향은 여자 싱크로나이즈드 다이빙 10m 플랫폼에서 4위에 그치고 여자 다이빙 10m 플랫폼은 예선 탈락했다.

 올림픽을 맞아 리우를 찾았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최룡해 조선노동당 부위원장은 서로 만나지도 않았다. 선수들끼리도 대놓고 얘기하기가 알게모르게 부담스러운 분위기였다. 그런 와중에도 여자 기계체조에 출전한 남측 이은주와 북측 홍은정이 다정하게 셀카를 찍는 장면은 리우 올림픽을 상징하는 모습으로 전세계에 각인됐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리우 올림픽에서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는 장면으로 자체 선정한 10가지 가운데 이은주·홍은정 셀카를 첫번째로 꼽았다.
 
 #“위대한 몸짓”

 사정은 이렇다. 이은주는 지난 7일 여자 기계체조 예선이 끝난 뒤 홍은정에게 다가가 함께 사진찍기를 권했다. 홍은정이 이를 흔쾌히 수락했고 두 선수는 활짝 웃으며 셀카를 찍었다. 이 모습이 마침 로이터통신 사진기자 카메라에 잡혔다. 이 사진은 언론과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전세계에 신선한 감동을 줬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이들을 두고 “위대한 몸짓”(Great gesture)이라고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화해와 평화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이스라엘과 연관된 갈등 사례도 두 가지나 뽑혔다. 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6일 마라카낭 주경기장으로 가려 했던 이스라엘 선수들이 레바논 선수단이 탑승한 셔틀버스에 올라타려고 하자 레바논 선수단장이 이들을 가로 막았다. 엘 셰하비(이집트)는 13일 유도 남자  100㎏ 이상급 32강에서 맞붙었던 오르 새슨이 청한 악수를 거부했다. 심판이 그를 불러세워 악수하라고 했지만 그는 재차 거부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엄중 경고했고 결국 이집트올림픽위원회는 그를 귀국조치시켰다.
 
 #“둘이 하나가 되면 더 큰 하나의 메달”

 이은주-홍은정과 함께 진종오-김성국이 보여준 모습은 남북간 화해와 협력이 어떠해야 하는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진종오와 김성국은 11일 50미터 권총에서 나란히 금메달과 동메달을 땄다. 김성국은 “진종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수로 적수라고 생각한다. 진종오를 목표로  놓고 훈련해 나중에는 우승하겠다”고 말했다. 
 
   진종오는 다음날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성국은 국제대회에서 처음 본 선수라 긴 대화를 하지는 못했다”면서 “시상식에서 김성국에게 ‘너 앞으로 형 보면 친한척해라’고 말해줬다”며 “동생이 하나 생긴 격”이라고 말했다.

 진종오는 이런 말도 했다. “사격장에서 만난 북한 김정수가 나보고 ‘너 왜 10m 권총은 그렇게  못 쐈느냐’라며 핀잔을 줬다. 나도 ‘형도 못 쐈잖아요’ 했더니 자기는 나이가 많아서 그런다고 했다. 그래서 ‘형만 나이 먹었나요. 나랑 두 살 밖에 차이 안나요’라는 농담도 주고받았다.” 김정수는 인민체육인 칭호까지 받은 체육계 스타다.

 막판까지 진종오와 경쟁한 끝에 동메달을 목에 건 김성국은 시상식 뒤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둘이 하나가 되면 더 큰 하나의 메달이 되는 것 아닌가. 1등과 3등이 하나의 조선에서 나오면 더 큰 메달이 된다.” 김성국이 말한대로 남북이 딴 메달을 더하면 금메달 11개, 은메달 6개, 동메달 11개다. 종합순위를 따져보면 남북을 더했을 때 금메달 순위는 일본에 이어 7위로 올라선다. 공교롭게도 이날 은메달을 딴 호앙 쑨 빈(베트남)을 지도한 건 남측 박충건 감독이었다.

 남과 북이 공동입장을 하고, 응원단을 파견하며 서로 우의를 다지던게 벌써 10년도 더 지난 얘기가 돼 버렸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더니 이젠 개성공단도 문을 닫아버렸다. 남북 사이엔 이제 관계라고 할 것도 남아있질 않다. 중간에서 중국은 이익을 챙길 수 있다. 미국과 일본에겐 돈도 벌고 국제안보 헤게모니를 유지하는 알리바이로 남북간 긴장만한게 없다.

 남측과 북측에서도 누군가는 긴장과 갈등으로 돈을 벌고 기득권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체육인들이 서로 스스럼없이 셀카를 찍고 호형호제를 하듯 우리도 이제는 긴장이 아니라 평화, 갈등이 아니라 화해를 다시 한번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그저 먼저 손을 내밀기만 해도 지금보다는 더 좋은 변화를 만들 수 있다. 어떤 철학자가 말했듯이, 불행해지는 단 한가지 방법은 바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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