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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꿈꾸는 미래 ‘마을공화국’

예산생각/지방재정

by betulo 2010. 4. 1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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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분권 자치, 그리고 민주주의
2004/7/23

군사독재시절 민주화운동은 중앙정부와 국가를 민주화하자는 것이었다. 이제 한국 시민사회는 주민소환제를 비롯한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포르투 알레그레 등 참여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는 외국 사례를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정옥 대구 가톨릭대 사회학 교수는 지방 참여민주의의 모범사례로 아르헨티나 캄포 데 헤레라,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 인도 케랄라를 지목했다. 캄포 데 헤레라는 마을 단위, 포르토 알레그레는 시 단위, 케랄라는 주 단위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주민이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해 예산을 함께 세우고 예산 집행 순서를 함께 결정하는 참여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곳들이다. 이 교수는 “문제는 높은 민주의식과 도덕성을 갖고 참여민주주의의 길을 여는 준비과정을 얼마나 치밀하고 장기적으로 해나가느냐”라고 역설했다.

이 교수는 참여민주주의 실험에 대한 근거 없는 환상을 경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강한 도덕성을 가진 정치 지도력과 시민의식을 확립하지 못하면 참여민주주의 발전을 보장할 수 없다”며 “어려운 준비작업을 생략한 성급한 참여민주주의 실험은 민주주의 발전보다는 거부와 독단이 판치고 불화와 분쟁만 일으키는 포퓰리즘으로 굴러 떨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와 함께 “광신적인 선동가와 특수 이익집단, 기회주의자들이 참여민주의 매카니즘을 ‘하이재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과 “정치 지도자들이 날마다 시험대에 올라서는 정치 지도력의 질과 책임감이 결정적으로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참여민주주의 정치실험 무대: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


포르토 알레그레는 브라질 최남단 리오그란데두술주 주도로 인구는 130만명이다.


포르토 알레그레의 참여민주주의는 브라질노동자당(PT)의 작품이다. 1988년 노동자당 후보인 올리비오 투드라 후보가 시장에 당선되면서 참여민주주의 실험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돈이 많든 적든, 많이 배우든 적게 배우든 똑같이 열린 장소에 모여 토론하고 이를 통해 시의 수입과 지출을 통제하고 시 예산 편성과 집행에 직접 개입하는 참여예산제(OP)가 이곳 참여민주주의의 중심 내용이다.

1988년 이전 포르토 알레그레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고질적인 엄청난 빈부격차에 시달리던 곳이었다. 세율이 높았는데도 시 재정은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리고 시민을 위해 돈을 쓰지도 않았다.

투드라 시장이 시 정부를 장악하고 가장 먼저 한 것이 바로 강력한 조세개혁이었다. 이와 함께 도심 빈민가 재개발을 시작했다. 빈민촌을 강제철거하고 주상복합 고층빌딩을 건설하는 재개발이 아니라 빈민촌 주민들을 위한 도로와 상하수도 등을 건설하는 재개발이었다. 이를 통해 주민참여를 자연스럽게 유도한 것이다.

1년에 두 번 시민 모두가 참여하는 대규모 시민토론회가 열린다. 이 자리에서 시 예산과 예산 집행 순위를 결정한다. 그 아래 16개 구역회의와 △교통 운수 △경제개발과 조세 △도시계획과 개발 △건강과 사회보장 △교육 문화 △여가생활 등 5개 주제로 시민포럼이 있다.

그리고 마을 광장과 길거리에서 열리는 공개토론회가 있다. 시민들은 토론회와 포럼에 참가할 권리와 의무를 함께 갖는다. 예산 문제는 전문성이 필요한 주제이기 때문에 토론회를 열기 전에 주민들을 위한 설명회를 따로 연다.

시민들은 85% 이상이 참여예산제에 대해 잘 알고 있고 80% 이상이 어떤 형태로든 시민토론회에 참여한다. 시민들은 참여예산제의 세부절차와 준비사항 등을 30쪽에 걸쳐 자세하게 설명한 지침서도 갖고 있다.

1990년 40만 가구만 공급받던 수돗물을 지금은 전체 가구의 98%가 공급받는다. 하수도 시설은 1989년 46%에서 1996년 85%로 늘었다. 도시 전체 학생수는 1989년 이후 7년만에 2배, 학교 수는 29개에서 86개로 늘었다. 문맹률은 2% 이하로 떨어졌다.

3-4월에는 지난해 결정한 사안들을 어떻게 실행하고 있으며 그해 투자계획이 무엇인지 토론한다. 이어서 투자 분야별로 무보수 자원봉사자들 30명으로 시민 소위원회를 만든다. 5월에는 길거리 토론을 통해 투자 우선순위를 논의한다.

6월부터 7월 14일까지는 분야별 소위원회 자문위원 2명과 후보위원 2명을 선출한다. 이들은 시민토론 내용을 정리해서 이를 시장에게 제출한다. 교육과 정보제공이 끝난 후 예산안 초안을 투표에 부친다. 시장은 예산안을 9월 30일 시의회에 제출한다. 10월부터 12월까지는 다음해 투자계획을 놓고 시민토론회를 다시 개최한다.

이곳의 참여 민주주의가 놀랄만한 결과를 가져오자 포르토 알레그레형 참여민주주의를 도입하기 시작한 도시가 브라질 안에서만 70여개에 이르고 남미 대륙 전체에는 1백개가 넘는다. 룰라 브라질 대통령은 포르토 알레그레형 참여민주주의를 전국적으로 실현하겠다는 대선공약을 내걸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포르토 알레그레는 노동자당 세력의 주요 남부 거점으로서 여기서 남미 대륙 전체로 참여민주주의 정치실험을 전파하고 있는 것이다.

협동조합으로 공동체 견인: 아르헨티나 캄포 데 헤레라


“문맹자도 없고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도 없다. 폭력도 없고 세금도 없다. 전에는 실업자 천지였지만 지금은 마을 사람 모두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뜻을 모아 협동조합운동을 벌이고부터 달라진 것들이다.”

아르헨티나 북부 투쿠만 주 수도 산 미구엘에서 35km 떨어진 작은 농촌 마을인 캄포 데 헤레라에는 경찰이 없다. 경찰이란 하는 일 없이 팔짱을 끼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존재일 뿐이라고 생각한 마을 사람들이 경찰을 없애기로 했기 때문이다.

마을 주민들은 경찰이 하던 일을 스스로 하고 있다. 마을 공동체의 규약은 단순하고 엄격하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거나 일터와 공공장소에서 소란을 피우는 자는 공동체에서 쫒아낸다는 것 하나 뿐이다.

한 마을 주민은 “술에 취해 소란을 피우면 한달간 일터에 나오지 못하게 하는 벌칙을 정했다”며 “마을 공동체에서 쫓겨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모두 행실을 반듯하게 한다”고 자랑한다. 그는 이어 “밤에 대문을 닫기는 하지만 빗장은 그냥 열어둔다”며 “도둑도 없다”고 말했다.

30년 전만 해도 이 마을은 설탕공장과 사탕수수밭 노동자들의 숙박지였다. 전기와 가스 수돗물도 없었다. 아이들까지 공장과 농장에서 일했고 2%를 뺀 모든 마을 사람들이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다. 더구나 1967년 불황으로 설탕공장이 문을 닫았다. 얼마 안되는 퇴직금도 금방 바닥났다.

이때 아르헨티나 국립농업연구소 엔지니어 호베르토 페르난데스 데 울리바리가 마을 사람들에게 협동조합을 제안했다. 일자리를 잃은 마을 사람 3백명 가운데 118명이 얼마 안되는 돈을 모아 협동조합을 세웠다.

그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정당한 임금을 받고 이농현상도 줄어들고 전기와 수도가 들어왔다. 전기공과 트렉터 운전사, 벽돌공을 양성하는 직업학교도 들어섰다. 조합은 생산품의 대부분을 큰 식품 가공회사에 납품한다. 그리고 국립농업연구소에 기술자문을 구하면서 아르헨티나 북부지역 특산물인 사탕과자를 제조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감귤재배도 시작했다.

조합 지도부는 운영위원 12명으로 구성한다. 모든 마을 주민들이 선거에 참여해 운영위원을 뽑기도 하고 뽑히기도 한다. 운영위원들은 마을 행정 전체를 책임진다. 시장이 따로 없고 회의를 할 때는 마을 주민 모두가 참여해서 자신들의 의견을 말하고 토론한다.

인민과학운동 산실: 인도 케랄라


케랄라는 인구 3천만명과 한국의 절반 정도 되는 땅을 가진 인도 남서부 해안의 ‘작은’ 주이다. 케랄라주가 최근 독특한 참여민주주의 실험으로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케랄라의 참여민주화와 지방분권화 운동은 좌파가 집권하느냐 국민회의파가 집권하느냐에 따라 ‘가다 서다’를 거듭했다. 그러나 1996년 이후 좌파정권이 수립한 인민계획 캠페인이 자리를 잡으면서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수십만 활동가와 전문가가 인민계획 캠페인에 참여하고 수백만 주민들이 교육을 받았다.

케랄라 참여민주의의에서 한 축을 이루는 것이 1962년부터 전개되는 인민과학운동(KSSP)이다. ‘사회혁명을 위한 과학’을 기치로 내건 인민과학운동은 △분권화와 참여민주주의 △주민청원과 소환제 도입 △알 권리와 배워야 할 의무 △거대화 거부 △민주주의와 자신을 신뢰 등을 정치의제로 내건다.

이를 위해 인민과학운동은 △주민학습을 위한 마을 토론모임 △의료캠프, 농산물 전시관 설치, 학습여행 △복지활동조직 △건강, 교육, 고용 실태조사 △마을 경제개발에 관한 조민토론회 △문맹퇴치 등의 활동을 벌인다.

케랄라가 참여민주주의 실험장이 되는 데는 몇가지 배경이 있다. 힌두교가 주류를 이루는 다른 지역과 달리 케랄라는 인구 30% 가량이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이다. 그만큼 다양성이 크고 카스트 전통에 덜 얽매인다. 그런 점이 작용해서인지 인도 독립 이후 좌파 정치세력이 강하다.

공산주의자들을 비롯한 좌파가 케랄라의 참여민주주의와 지방분권화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수십만개의 마을 공화국들로 구성된 연방국가가 내가 꿈꾸는 미래’라는 간디 사상이 좌파가 추구하는 참여민주주의의 출발점인 점도 흥미로운 점이다.

2004년 7월 23일 오전 2시 46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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