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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

권한 없는 현장 공무원, 현장 모르는 고위 공무원

by betulo 2014.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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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체를 이끌어야 할 자들은 제일 먼저 탈출했다. 규칙을 준수했던 학생들은 비극을 당했다. 참사를 수습해야 할 책임이 있는 윗분들은 심각한 무능력과 무책임, 거기다 무신경까지 드러냈다. 그 중심에는 뒷짐만 지고 현장을 장악하지 못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가 있었다.



매뉴얼이 없는 건 아니다. 정부는 이미 지진·산불 등 유형별로 200개 가까운 실무매뉴얼과 3000개가 넘는 행동매뉴얼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피라미드식으로 위계화돼 있다는 점에서 공무원 조직과 매뉴얼은 닮은꼴이다. 거기다 각종 매뉴얼은 양은 많고 복잡한데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도 못했다. 매뉴얼을 준수하도록 규제와 단속을 해야 할 해양수산부는 오히려 규제를 완화해줬다. 실제상황에 대비한 교육과 훈련은 지난해까지 관련 예산이 단 한 푼도 책정하지 않았다(여기를 참조).


행정안전부에서 안전행정부로 조직이 커지면서 안행부는 기존에 소방방재청이 맡던 인적재난까지 흡수했다. 하지만 세월호 사고 와중에 안행부가 주도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상황실에서 몇 명 구조했는지 숫자 세는 것조차 버거웠다.

 드라마 ‘아이리스’에 등장하는 상황실은 중대본 어디에도 없다. 현장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실시간 영상전송도 없었다. 16일 중대본 상황실에서도 국민들과 똑같이 TV 생방송만 들여다봐야 했다. 거기다 중대본 책임자 중에는 선박을 제대로 이해하는 전문가조차 없었다. 안행부는 높은 책임감과 성실함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탁상’ 행정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박근혜 정부가 자랑해온 재난대응시스템은 서류상으로만 그럴듯해 보일뿐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아이리스에 나오는 상황실 장면. 중대본 상황실은 이런 모습과는 딴판이다.


 실종자 가족들은 “누구 하나 대답해 주는 사람이 없다”고 정부를 성토한다. 사고 발생 초기는 물론이고 지금도 여전히 총괄조정과 지휘를 할 수 있는 ‘지도부’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최근 전남 진도 팽목항과 진도실내체육관을 둘러본 이동규 동아대 석당인재학부 교수는 “주도권을 쥐고 현장을 장악하고 지휘하는 주체가 없다”면서 “현장에서 지휘체계가 없으니 자원봉사자들 활동조정조차 제대로 안된다”고 지적했다.


 ‘일을 안하는 공무원’이란 관념은 사실 공무원을 비난하고 싶어하는 심리가 만들어낸 상상에 불과하다. 사회복지직 사례에서 보듯 대다수 공무원들은 일에 치여 산다. 그럼에도 공무원들은 국민들에게 비난받는다. 현장을 잘 아는 공무원에겐 실권이 없고 고위직들은 현장을 모른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연구기관 관계자는 “지금같은 순환근무방식으로는 탁상행정 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면서 “전문가를 양성하고 그들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공직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경기 화성군청 사회복지과 계장이었던 이장덕씨가 관내 청소년 수련시설이 안전에 취약하다는 이유로 설치허가를 1년 넘게 반려한 적이 있다. 갖은 압력과 협박에도 허가를 내주지 않자 군청에선 이씨를 좌천시키고 허가를 내줬다. 그리고 1년도 안돼 유치원생 19명을 비롯한 233명이 숨지는 씨랜드 화재사건이 발생했다. 존경받아야 할 공무원인 이씨는 조직내 따가운 시선을 견디다 못해 다음해 명예퇴직을 해야 했다. 그 분에게 조금이라도 더 실질적인 권한이 있었다면, 혹은 나중에라도 그런 분이 더 많은 권한을 부여받고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사회가 배려해줬다면 우리 사회는 좀 더 건강한 시스템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여기를 참조)

 

시사IN 기사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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