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구청에서 실시한 논술승진시험에 참여해봤다. (http://www.betulo.co.kr/2165)
문제는 다음과 같다.
‘큰 병이 들면 집안이 망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의료보험체계가 개선해야 될 점이 많다는 뜻입니다. 전 국민이 건강한 생활을 하기 위한 의료보험제도의 개선 방안 등을 주요 선진국의 사례와 비교하여 논술하세요.
아래는 당시 내가 제출한 답안지다. 퇴고할 시간도 없이 작성한 문장이라 여기저기 거칠기만 하다. 그래도 기록을 위해 답안지를 올려놓는다.
1. 저들의 현실, 우리의 미래
친누나가 미국 시카고에 거주하는 사람이 있다. 누나와 매형은 한국에 올 때마다 올케한테 건강보험증을 빌려서 병원 순례를 다닌다. 치과에 들러 스케일링을 하고 치아건강을 확인한다. 건강검진을 받는다. 답례처럼 누나가 귀국길에 사들고 오는 것은 언제나 각종 비타민제품이다. 미국은 대형매장에서 비교적 값싸게 구할 수 있는 비타민제품으로 넘쳐난다. 몇 해 전에는 누나 시부모가 한국에 몇 달간 다녀갔다. 역시 가까운 친척한테서 건강보험증을 빌렸다. 시어머니는 암 치료를 위해 몇 달간 입원했다. 시아버지는 그 동안 찜질방과 병원을 오가며 병간호를 했다.
이들이 한국 병원을 찾는 이유는 단 하나다. 동일한 진료나 수술을 미국에서 했다면 이들은 길바닥에 나앉을 수밖에 없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전재산을 다 팔아도 위암 수술비와 입원비, 각종 치료비를 감당하는게 불가능하다. 언젠가 누나는 식중독에 걸려서 시누이, 시어머니와 함께 이틀 가량 입원한 적이 있다. 1년이 지난 뒤에도 누나는 입원비 할부금을 다 갚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누나는 병원에서 조카들을 낳으면 하룻밤도 더 병원에서 지내지 않고 퇴원해 집으로 돌아온다. 하루 입원비조차 부담스럽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한다면 누나는 시카고 교외에서 사는 나름 중산층이다.
한 지인이 칠순을 맞은 부모님에게 효도관광을 시켜준다며 미국 여행을 보내드렸다. 그런데 그만 아버지가 미국에서 사고가 나서 입원을 하게 됐다. 어찌어찌 낫긴 했는데 퇴원을 못하게 됐다. 입원비가 수천만원이나 되는 바람에 퇴원수속을 밟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 지인은 주한미국대사관까지 찾아가 항의도 하고 사정도 하고 애걸복걸한 끝에 그나마 병원비 할인을 받아 부모를 한국으로 모실 수 있었다.
이건 그나마 약과다. 미국에 연수를 가게 된 한 기자는 미국 생활 초기 부상을 입어 앞니가 부러졌다. 치과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치료비가 한국에 비행기타고 가서 치과치료 받은 다음에 미국으로 돌아오는 모든 비용보다도 더 비쌌다. 그렇다고 1년 기한인 해외연수인데 치료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도 고민이었다. 결국 이 기자는 미국에서 지낸 1년 내내 앞니 없이 생활했다. 그가 귀국한 뒤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이 치과였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촛불집회가 계속되자 결국 영리병원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영리병원을 향한 욕심까지 버린 것은 아니다. 기획재정부는 시시때때로 영리병원을 위한 분위기를 돋우려 시도한다. 심지어 인천시나 제주도는 영리병원 도입을 위해 팔을 걷어붙여 빈축을 산다. 영리병원이 활성화되면 현행 국민건강보험제도가 무력화되고 이는 한국 의료체계가 미국식으로 개편된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현재 공공 보건의료의 지옥이라는 미국이 연방정부 차원에서 보건의료에 투입하는 예산 비중은 한국보다도 더 높은 수준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재정 대부분이 민간병원과 민간보험사 주머니에 들어간다는 점이 여타 선진국과 다른 점이다. 더구나 USA투데이 월드리포트가 2010년 보도한 내용을 보면 미국에서 가장 우수한 상위 10대 병원은 모두 비영리병원이라는 점이다.
버락 오바마가 공화당의 강력한 반대를 무릎쓰고 전국민 공공의료시스템을 도입하도록 제도를 개혁한 것은 더 이상 이런 식으로는 안된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와 일부 의료계와 민간보험 업계 등은 미국조차 빠져나오려고 하는 길을 가자고 국민들을 선동하고 있다. 국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부자와 빈자를 차별하는 비싸고 접근하기 어려운 의료시스템이 아니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권리로서 의료혜택을 누릴 수 있는 더 나은 국민건강보험 시스템이다.
2. ‘아프면 망한다’와 ‘아프면 고친다’
현재 한국의 공공의료 시스템은 미국과 비교해서는 훨씬 좋을지 모르지만 여타 국가들과 비교한다면 개선해야 할 점이 대단히 많다. 일단 OECD 평균과 비교해 20%p 가까이 차이가 나는 공공의료 비중부터 고쳐야 한다. 영국 복지국가 시스템을 파괴하는데 광분했던 대처 총리조차도 끝내 없애지 못한 NHS 시스템은 지금도 영국의 자랑으로 남아있다. 스웨덴은 개인이 부담해야 할 의료비 부담 상한선을 둠으로써 사실상 국가가 책임지는 무상의료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
스웨덴 영화 ‘밀레니엄’을 보면 주인공 살란데르가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는 장면이 나온다. 총상을 비롯해 심각한 중상을 입은 살란데르는 병원에서 전담 간호사와 의사의 간병을 받는다. 의사는 시시때때로 살란데르에게 찾아와 증상이 얼마나 호전됐는지 확인하고 대화를 나눈다. 특히나 이 의사가 잔업과 야근에 시달리지 않고 적절한 노동시간만 일하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피곤에 지친 의사한테서는 적절한 의료혜택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노릇이기 때문이다.
영화 밀레니엄 시리즈 여주인공 리스베트 살란데르와 주치의.
복지강국에서 의료인의 신분을 공무원 혹은 그에 준하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의사들이 신분상 불안정 없이 정규직으로 신분을 보장해주는 대신 의사들은 영리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의사들이 부자되기 경쟁 더 큰 병원장 되기 경쟁에서 벗어나 의사 본연의 ‘의사로서 자존감’과 ‘자부심’에 따라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밀레니엄’에서 살란데르를 치료하는 의사가 권력층의 회유를 단칼에 거부하고 환자에게만 집중하겠다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은 의료인에 대한 처우도 한 몫 했으리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 보건소나 국립병원에 속한 의료인이 극소수인데다 예산부족과 각종 행정사무에 시달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가 개혁해야 할 시스템의 방향성이 보인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선 ‘큰 병 들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이 있다. ‘큰 병에 효자없다’는 말도 있다. 중산층이라 하더라도 병원비로 인해 빈곤층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너무나 흔한 광경이라고 할 수 있다. ‘벼랑에 선 사람들’에서 우리는 생생한 의료빈곤층의 현실을 목격할 수 있다. 이로 인한 국가적 낭비를 생각한다면 우리가 생각해야 할 방향에 대한 분명한 단초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프면 망한다’는 사회에선 각자도생밖엔 길이 없지만 ‘아프면 고쳐준다’는 사회에선 ‘콩 한쪽도 나눠먹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3. 각자도생과 ‘콩 한쪽도 나눠먹기’
현재 의료영리화는 중요한 전제를 깔고 있다. 버는 만큼 돈을 내고 낸 만큼 의료보장을 받도록 하자는 것이다. 소수 부유층에게는 매력적일 수 있지만 국민 전체적인 차원에서 보면 사회공동체를 파괴하고 비효율을 심각하게 초래할 수밖에 없다. ‘각자도생’을 선택할 것인지 ‘콩 한쪽도 나눠먹을 것인지’ 선택은 결국 국민들의 몫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가 걸어온 각자도생 사회로 인한 양극화와 비정규직화, 청년실업, 공동체 파괴, 묻지마식 절망범죄 만연을 생각한다면 이제는 다른 사회 시스템을 고민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부담을 더 낸다는 자세 변화가 필요하다.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은 그런 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운동은 개인당 1만 1000원 건강보험금을 자발적으로 더 내자는 운동이다. 이를 통해 건강보험 보장성을 90%까지 확대하는 등 사실상 국가가 책임지는 공공의료를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자발적 증세, 보편적 증세를 선택한다면 그 혜택은 보편적인 복지혜택으로 우리에게 돌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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