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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사해/한반도-동아시아

북한 50번도 넘게 방문한 평화학자가 말하는 남북관계 북미관계

by betulo 2016.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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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부터 해마다 거르지 않고 평양을 방문하는 노학자가 있다. 박한식(76) 조지아대학교 명예교수는 국내는 물론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북한 전문가다. 12월12일부터 열흘간 미국 애틀란타에 출장을 가게 되면서 박한식 교수를 꼭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하고 어렵게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조지아대학교는 숙소에서도 차로 1시간30분이 걸리는 곳에 있다. 힘들게 성사시켰고 먼 길을 찾아갔지만 고생한 보람은 있었다. 인터뷰가 이렇게 즐거웠던 건 근래 없던 일이다. 박 교수는 멀리서 찾아온 기자를 위해 시간을 충분히 할애해줬고, 덕분에 세시간 가까이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나중에 알고 보니 박 교수와 그렇게 긴 시간 동안 그렇게 많은 얘기를 나눈 사례가 흔치 않다고 한다.) 그는 경상도 억양을 약간 섞은 말투로 또박또박 한반도 평화정착과 남북통일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그는 “평화가 안보에 종속되면 안된다”고 강조하며 남북관계, 북미관계에서 발상의 전환을 강조해왔다. 다음은 일문일답.(서울신문 기사는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6010850035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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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오바마 정부 대북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나 자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열정적으로 지지한 사람이지만 한반도 정책에 대해서는 완전히 빵점이다. 쿠바와 수교한 것처럼 북미관계를 해결해야 하는데 미국을 알려면 군산복합체를 알아야 한다. 군산복합체가 미국을 지배한다. 돈이 미국을 움직이고 그 돈은 총칼에서 나온다. 그런데 미국이 20세기 들어 처음으로 이기지 못한 전쟁이 바로 한국전쟁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Korean conflict’라고 할 뿐 ‘War’란 표현 자체를 금기시했다. 북한은 미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냈다. 거기다 군산복합체로서는 북한이 무기 팔아먹기에 딱 좋은 알리바이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게 쉽지 않다.

 다만 변수가 있다면 오바마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기 전에 역사에 남는 외교적 업적을 남기기에 가장 좋은 대상이 바로 북미관계개선이라는 점이다. 나로서는 북한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맺고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대신 북한이 국제사회가 원하는 비핵화를 하기를 바란다. 다행히 오바마 대통령은 세계 차원의 비핵화를 주창한다. 그걸 위해서는 인도, 파키스탄,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스라엘, 북한 등이 동참해야 한다. 북한 협력을 이끌어내려면 북한이 자존심을 세우면서 국제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역할을 줘야 한다. 그걸 오바마 대통령이 주도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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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북미관계 개선을 위해 어느 정도 양보를 할 수 있다고 보나.

 -내가 보기에 북한은 북미 평화협정을 이루기 위한 상당한 준비가 돼 있다. 상당한 댓가를 치를 준비가 돼 있다. 핵포기까지도 할 수 있을 정도다. 핵포기라는 건 말 그대로 모든 ‘핵’을 포기한다는 의미다. 사실 북한으로서는 최악의 경우 다시 핵을 시작하면 몇 달만에 지금 수준으로 도달할 수 있다. 과학자들 기술자들도 다 있고 원료도 있다. 핵 무기를 만들겠다는 정신무장도 철저하다. 최근 수소 폭탄 얘기가 나왔다. 내가 그 분야 전공자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북한을 관찰한 걸로 보자면 빈말은 빈말은 아닌 것 같다. 결국 ‘전략적 인내’는 완벽한 실패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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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많은 이들은 북한이 조만간 붕괴할 걸로 본다.

 -북한 붕괴론이라는 생각틀에서 나온게 ‘전략적 인내’다. 북한은 내가 보기엔 ‘절대’ 망하지 않는다. 어떤 정치체제도 단순히 경제적으로 어렵고 굶어서 망하는게 아니다. 정통성이 없어야 망한다. 북한 정권의 정통성은 경제성장에 있지 않다. 그런 면에서 종교적 성격도 있다. 김일성 주체종교가 지배하는 국가이고 끊임없이 찬송가를 만들어내는 체제다. 끊임없이 환상을 만들어낸다. 그 환상이 공고하다. 환상 속에서 살기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 살고 있으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국가라고 믿지 않나.

 그렇다곤 하더라도, 북한도 현재 경제성장에 목매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이념적으로 투철해도 배고프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김정은은 어떻게 하든지 국민들의 의식주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투철하다. 평양을 가보면 시장이 갈수록 활성화되고 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만 보면 안된다. 평양을 갈 때마다 모란봉을 자주 찾는데 몇 년전에 처음으로 입장료를 내라고 하더라. 시에서 공원 관리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입장료를 내라고 하는 것이다. 돈을 내야 한다고 단순하게 시장경제 활성화라고 속단하면 안된다. 현재 북한의 변화 흐름은 국가정책 속에서 나타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은 어떻게 보나.

 -통일을 하겠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목적이 좋으니까. 문제는 목표를 위한 수단과 방법이다. 그게 정책이다. 박근혜 정부는 그게 부족하다. 목표설정은 있는데 방법론이 없다. 통일을 원한다면, 북한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줘야 한다. 김씨 왕정을 하고 있다는게 북한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잘잘못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다. 현실을 현실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있는 그대로 평가해야 한다. 그런 태도가 없으면 평화통일이 안된다. 전제왕정인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UAE)와도 잘 지내지 않나.


 8월 남북 당국간 판문점 합의가 전환점이 될 수 있을까.

 -전쟁이 일어날 뻔한 엄중한 상황이었다. 평양은 끝까지 사과할 생각이 없었다. 서울에서 유감을 사과로 인정하는걸로 방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전쟁이 날 수도 있었다. 북한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북에서 절대 사과하지 않을 거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북한에 판정패했다. 북한은 과거 미국 시민권자 2명 밀입국 문제에 대해 미국에 사과를 요구했다. 내가 북한 요구를 힐러리 클린던 당시 미 국무장관에게 전달했다. 결국 클린턴 장관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이른바 ‘햇볕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미국식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노련한 정치인이었다. 그 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박정희 전 대통령과 다르다. 북한에선 햇볕정책이 북한식 사회주의 옷을 스스로 벗게 만들게 하려는 것이라고 보는데 그건 일리가 있다. 햇볕을 쬔다고 북한이 자본주의 민주주의 국가가 될 거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 북중관계가 예전같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중국에게 북한은 사회주의 혈맹이다. 중국은 결코 북한을 버리지 않는다.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유일한 핵국가로 군림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북한이 핵을 가지는 걸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북한이 핵국가가 된다고 해서 중국에 안보위협이 될 리는 없다. 중국은 한국 정부가 생각하는 것처럼 북한을 비핵화하겠다는 의지가 크지 않다. 중국이 내세우는 ‘중국식 사회주의’는 시대에 따라 맥락이 차이가 있다. 덩샤오핑은 사회주의에 방점이 있었다면 시진핑 체제에서는 사실상 ‘유교식 사회주의’다. 유교식이란 걸 북중관계에서 대입해보면 외교정책에서 맥락을 읽을 수 있다.


 평화학자로서 생각하는 통일의 원칙은 무엇인가.

 -많은 분들이 민족동질성을 되찾아야 한다는 얘길 한다. 내 경험상 민족동질성 회복은 불가능한 목표다. 그런 식으로는 통일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무엇보다도, 회복해야 할 동질성이란게 도대체 무엇인가. 남북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현실은 현실대로 인정해야 한다. 두번째로, 평화를 안보라는 문법으로 접근하면 안된다. 평화정책이 안보정책에 종속되면 안된다. 평화는 지배가 아니라 조화다. 지배하려고 하면 분쟁과 갈등이 생긴다. 지배를 통해 평화를 이룬다는 건 불가능한 목표다.


 더 시급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는 ‘우리는 어떤 나라를 원하는가’이다.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남북은 과연 반드시 통일해야 할까? 통일을 하지 않더라도 갈등과 대립없이 ‘이웃’으로서 각자 잘 살면 그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과연 그게 가능할까? 지금 남북관계는 바둑으로 치면 정석이 아니라 줄바둑이라고 할 수 있다. 포석이 없다. 그나마 북한은 수십년간 남북관계만 다루는 전문가 집단을 보유하고 있다. 유단자다. 그에 비해 한국은 바둑 두는 선수가 해마다 바뀐다. 실력이 늘 수가 없다.

 김정은은 만나 봤나. 북한을 방문하면 누구를 주로 만나나.
-김일성과 김정일은 같은 자리에서 얼굴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김정은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다음 방문에는 김정은을 만나 보길 희망한다. 김양건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는 북한을 찾을 때마다 많은 대화를 나눈다.(김양건 비서는 최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최근 은퇴식을 했다.(여기를 참조)
 -올해는 내게 특별한 해다. 미국에 온지 50년이 됐다. 올해 4월엔 금혼식을 했다. 며칠 전에는 은퇴식도 했다. 이번 학기 마지막 강의가 평화학이었다. 강의 내용을 책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사람으로서 한반도 문제를 집념을 갖고 연구해왔다. 1990년부터 올해까지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방문을 해서 계속 북한을 관찰했다. 통계로는 눈에 안보이는게 눈에 보인다. 언젠가 내 경험과 고민을 한반도 청년들과 나누고 싶다. 서울과 평양에 평화대학을 만들고 싶다는 희망이 있다.


카터-덩샤오핑-황장엽-김양건으로 이어진 드라마같은 인연

6단계 법칙이란게 있다. 세상 모든 사람은 여섯 단계를 거치기 전에 서로 연결된다는 법칙이다.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북한 전문가인 박한식(75) 미국 조지아대학교 명예교수가 북한과 인연을 맺게 된 과정이 딱 그렇다. 박 교수가 가르치던 학생을 통해 지미 카터, 카터를 통해 덩샤오핑, 덩샤오핑을 통해 황장엽으로 이어지며 북한과 인연이 닿았다. 그렇게 이어진 인연을 바탕으로 박 교수는 미국 정부에 대북정책을 조언하고, 북미관계에서 보이지 않는 가교 구실을 해왔다. 

 박 교수는 미네소타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71년 조지아대 국제관계학 교수로 임용됐다. 박 교수가 가르친 학생 한 명이 알고보니 당시 지미 카터 조지아 주지사와 해군사관학교 시절 같은 방을 썼던 절친한 친구였다. 박 교수는 그 즈음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다룬 논문을 썼고 마침 그 문제를 고민하던 카터 주지사와 만나게 됐다. 카터 주지사가 미국 대통령이 된 뒤에는 카터 전 대통령과 인연으로 1979년 미국을 방문한 덩샤오핑을 만날 수 있었다.

 박 교수는 덩샤오핑에게 자신이 하얼빈에서 태어났으며 지금도 그 곳에 친척이 있다는 얘길 했다. 덩샤오핑이 박 교수를 초청해 1981년 고향을 방문할 수 있었다. “베이징에서 스무시간도 넘게 기차를 타고 하얼빈에 도착했습니다. 기차역에 내렸더니 큰 현수막이 걸려있고 군악대가 연주를 해줘요. 덩샤오핑 초청이라고 칙사대접을 해준 겁니다. 고모 집에서 머물려고 했는데 하얼빈 관계자들이 제발 첫날은 영빈관에서 묵어 달라고 사정을 하더라고요.”

 정치철학을 전공한 박 교수는 주체사상을 연구하고 싶어했다. 황장엽에게 편지를 썼고 중국이 다리를 놔 줬다. 황장엽 초청으로 중국 방문길에 북한도 방문해서 2주간 체류했다. 이후 1991년부터 1996년까지는 황장엽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1997년 황장엽이 탈북한 이후로도 북한과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50차례도 넘게 북한을 방문하며 쌓은 현장경험과 인맥을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정착과 남북관계, 북미관계 개선에 노력해 왔다.

 박 교수는 1946년부터 1948년까지는 평양에서 살다가 이후 서울로 넘어왔다. 그는 “어린 시절 국공내전을 겪었다. 총알이 모자라 낫이나 칼로 사람을 죽이는 걸 목격했다”면서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그나마 만주에선 비행기는 없었는데 귀국하고 나선 미군 비행기가 폭격하는 걸 처음 봤다. 죽을 고비도 여러번 넘겼다”고 회상했다.

 정치철학과 평화학을 연구해온 박 교수는 강의와 연구, 공익사업 세 항목에서 모두 높은 평가를 받아 2002년 조지아대 종신교수가 됐다. 그는 올해를 끝으로 44년간 재직한 학교에서 퇴임했다. 박 교수는 현재 조지아 주에서 백인 대학 3곳(조지아대·조지아주립대·에모리대)과 흑인 대학 3곳(모어하우스대·스펠맨대·클라크 애틀랜타대) 학생들로 이뤄진 연구 재단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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