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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생각

충주호 화재사고 20년, 소방인력 없이 안전관리 없다

by betulo 2014.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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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주호를 운행하던 유람선이 불구덩이가 되는데 걸리는데 30분도 걸리지 않았다고 했다. 사망자 29명을 포함해 63명이나 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충주호 수상안전관리는 과연 얼마나 발전했을까.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사회 각 분야 안전관리 실태를 점검하는 차원에서 충주호를 다녀왔다.  


 그날 유람선에 탔다가 사고를 당한 승객 상당수는 단체관광을 온 노인들이었다는 얘길 할 때 전승룡씨 눈빛은 순간 흔들렸다. 기관사인 그는 충주호에서만 25년을 배를 몰았다. 그런 그에게도 20년 전 유람선 화재사고는 그저 오래된 얘기라고 하기엔 너무 큰 사고였다.


 그는 1997년 충주호 수난구조대 창설과 함께 기관사로 특별채용됐다. 수난구조대 사무실에서 호수 맞은편을 바라보면 관광선 여러 척이 정박해 있는 선착장이 한 눈에 보였다. 유람선 화재 사고 당시 그는 사고를 낸 유람선이 속한 회사에서 기관장으로 일했다.


 사고 책임을 지고 구속된 선장과 갑판장 등은 모두 그가 알고 지내던 사람이었다. 그는 “정원초과 때문이라는 얘길 많이 하지만 사실 사고 당시는 성수기라 정원 기준이 141명이었다”면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도 결국 정확한 원인을 밝혀내질 못했다”고 회상했다. 뒤이어 무심한 듯 말했다. “그래도 책임은 져야죠.”


 충주호 수난구조대는 대장을 포함해 10명이 일한다. 항해사, 기관사, 구조대원 3명이 한 조가 돼 3교대로 근무한다. 김정식 대장은 근무순번을 “주간 근무(오전 9시~오후 6시) 이틀, 야간 근무(오후 6시~오전 9시) 이틀, 비번 이틀 일한다”면서 “주주야야비비”라고 설명했다. 비번이라 해도 언제든 구조대에 집합할 수 있어야 한다.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상황이 발생하면 근무자 3명은 즉시 고속구조보트를 타고 출동한다. 뒤따라 비번자들이 고속구조보트와 제트스키, 소방정 등을 타고 충주소방서 소방관들이 도착할 때까지 인명구조와 화재진압을 하도록 돼 있다. 이호천 항해사는 “팀웍이 중요하다”면서 “솔직히 식구들보다 대원들이 더 친하다”고 말했다. 1년에 50번 가량 출동한다. 김 대장은 “어제도 목격자 신고를 받고 출동해 자살로 추정되는 50대 후반 남성 사체를 인양했다”고 전했다.



수난구조대가 보유한 고속구조보트 모습.


충주소방서 수난구조대 화재진압훈련 모습. 지금 인력으로는 훈련장면을 상황발생시 구현하기가 쉽지 않다.


 수난구조대는 외진 곳에 위치해 있다. 밥도 직접 지어 먹어야 한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인력충원이다. 대원들이 아무리 최선을 다하더라도 이들은 수퍼맨이 아니다. 충분한 인력이 없다면 시민안전은 공염불이다. 초등대응에서 핵심인 고속구조보트만 해도 항해사는 키를 잡고 있어야 하고 기관사는 기관을 살피면서 인명구조를 거든다. 초동대응으로 인명구조를 할 수 있는 인력은 1.5명에 불과하다.


 소방정은 인명구조와 화재진압을 동시에 할 수 있다. 1분에 3000리터를 분사할 수 있는 화재진압장비 2개를 갖췄다. 하지만 전체 10명 중에서 먼저 출동한 3명을 빼고 고속구조보트 3명을 빼고나면 승선인원 16명인 소방정에 탑승할 수 있는 대원은 4명에 불과하다. 한 대원은 “처음 수난구조대 창설을 준비할 때는 18명이 근무하는 방식으로 하려고 했는데 예산부족을 이유로 9명으로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인력부족은 수난구조대한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충주시는 국내 최대 담수면적(90.5㎢)과 거리(53㎞), 거기다 관광선까지 운행하는 충주호가 있는데도 수상레저 안전관리를 담당하는 직원이 한 명 뿐이다. 윤영희 주무관은 3년간 항해사로 상선을 탄 경력이 있는 그는 세월호 침몰 이후 현장점검에 각종 회의에 서류작업에 시달리느라 업무량이 말그대로 ‘폭주’했다.


 소방방재청 재난대비과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내수면 선박 관리는 1차적으로 지방자치단체 소관이지만 5t 이상 88척은 안전검사 등은 소방방재청 소관이다. 그 모든 걸 소방방재청에서 유일한 해양수산직 주무관이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 취재를 위해 전화통화를 할 때마다 그는 다른 기관과 회의를 하고 있었다. 낮에는 회의하고 밤에는 상부에 제출할 서류작업을 하기는 소방방재청이나 충주시, 수난구조대 모두 동병상련이었다.


안전담당 인력도 없이 무슨 수로 안전을...

 인력충원이 안되는데 장비교체를 위한 예산배정이라고 사정이 좋을 수가 없다. 충주호를 운행하는 소방정은 1997년 진수했다. 곧 선령 20년에 도달한다. 수난구조대에서 38㎞ 떨어진 장회나루까지최고속도인 18노트(약 33㎞)로 달려도 68분이나 걸린다. 게다가 최고속도 자체가 소방정을 처음 진수했을때 기준이다. 고속구조보트를 도입한 것도 속력 문제 때문이었다. 가장 빠른 제트스키(54노트)도 장회나루까지 23분이 걸린다.


 공공기관 행정선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충주시 소속 충북507호는 1998년 건조했다. 심지어 충주경찰서 소속 순찰정인 충북102호는 1987년 건조했다. 27년으로 세월호보다도 오래됐다. 


 내수면 선박에 대한 법규정도 미비해서 제도정비가 시급하다. 충주호에서는 항로지도가 없어 유람선 운영회사인 충주호관광선이 자체적으로 항로지도를 만들어 사용하는 실정이다.


 소방방재청에선 “선령 20년, 10년간 별도 검사”로 규정한 해운법 선령조항이 내수면선박에도 적용된다는 입장이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내수면선박 선령은 해운법 규정에 준한다. 다시 말해 이명박 정부에서 세월호 선령규제를 완화한 악영향이 내수면선박에도 나타난 셈이다.


선령규정 자체에 대한 논란도 존재한다. 소방방재청 입장과 달리 일부 전문가들은 “해운법은 바다를 운항하는 선박에 적용되는 것으로 내수면선박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 지적에 따를 경우 내수면선박에 대해서는 선령규제조차 없는 것이 된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바닷물과 달리 내수면선박은 부식 정도가 덜하기 때문에 오래 쓸 수는 있다”면서 “해운법 규정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형평성이 맞지 않는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선령 규정 자체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솔직히 말해서 내수면선박에 대한 선령을 50년이건 100년이건 규정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1986년 만든 배가 지금도 유람선으로

 선령 규제완화는 충주호를 운항하는 유람선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재향군인회가 대주주인 중앙고속이 운영하는 충주호관광선은 1994년 화재사고 이후 나름대로 기관실에 CCTV를 설치하는 등 자체적인 안전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관광선 진수일을 보면 안전관리에 심각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1994년 화재사고 당시에 운행하던 관광선이 지금도 운행중이었다.


 20년 전인 1994년 충주호 유람선 화재사고 당시에도 운행하던 유람선이 지금도 관광객을 태우고 있다. 유람선인 충주1호와 충주2호는 1986년 진수했고, 충주6호와 단양1호, 청풍1호는 1987년 진수했다. 충주8호는 1990년 진수했고 가장 최신 선박인 충주9호조차 1993년 진수했다.


게다가 내수면선박에 대해서는 선박안전을 총괄하는 법규정도 불분명하고 항로지도는 물론 기본적인 통계자료조차 갖춰지지 않고 있었다.



충주호관광선 선착장 모습.



안전을 원한다면, 인력과 예산확대에 투자하자

 기자가 충주호 선착장을 찾았을때 관광선 인근에는 인적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부정기로 운행하는 관광선은 세월호 침몰 사고 이전까진 주말이면 500~600명이 승선했고 주중에도 하루 서너번은 운행을 했다. 하지만 요즘은 주중에는 찾는 사람이 없어 운행을 거의 못한다. 대략 예전보다 70% 가량 손님이 줄었다. 충주호관광선에선 2012년부터 매각을 진행중이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충북 내륙에 위치한 충주호는 예전부터 경치가 빼어나서 관광객들에게 사랑을 받는 곳이다. 호수가 워낙 커서 유람선 사업이 나름대로 사업성을 가질 수 있는 조건도 갖췄다. 하지만 안전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는게 엄연한 현실이었다. 안전규제는 평시에는 ‘손톱 밑 가시’나 ‘전봇대’ 소리를 듣기 딱 좋다.


 얼핏 스쳐가며 보면 수난구조대나 소방서는 하는 일 없이 노는 것처럼 보이고 예산낭비처럼 느껴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위기가 닥치면 제일 먼저 찾는게 소방인력이고 안전규제일 수밖에 없다. 20년 전 사고를 떠올리며 안전관리에 예산과 인력을 쓰는게 투자인지 낭비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충주호 유람선 화재사고란

 20년 전인 1994년 10월 24일 충주호를 운행하던 유람선에 불이 났다. 엔진과열이 원인인 것으로 추정하지만 확실하진 않다. 전국에서 단풍놀이를 위해 충주호를 찾은 단체관광객들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여 참사를 당했다. 29명이 죽는 등 63명이나 되는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이날 오후 4시20분쯤 이모(41)씨가 최초 신고를 하자 단양소방파출소와 제천소방서에서 출동했다. 하지만 사고현장 진입로가 좁은데다, 도로에서 유람선까지 경사로와 늪지대를 지나야 했다. 소방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54t이나 되는 유람선 전체에 불이 번져 초동진압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물살 때문에 유람선이 충주호 반대편으로 밀려가는 바람에 소방차를 다시 호수 건너편으로 이동시키고 120m에 걸쳐 소방호스를 연결하느라 너무 많이 시간을 허비할 수밖에 없었다. 사고 현장이 소방서와 너무 멀어서 유·무선 통신도 원활하지 못해 상황파악과 후속조치가 미흡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충주호에는 화재진압과 인명구조를 수행할 수 있는 선박이 하나도 없었다. 유람선 화재사고를 계기로 국회는 1995년 7월 수난구호법을 개정해 내수면 수난구호업무를 소방서장이 담당하도록 했다. 그런 와중에 1995년 9월에는 선착장에 정박중이던 관광선에 불이나 4억 5000만원에 이르는 재산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35t 규모 소방정을 갖춘 충주소방서 수난구조대가 발족한 것은 1997년이었다.



서울신문에서 촬영한 사고 당시 유람선 잔해 모습.


출처: 보도사진연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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