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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

에이즈, 편견이 더 아프다

by betulo 2015.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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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1월20일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을 위한 공청회 장소를 점거하며 난동을 부린 사람들이 있었다.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명분으로 공청회장을 점거하고 결국 무산시킨 이들이 외친 구호는 “에이즈 싫어! 에이즈 싫어!”였다. 인권헌장에 포함될 예정이었던 ‘성소수자 차별 금지 조항’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2010년에는 ‘바른 성문화를 위한 전국 연합’(이후 ‘바성연’)이라는 단체가 “‘인생은 아름다워’ 보고 게이된 내 아들 에이즈로 죽으면 SBS 책임져라”라며 방송 드라마를 비난하는 신문 광고를 내기도 했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이들에게는 ‘동성애=에이즈=죽음=죄악’이 공식처럼 돼 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사례들은 한국 사회에서 후천성면역결핍증, 이른바 에이즈(AIDS)라는 질병이 거부감과 터부를 상징하는 낙인이라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의미 말고도, 21세기에도 여전히 너무나 많은 의학 ‘미신’이 횡행하는걸 보여준다는 의미도 있다. 의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에이즈는 간염이나 고혈압과 다를 게 없다. 모두 질병 이상도 아니고 이하도 아니다. 더구나 항바이러스 치료법만 잘 받으면 관리가 가능한 ‘만성질환’이다.

 에이즈는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돼 신체 면역 체계가 일정 수준 이하로 손상되어 생기는 질환을 가리킨다. HIV 감염은 성정체성에 관계없이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 혈액, 모유 수유 등을 통해 전파가 가능하다. 여기서 말하는 ‘안전한 성’에 대해서는 세계보건기구(WHO)가 명확한 범주를 제시한 바 있다. 첫째, 평생 동안 금욕하기, 둘째 이성애든 동성애든 평생 동안 상호 유일한 성적 배우자와 성행위, 셋째 성기를 사용하지 않는 성행위, 넷째, 콘돔이나 페미돔을 사용하는 모든 성행위 등이다. 이성애나 동성애는 적어도 안전한 성생활과 상관이 없다.

 HIV가 1981년 6월 미국 질병관리센터에서 치명적인 폐렴 환자 다섯명을 보고하면서부터다. 이들은 모두 남성 동성애자들이었다. 초기 발표된 사례가 대부분 남성 동성애자들이다 보니 에이즈가 동성애로 인한 성병이란 뿌리깊은 선입견을 얻게 됐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를 연상시키는 담론도 횡행했다. 세기말 분위기와 결합해 개신교에선 ‘신이 문란한 성생활에 벌을 내리는 것이다’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사실 전세계 에이즈 환자 절반 이상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살고, 이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여성 환자다.

2006년 현재 전 세계 HIV 감염자의 지역적 분포. ⓒ세계보건기구


 에이즈는 악수나 포옹, 키스 등으로는 감염될 수 없다. 물론 구강에 상처가 있다면 위험할 수 있다. 초기에는 피임기구를 사용하지 않는 성관계 떄문에 전염되는 경로만 널리 알려졌지만 실제 최초에는 수혈 등으로 혈액을 통해 감염되는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이후 수혈용 혈액에 대한 HIV검사를 하고 병원에서 주사바늘을 일회용으로만 쓰다보니 혈액을 통한 감염은 거의 사라졌다. 그러다보니 성관계를 통한 감염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것이 다시 오해를 키운다.

 에이즈는 동물에서 인간으로 옮겨와 돌연변이를 일으킨 병이다. 원인에 대해 가장 가능성이 높은 설명은 아프리카 원주민 사냥꾼들이 HIV 바이러스에 감염된 원숭이를 사냥후 해체작업을 하다 노출되었을 것이다. 에이즈 원인에 대해서는 음모론도 있다. 바로 미국 국방부가 세균전을 위해 HIV 바이러스를 개발했으며, 이를 아프리카에서 실험하다 일이 잘못돼 유출되는 바람에 에이즈가 퍼지게 됐다는 것이다. 냉전시대에 꽤 유행한 음모론이었지만, 반미여론을 높이기 위해 소련에서 퍼뜨린 역정보라는 설명도 있다.

 에이즈 증상은 무증상부터 기회감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기회감염이란 건강한 사람에게는 감염증을 일으키지 않는 미생물이 면역기능이 저하된 사람에게서 심각한 감염증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HIV 감염 초기에는 체중 감소, 발열, 전신 피로 등 비특이적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시간이 경과하여 말기가 되면 면역 체계가 손상되어 정상인에게서는 잘 나타나지 않은 감염과 악성 종양이 발생한다. 대체로 1단계는 급성 HIV 증후군, 2단계는 무증상기, 3단계는 증상기로 구분한다. 눈여겨 볼 대목은 아무 증상이 없는 무증상기가 아무 치료를 하지 않아도 대개 8~10년이나 된다는 점이다.

 물론 아직까지 HIV 감염인들이 복용하는 AIDS 치료제는 완치제는 아니며 HIV의 증식을 억제해 질병의 진행을 지연시키는 약이다. 약물에 내성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항 HIV 치료 시 일반적으로 3가지 종류의 약을 동시에 사용하는 칵테일 요법을 사용한다. 항레트로바이러스제는 한 번 복용을 시작하면 평생을 먹어야 하는 약으로 복용법을 95% 이상 정확히 지켜 복용하기만 한다면 HIV 감염인의 수명을 30년 이상 연장시켜 AIDS를 만성질환으로 변화시킨다. 예전에는 먹어야 하는 약도 많고 부작용도 심했지만 최근에는 하루에 한 번, 한 알 투약이 가능한 복합제도 있다.

 에이즈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크다는 것은 보건당국도 고민스러워하는 점이다. 무엇보다 잘못된 상식이 질병 예방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WHO는 해마다 12월 1일을 ‘세계 에이즈의 날’로 지정해 에이즈의 심각성과 예방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펴낸 ‘문답으로 알아보는 에이즈 상식’은 특히 HIV와 에이즈가 동의어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HIV 감염인이란 HIV에 걸린 모든 사람을 말하며 이 중에서 질병 진행으로 면역체계가 손상, 저하됐거나 감염증, 암 등의 질병이 나타난 사람을 에이즈 환자라고 부른다는 것이다.(연합뉴스 기사)

 HIV 감염 여부는 보건소에서 익명으로 혈액검사를 통해 진단할 수 있다. 선별 검사에서 양성이 나오면 감염을 확실히 판단하기 위해 확진검사를 실시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건환경연구원과 질병관리본부에서만 이를 시행한다. 정부에서는 에이즈에 대해 홍보 및 예방 교육을 하고 있으며, 조기 발견을 위해 익명인 검사를 활성화 하고 있다. 감염인이 발생하였을 경우 에이즈 관련 진료비 지원과 상담 사업 등도 하고 있다. 그런 여러가지 사정을 고려하면 에이즈 환자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질환 그 자체보다도 ‘편견과 비난’이 아닐까 싶다. 2012년 기준 국내 HIV/AIDS 감염자는 모두 7788명이었다.

서울신문 2015년 2월16일자에 실린 글을 수정 보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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