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횡사해/한반도-동아시아

강릉과 평양에서 울려퍼진 '애국가'

by betulo 2017. 5. 7.
728x90
강원도 강릉으로 가는 길은 말 그대로 공사판이었다. 고속버스를 타고 한숨 푹 자고 나서 바깥을 살펴보니 말만 고속도로일 뿐 차량이 움직이는 속도는 출근길 서울 시내같다. 왜 그럴까. 차창 밖으로 산줄기를 반 토막 내고 뚫은 자리에 도로를 넓히고 만드는 모습이 쭉 이어진다. 

버스를 타기 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서울에서 강릉은 대략 160㎞ 떨어져 있었다. 그 정도 거리에 2시간 30분 걸리면 충분한 것 아닌가. 도대체 얼마나 더 빨리 가야 하는 건지 솔직히 이해하기 힘들다. 더 빨리 강원도에 갈 수 있으면 더 빨리 서울로 돌아올 수 있으니 강원도 관광산업에 마이너스인 건 분명해 보인다. KTX 출범으로 당일 치기 서울~부산 출장이 가능해진 것처럼 말이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당시 장 드라포 시장은 재정 악화를 우려하는 비판을 일축했다. “올림픽에서 적자를 볼 수 없는 것은 남자가 임신할 수 없는 것과 같다”며 한사코 흑자를 자신했다. 올림픽을 치르고 1년 뒤 신문에는 임신한 드라포 시장을 그린 만평이 실렸다. 올림픽으로 인한 부채만 100억 달러를 웃돌았다. 몬트리올은 2006년까지 30년간 특별세를 거둬야 했다. 

한국 정부는 평창동계올림픽 개최에 따른 총생산액 유발 20조 4973억원, 부가가치 유발 8조 7546억원, 고용증대 효과 23만명이라고 추정했다. 총생산액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투입해야 할 예산을 말하는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강원도에 그토록 많은 예산을 투입해서 흑자 올림픽을 이룰 것으로 믿는 사람이 지금도 있을지 모르겠다. 마음 한구석에는 이제라도 동계올림픽을 반납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느끼는 절망 혹은 근심걱정이다. 세상일이 다 그렇듯 희망의 근거는 언제나 있다. 그건 바로 강릉에서 열린 2017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여자 세계선수권 디비전2 그룹A(4부 리그) 남북전이었다. 강릉하키센터에서 4월7일 열린 경기에서 남북한 여성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뛰었고 경기가 끝난 뒤에는 승자를 격려하고 패자를 위로했다. 

경기장에는 태극기와 인공기가 내걸렸고 장내 방송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번 선수가 교체됐습니다”는 식으로 공지했다. 홍길동을 홍길동이라 부르지 못하는 우리네 현실에서 그게 또 묘하게 머리에 오래 남았다. 그런 모습에 흥분해서 불만을 제기하거나 항의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 또한 고무적이었다.

 “사실 무승부를 바랐는데 남측 선수들이 너무 잘해요”

 아이스하키 경기가 끝난 뒤 만난 이창복 남북공동응원단장은 어느 때보다 감격스러워했다. 그는 지난 2월 중국 선양에서 열린 6·15공동선언실천 남·북·해외 연석회의에서 북측 출전을 요청해 디딤돌을 놓은 주인공이다. 공동응원단 500여명을 이끄는 이 단장은 “빙판 위에서 서로 부딪치고 쓰러지고, 다시 일으켜 주는 과정 자체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그게 바로 통일 아니겠느냐”고 운을 뗐다. 이어 “우리의 뜨거운 응원 열기가 북측에 전해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공동응원단은 북한 선수들이 출전한 다섯 경기를 우리 경기처럼 응원했다.

  아이스하키는 경기가 끝난 뒤 승리한 국가대표팀 국가를 연주해준다. 지난 4일 북한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남북공동응원단의 열렬한 응원 속에 강호 영국을 연장 접전에서 꺾는 이변을 일으키자 강릉하키센터에선 북한 국가인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경기가 끝난 뒤 북한 선수들은 눈물을 흘리며 얼싸안았다. 북한 선수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큰 목소리로 응원해 준 남북 공동 응원단에게 두 손을 들어 답례했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 들어선 북한 선수들은 상기된 얼굴로  취재진 한 명 한 명과 따뜻한 시선으로 눈을 맞췄고 한 선수는 소감을 묻는 말에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다. 한호철 북한 대표팀 매니저는 “열렬히 응원을 보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큰 힘이 됐습니다”라고 남측 응원에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남북공동응원단이 결성된 것은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이후 13년만이다. 남북공동응원단에 참여해 열성적으로 선수들을 응원한 이들은 대부분 강원도에 사는 평범한 이들이었다. 경기 시작 전부터 이들은 땀방울을 쏟는 남북 선수들을 향해 일제히 한반도기를 흔들고 박수를 보내며 “우리는 하나다”, “통일 조국” 같은 구호를 외쳤다. 

승패에 굳이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남녀노소를 가릴 것도 없이 평창동계올림픽이 ‘평화 올림픽’으로 자리하기를 바라는 모습이었다.   남북공동응원단에는 개성공단 기업인들도 섞여 있었다. 남북전 현장을 보러 강릉까지 찾아온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은 “빨리 대화하고 교류해야 한다. 정치 때문에 기업인들이 피해를 봐서는 안 된다. 스포츠 교류가 꽉 막힌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을 털어놨다.

경기장에서 만난 남북동동응원단이 바라는 건 ‘평화 올림픽’ 실현이었다. 강원도 경제를 살리는 건 ‘반짝 이벤트’ 한 번이 아니라 금강산 관광 재개라고 입을 모았다.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거나, 공동입장을 하거나, 마식령 스키장에 훈련캠프를 유치하거나, 하나라도 성사시키면 최순실 국정농단 여파로 된서리를 맞은 평창동계올림픽에 따뜻한 햇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이선경(원주시민연대 대표) 공동응원단 운영위원장은 “평창동계올림픽 때 북한 선수들이 육로로 오고 금강산 관광도 재개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금강산을 거쳤으면 30분으로 족할 거리를 중국을 거쳐 비행기 타고 오니까 이틀씩이나 걸렸죠.”

 최순실 국정농단 여파로 된서리를 맞았던 평창동계올림픽 분위기는 남북전, 그리고 남북공동응원단 덕분에 모처럼 뜨거워졌다. 남북 선수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테스트 이벤트는 강원도뿐 아니라 전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대회에 등록한 해외 취재진은 월스트리트저널(미국), 아사히(일본), 르몽드(프랑스) 등 46개사 79명에 이른다. 경기장 관람석 7000석 중 현장 발권하는 1000석을 제외한 6000석이 매진됐다. 이 단장은 “관람객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기 위해 한반도기 1800개를 준비했는데 경기 시작 전에 다 나갔다”며 웃었다. 

한 독일인은 “똑같이 분단이란 아픔을 겪은 국민으로서 꼭 통일을 이루길 바란다”며 한반도기를 챙기기도 했다. 국제아이스하키연맹 르네 파젤 회장도 이날 경기장을 찾았다. 그는 경기가 끝난 뒤에는 남북한 선수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국제연맹은 선수들에게 유엔 스포츠 평화의 날(4월6일)을 기념하는 뜻을 담아 ‘피스 앤 스포츠’라고 쓴 엽서를 선수 모두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평양과 강릉에서 울려퍼진 ‘애국가’

강릉에서는 여성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어우러질 때 평양에선 여성 축구선수들이 피할 수 없는 경기를 벌였다. 2018년 4월 요르단에서 열리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예선전 참가를 위해 지난 2일 출국한 남측 여자 축구대표팀은 중국 베이징을 거쳐 3일 평양에 도착한 뒤 7일 김일성경기장에서 북한 대표팀과 만났다. 공식 경기로는 남녀와 연령별 대표팀을 통틀어 처음으로 평양에서 열리는 경기였다. 

1990년 10월 11일 열린 ‘남북통일 축구’가 열린 적은 있지만 그건 이벤트경기였고 당시 경기장 역시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번 대표팀을 이끄는 윤덕여(56) 감독은 1990년 5·1경기장에서 뛴 주인공이기도 했다. 평양에서 열리는 B조 예선에서 조 1위를 한 대표팀만 요르단에 갈 수 있기 때문에 물러설 없는 경기였다. 게다가 아시안컵에 출전하지 못하면 2019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 월드컵 예선전 출전권도 불가능하다.

  사실 북한 여자축구는 전세계에서 손꼽히는 강팀이다. 지난해 국제축구연맹(FIFA) 17세 이하(U-17) 여자월드컵과 FIFA U-20 여자월드컵에서 잇달아 우승을 차지했다. 북한 여자축구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0위로 한국(18위)보다 몇 수 위다. 객관적인 전력만 놓고 보면 남측의 열세가 분명했다. 상대전적 역시 1승2무14패다. 거기다 경기가 열리는 곳은 평양 김일성경기장이다. 여러모로 불리한 조건이었다.

  드디어 7일 남북전이 열렸다.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김일성경기장은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게 꽉 찼다. 김일성경기장엔 태극기가 게양됐다. 경기 시작전 남측 애국가와 북측 애국가가 연주됐다. 다른 노래지만 모두 같은 애국가다. 전반 추가 시간 북한의 신예 공격수 승향심이 폭발적인 개인기로 선제골을 넣었다. 포기하지 않은 남측 선수들의 끈기가 드디어 빛을 발했다. 후반 30분 장슬기가 동점골을 터뜨렸다. 결국 경기는 1-1 무승부였다. 경기 초반 북측이 따낸 페널티킥을 실축한게 남측으로선 천만다행이었다. 어쨌든 경기 결과는 무승부였다. 남북 모두 3승1무로 조별예선을 마쳤다. 골득실로 조 1위는 남측 몫이 됐다.

  북한축구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우수한 어린 선수들을 유럽 명문클럽에 연수보내 선진축구를 익히도록 한다. 최근에는 이탈리아 세리에A에 진출해 첫 골을 넣은 선수도 등장했다. 각종 국제대회 유치 움직임도 보인다.  게 결정적이었다. 주목해야 할 또다른 변화는 북측이 스포츠 이벤트를 남북관계 회복을 위한 디딤돌로 삼으려 한다는 점이다. 이미 지난 2월 중국 심양에서 열린 6·15공동선언실천 남·북·해외 연석회의는 스포츠 대회를 통한 남북교류에 합의했다(여기). 

북측이 여자 아이스하키 대회에 선수단을 파견한 것이나 여자축구에 취재진 방북을 허용한 것 역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끊어진 남북관계를 복원하고자 하는 의지로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1년도 남지 않은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을 위해서라도 남측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기대해본다. 북한 붕괴만 기다리며 ‘통일대박’이라는 김칫국만 먹는 모습 지켜보는 것도 이젠 지겹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가 펴내는 <민족화해> 5~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