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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외교] 유럽에서 느끼는 '일본은 있다'

종횡사해/공공외교

by betulo 2011. 8. 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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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남부 하이델베르크 역사에 있는 서점에 들어가면 한쪽에 일본 망가 번역본이 별도 칸에 빼곡하게 진열돼있는 걸 볼 수 있다. 독일어로 번역된 일본 망가를 펼쳐봤다. 책 자체도 일본식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도록 편집해 놓았다. 일본 문화 대표상품인 망가의 인기는 남미의 브라질 최남단 포르투 알레그레에서도 느낄 수 있다. 시내 광장 곳곳에 있는 가판대에서 포르투갈어로 번역된 일본 망가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지금도 여전히 ‘일본은 있다’.

언제부턴가 한국에선 일본을 ‘지는 나라’ 취급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1990년대 ‘일본은 없다’가 도발적인 주장이었다면 2000년대엔 알게 모르게 상식처럼 돼 버렸다. 하지만 외국에서 조금만 지내보면 그 ‘상식’이 사실은 ‘몰상식’이라는 것을 별로 힘들이지 않고 깨달을 수 있다. 한마디로 지금도 여전히 일본은 있다.

하이델베르크 역 서점에 꽂혀있는 일본 망가


  문화적 자부심이 넘쳐나는 유럽에선 그것을 더욱 더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가뜩이나 수명도 짧은 몇몇 아이돌그룹이 유럽에서 인기 좀 얻었다고 난리법석을 떠는 ‘한류’에 비해 이미 19세기에 유럽 중심부에서 열풍을 일으켰던 ‘자포니즘’은 지금도 차분하게 유럽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일본어 전공자가 너무 많아 취업이 안된다?

  헝가리에는 일본어 가이드 자격증을 가진 헝가리인이 15명이 넘는다. 최근 들어 한국어를 배우려는 학생들이 늘고는 있지만 아직 한국어 가이드 자격증을 가진 헝가리인은 없다. 헝가리 최대 명문대인 엘테대 한국학과 초머 모세 교수가 “일본학과보다 한국학과가 취직에 유리하다.”면서 밝힌 이유는 중부유럽에서 일본과 한국의 문화적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본학과 졸업생은 취직하기가 힘듭니다. 1970년대 일본학과가 생겨서 지금은 일본어를 잘하는 사람이 이미 너무 많거든요. 한국학과는 2008년 처음 생겼고 올해 첫 졸업생을 배출합니다. 헝가리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올해 첫 한국학과 졸업생들을 스카우트 하려고 경쟁할 정도로 수요가 많습니다.” 

  엘테대 동아시아 도서관은 한국어 장서를 약 3만권 보유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 관련 소장도서 규모를 묻자 사서는 “각각 30만권가량”이라고 답했다.

파리 주재 일본문화원

 파리 시민들이 쉴새 없이 지나 다니는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프랑스 주재 일본문화원에서 만난 타케우치 사와코 원장은 “이곳은 유럽과 아프리카 주재 일본문화원의 중심 구실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일본 정부에서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일본문화원 전체 예산의 10% 가량을 일본 재계단체인 게이단렌(經團連) 후원금으로 충당하고 있는 것이 큰 힘이 된다. 

  타케우치 원장은 “게이단렌은 회원기업들이 추렴한 돈으로 기금을 만들어 우리 문화원을 지원한다.”면서 “기업사회책임 활동이라는 면도 있지만 문화외교가 결국 기업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잘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타케우치 원장은 “자국 문화를 외국에 알리는 것 뿐 아니라 상호 이해를 높이는 것이 그 중요성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면서 “일본도 그런 점을 감안해 해외문화원에 많은 투자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 문화의 저력은 바다 건너 남미에서도 절감할 수 있다.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이성형 HK교수는 지난해 국회입법조사처 간담회 발표를 통해 “중남미 문인들은 일본풍에 대해 약간 경이로운 시선으로 접근한다.”며 일본 문학이 차지하는 위상을 소개한 바 있다. 

  그는 “하이쿠(俳句·일본 전통시양식)는 이곳 시인들이 즐겨 차용하는시 양식이다.”면서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설국’의 모티브에 매료되어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을 쓰기도했다.”고 말했다.

 한류보다 수백년 앞서 유럽 휩쓴 ‘자포니즘'

  유럽에서 일본 문화가 유행한 것은 17세기 일본도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많은 유럽 귀족들이 일본 미술품을 수집한 전시실을 만들기도 했다. 1867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차 만국박람회는 일본 미술작품이 유럽을 강타하는 분수령이 됐다. 유럽에서 유행하는 일본풍 사조를 일컫는 ‘자포니즘’이란 용어까지 등장했다. 프랑스에선 일본 문화를 소개하는 전문잡지가 창간됐고 일본 미술 작품 전시회가 수시로 열렸다.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인 클로드 모네, 에두아르 마네, 에드가 드가, 피에르 르누아르, 폴 고갱 등이 모두 일본 풍속화에 심취했다. 파리에서 일본 그림을 본 뒤 화풍 자체를 바꾼 빈센트 반 고흐는 친동생에게 쓴 편지에서 “내 모든 작품은 일본 미술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지금도 일본 문화는 전세계에서 사랑받는다. 망가나 게임은 물론이고 스시, 가부키, 사케 등 종류도 다양하다. ‘설국’을 쓴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1968년 “일본적인 정서의 진수를 표현해내는 위대한 감수성”이란 찬사를 받으며 일본인으론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이어 1994년엔 오에 겐자부로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아시아 출신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나머지 두 명이 영국식민지 당시의 타고르(1913년 수상)와 프랑스에 망명한 뒤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던 가오싱젠(2000년 수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일본이 배출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2명은 일본 문화의 저력을 보여주는 또다른 지표라고 할 수 있다.

과거사청산 문제가 잠재적 걸림돌

 일본 문화가 유럽에서 아무 거부반응 없이 마냥 잘 뿌리내리고 있는 건 아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일본학과 중국학을 전공하는 젊은 학생들은 전반적으로 일본 문화에 대한 호감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과거사문제를 대하는 태도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중국학과 학생 안나 발터는 “일본이 왜 과거사 청산에 소극적이고 왜 역사왜곡을 계속하는지 납득하기 힘들다.”면서 “일본이 태도를 바꾼다면 동북아시아 분쟁과 갈등 해소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1년 가량 생활한 경험이 있는 일본학과 학생 닐스 라센은 “일본에서 보낸 경험이 무척 긍정적이었기 때문에 일본이 주변국에 저질렀던 일들을 떠올리는게 쉽진 않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정부가 나서서 과거청산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이 독일과 일본의 차이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청산하지 못한 과거사는 아시아에선 더 예리하게 일본에 대한 근원적인 반감으로 작용한다. 1990년대 아무로 나미에같은 아이돌이나 드라마가 아시아를 열광시키고 대형 기획사가 베트남과 베이징 등지에서 직접 오디션을 실시하는 등 한때 반짝했던 일본 대중문화가 빛을 잃어버리는데 한 원인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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