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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생각

국회예산정책처 무뎌진 칼날, 원인은?

by betulo 2014.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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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에 관심있는 사람치고 국회예산정책처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국회예산처에서 나오는 각종 보고서는 예산문제를 연구하고 기사를 쓰기 위해서 반드시 뒤져봐야 하는 필수코스다. 나 개인으로 말하자면 지금도 '2006년도 에산안분석보고서'를 읽을 때 느꼈던 전율을 잊지 못한다. 1000쪽 가까운 책을 줄을 그어 가며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서 예산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했다. 그렇게 생긴 관심과 애정이 있기에 아래 글이 가능했다. 국회예산처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아래 비판기사를 띄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04년 문을 연 뒤 해마다 수백권에 이르는 분석보고서를 통해 학계와 시민단체 등에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특히 대표적인 히트상품은 ‘예산안 분석보고서’와 ‘결산분석보고서’ 시리즈라고 할 수 있다. 두툼한 두 권짜리로 시작해 이제는 열 권이 넘게 나오는 이 보고서는 각종 국가정책에 대한 심층분석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정부부처를 진땀 빼게 만드는 ‘홈런’도 여러 건이었다.


 그 중에서도 2009년 2월 당시 내놓은 한 논문은 2008년 세제 개편안에 따른 감세 규모가 정부 발표인 5년간 35조원이 아니라 96조원이라고 지적해 기획재정부가 감세 규모를 적게 보이도록 사용한 ‘꼼수’를 폭로했다. 


  이 논문을 계기로 국회예산처와 기재부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고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거론되기도 했다. 결국 정부는 국회예산처가 맞다고 슬그머니 인정했다. 그 해 이명박 정부가 미디어법을 날치기 통과할 당시엔 대통령까지 나서서 강조했던 “2만 6000개 일자리 창출”이 근거 없다는 걸 입증하면서 정부를 발칵 뒤집어놓기도 했다.



 그랬던 국회예산처를 두고 요즘 “예전같지 않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비판은 크게 “분량은 늘어나는데 심층성은 오히려 떨어졌다”는 것과 “국가정책의 줄기는 놔둔 채 잔가지만 건드린다”는 것으로 수렴된다.


  ‘깊이와 날카로움’ 지적 뒤끝에 항상 등장하는 존재가 있다. 바로 ‘입법고시 출신’이다. 한 전직 국회예산처 관계자 A씨 표현을 빌리면 “입법고시 출신들이 국회예산처를 주도하기 시작하면서 예리함과 심층성이 모두 나빠졌다”는 것이다.


 “국회예산처는 입법고시 출신과 계약직 박사들으로 구성돼 있다. 설립 초기엔 박사들이 주도했다. 국회 소속으로서 독립성 있는 연구조직이라는 사명감과 사부심이 강했다. 심층분석을 통해 국회 전문위원실과 차별성을 보여주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그런데 요새는 국회 전문위원실 관계자한테서 ‘우리가 내는 보고서랑 다른게 뭐냐’며 불만을 제기하는 걸 들은 적도 있다. 국회예산처의 존립기반이 무너지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A씨는 “입법고시 출신은 위에서 고치라고 시키면 논지 바꾸는 일이 잦다. 반면 계약직 박사들은 자존심도 있고 승진욕심도 없기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A씨에 따르면 어떤 분석관은 4대강 사업을 긍정적으로 요약하라는 실장 지시를 거부해 상당한 신경전이 벌어진 적이 있다. 


  또다른 분석관은 이념이 다르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간부들한테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자존심을 지키기도 했다. 그는 국회예산처가 스스로 독립성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뼈아픈 비판을 덧붙였다.


 이 주장에 대해 국회예산처 내부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상관관계는 있겠지만 인과관계는 없다”고 반박했다. B씨는 먼저 “국회예산처가 무뎌졌다는 지적은 새겨듣고 반성해야 한다”면서도 “국회예산처에서 입법관료 비중이 초창기보다 좀 늘어난 건 사실이지만 갈등을 일으킬만한 정도는 전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업무는 급증하고 일은 고되다보니 이직하는 계약직 박사들을 메꾸기가 만만치 않다보니 일단 그 자리를 입법관료가 채울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바깥에서 보기엔 입법관료들이 국회예산처를 장악해가는 것처럼 보일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B씨가 보기엔 입법관료들 증가보다도 국회예산처가 직면한 더 중요한 문제는 업무과다로 인한 인력유출 그리고 심층분석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만기친람형 감액의견 보고서 생산”라고 할 수 있다. C씨도 비슷한 진단을 내렸다. 그는 “대체로 2010년을 전환점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그 전까지는 여러 정부부처에 걸쳐 있는 거시적인 사안을 치밀하게 분석하는 방향을 중시했고 그러다보니 다루는 사업 자체는 적었다”면서 “대체로 2010년쯤부터 국회예산처가 정부에 영향력을 키우려면 감액의견을 많이 내야 한다는 방침에 따라 예산안분석보고서가 미시분석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자체분석보다는 의원실 의정활동지원을 대폭강화했다. 이는 곧 심층성 약화로 이어졌다.


 질보다 양, 깊이보단 영향력을 추구하는 노선변화는 곧 정부부처와 갈등을 회피하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C씨는 “정부 눈치를 보느라 그렇게 된게 아니라 세세한 지적을 많이 하려니까 분량은 늘어나고 심층분석은 약해졌고, 그러다보니 정부부처에 뼈아픈 보고서가 예전만큼 못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입법관료들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주장은 ‘계약직 박사들은 다르다’는 걸 입증해야 하는데 분량 채우기에 급급한건 박사들이라고 다를 게 없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설립 10년을 맞은 국회예산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감액의견을 제시하고 실제 예산삭감으로 이어지면서 존재감은 커졌지만 고유한 색깔은 옅어진다. 이는 독립성에 대한 고전으로 이어진다. 비판정신은 약해졌지만 정부여당이 보기엔 여전히 껄끄럽기 때문에 시시때때로 견제가 들어온다.


  절박한 과제인 인력충원도 쉽지 않다. C씨는 “너희가 왜 보도자료를 내느냐는 여당 의원들 지적 때문에 보고서 발간 사실을 알리는 보도자료도 못 만들 정도”라고 털어놨다. 새누리당 유성걸 의원은 국회예산처가 사업평가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D씨는 “간부들 사이에서도 그 문제를 두고 토론이 이어지고 있으며 조금씩 심층성 강화로 바뀌는 것도 사실”이라면서 “독립적인, 깊이있는 보고서를 생산하는 독립기관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임성근 한국행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최근 한 보고서에서 “국회예산처 인력 중 5급 이상이 74%나 되는데도 국회예산정책처법 제6조는 5급 이상 인사권을 처장이 아닌 국회의장에게 부여했다”면서 “이는 독립성을 존중하도록 한 법취지와 상충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업평가국에 대해서도 “감사원과 같은 조직이 국회에 없기 때문에 국회가 국정감사를 실시할 때 사업평가국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회예산처가 직면한 다양한 도전이 입법관료들 때문이라고 보는건 근거가 약하다. 그럼에도 “이게 다 너희들 때문이야”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것은 국회사무처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D씨는 주장한다.


  그는 “계약직이나 연구직은 기본적으로 연구자로서 정체성이 강한 반면 입법관료들은 기본적으로 국회사무처 소속 공무원”이라면서 “국회사무처가 제대로 된 공적 감시는 받지 않으면서 확대된 권한은 누리려고 하니까 자연스럽게 입법관료들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직 보좌관 E씨는 “국회사무처는 자기들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꽁꽁 감추려 드는 비밀주의 행태로 예전부터 악명이 높다”면서 “국회개혁특별위원회 소속 의원실에서 국회사무처 자료를 얻기 위해 몇 개월 동안 싸워야 했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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