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부·지방정부 재정악화 불안감 확산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홍역을 치른 미국이 이번에는 지방재정 악화라는 ‘잔혹극 2막’에 돌입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 지방채 규모는 2조 9000억 달러에 이른다. 지난 10년 사이에 90%나 늘었다. 부채는 갈수록 느는데 경기침체 영향으로 세입은 줄었다. 거기다 방만한 예산집행까지 겹쳤다.
그동안은 지방채를 발행해 재정적자를 메웠지만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방채 시장이 최근 현금이 고갈된 주와 시정부의 채무 상환 능력에 대한 우려로 인해 사실상 얼어붙은 상태라고 지난 8일 보도했다.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연방정부가 1650억 달러 규모로 내놓았던 연방보조금 성격의 ‘빌드 아메리카 본드 프로그램’이 2010년 말을 만료되면서 지방채 시장은 더욱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미국 주정부 지방정부 부채비율
미국 재정적자 상위 20개주(2011회계연도 기준)출처: 국제금융센터
주정부·지방정부 채무불이행 위험이 높아졌다는 또다른 징표는 미국 대형은행들이 지방재정 악화에 따른 지방채 신용부도스와프(CDS) 수요 급증 전망을 배경으로 CDS 거래를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는 것에서도 찾을 수 있다. 미국 증권예탁결제원(DTCC)에 따르면 지난해 캘리포니아 주정부 채권에 대한 CDS 총거래잔액은 전년 대비 35% 증가했다.
미국 주정부 CDS 프리미엄 추이(2011/01/11 기준)
CDS는 대출이나 채권 형태로 자금을 조달한 채무자의 신용을 사고팔 수 있는 파생상품이다. CDS 매도자는 채무자가 이자 지급을 못하거나 채무조정을 진행함으로써 발생하는 손실을 CDS 매입자에게 보상해 주도록 돼 있다. CDS는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수료를 CDS프리미엄이라고 하며 bp(basis point)라는 단위로 나타낸다. 1bp는 0.01%와 같다. 손해보험에 가입할 때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높을수록 보험료가 비싸지는 것처럼 채권의 발행한 기관이나 국가의 신용위험도가 높아질수록 CDS프리미엄은 상승한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지방정부들은 지방채 CDS 거래업무 확대가 채무불이행 발생 가능성을 염두에 둔 투기거래 확대를 유발해 재정여건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감을 표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윤경 국제금융센터 금융시장실 연구위원은 “미국 주정부 가운데 CDS 프리미엄이 가장 높은 일리노이는 11일 현재 328bp이고 지난해 7월에는 370bp까지 치솟기도 했다.”면서 “이 정도면 최근 재정위기설이 거론되는 스페인 수준이다.”고 말했다.
그는 “500bp를 넘어서면 사실상 파산으로 보는데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면서도 “그리스 포르투갈 등 이른바 PIIGS 국가들은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는데 일리노이나 캘리포니아는 그런 노력조차 별로 안보인다.”고 꼬집었다.
미국 일리노이주 재정적자 추이(출처: 국제금융센터)
PIIGS와 미국 지방정부들 GDP비교 (출처: 국제금융센터)
재정악화는 미국 전역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캐나다 일간 글로브 앤 메일은 8일, 46개 주정부가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공공의료보험인 헬스케어 예산을 삭감하면서 일자리 40만개가 사라졌다면서 재정긴축이 광범위한 산업공동화 현상을 일으켜 국내총생산(GDP) 성장을 1% 포인트 감소시킨다고 지적했다.
예산·정책우선순위센터(CBPP) 최근 보고서는 주정부에서 필요한 재정과 집행 가능한 재정규모 격차가 지난해에만 1710억 달러나 됐고 올해도 16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http://www.cbpp.org/cms/index.cfm?fa=view&id=1214
주정부들도 대응에 나서고 있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대응은 세입통제, 즉 긴축이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지난 5일 주의회 연두연설을 하면서 뉴욕주가 위기라는 말을 수차례 반복하면서 약 100억 달러에 이르는 주정부 재정적자를 통제하기 위해 강력한 재정긴축을 단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네이선 딜 조지아 주지사는 공·사립 대학생들에게 제공해온 희망(HOPE) 장학금 축소 문제를 적극 검토하기로 하면서 파장을 일으켰다. 조지아주에 거주하는 영주권자 이상 학생 중 고등학교에서 평균 3.0 이상 학점으로 주내 공사립대학에 진학해 평균 3.0 이상의 학점을 유지하는 학생들에게 1인당 최대 6000달러까지 지급하는 장학금 재원이 고갈되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이것이 근본적인 해법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재정긴축은 복지와 교육예산에 집중되면서 고용악화와 빈곤화를 촉진한다. 소비가 살아나지 않으면 경기침체를 벗어날 수 없고 세입확대도 요원하다.
조기현·신두섭(2008)은 『지방재정관리제도 운용실태와 개선방안』(지방행정연구원)에서 신연방주의를 내세운 레이건 행정부가 연방정부 기능을 주정부에 대폭 이양하면서 연방보조금을 대대적으로 축소개편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기능이양에 따른 세출수요는 급증한 반면 연방보조금은 삭감되는 상황에 직면한 주정부는 부족재원을 지방채 발행으로 대응하는 한편 지방정부에 전가했다. 1980~1988년 기간 자치단체의 1인당 연방보조금은 53% 하락한 반면에 1인당 주정부 보조금은 4% 증가에 그쳤다.
이런 흐름 속에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 바로 복권이다. 미국 위튼버그대학 사회학과 데이비드 니버트 교수가 쓴 <복권의 역사>에 따르면 주정부와 지방정부들은 1980년대 세입확대를 위해 복권을 본격 도입하기 시작했다.
(2010/12/08 - 오늘도 서민 주머니'만' 노리는 숨겨진 세금, <복권의 역사>
2010/02/16 - 복권은 저소득층 지원 예산을 ‘대체’할까 ‘보완’할까)
HOPE 장학금 재원인 복권판매기금이 올해 2억 4400만 달러, 내년엔 3억 1700만 달러나 적자라는 것은 상징성이 적지 않다. 복권을 사는 사람이 대부분 저소득층이라는 점에서 복권수익 감소는 이제 복권을 통한 재정확충조차 한계에 부닥쳤음을 시사한다. 결국 세금을 올리는 것 말고 별다른 대안이 없지만 증세에 대한 반감이 워낙 심해 이마저도 쉽지 않다.
장래에 대한 전문가 전망 엇갈려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시장분석가 가운데 대표적인 비관론자인 메러디스 휘트니는 지난해 12월20일 CBS 시사프로 ‘60분’에서 “규모가 큰 지방정부 가운데 최소 50개, 많게는 100개가 채무불이행 사태를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http://online.wsj.com/article/SB10001424052748704739504576067602380461160.html?KEYWORDS=Bernanke
LA타임스는 “많은 캘리포니아 지방정부들이 2008년 파산했던 발레호 시처럼 되지 않을까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최근 CNN머니 보도에 따르면 마크 빈터 웰스파코 수석경제학자는 “우리는 지방채 시장이 또다른 붕괴하는 도미노라고 얘기하는 우려를 곳곳에서 듣는다.”면서도 “나는 그 문제로 밤잠을 못 이룰 정도로 걱정하지 않는다는 걸 분명히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http://www.ci.vallejo.ca.us/GovSite/default.asp?serviceID1=712&Frame=L1
마크 빈터 발언에 대해서는 http://finance.fortune.cnn.com/2010/12/17/bubble-trouble-for-muni-bonds/?section=magazines_fortune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Fed)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 위기를 진정시키는데 큰 구실을 했다. 하지만 이번엔 연준 차원에서 나서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 8일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7일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제정된 도드 프랭크 금융규제법은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높은 중앙은행의 대출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면서 “만일 지방 정부의 지급 불능이 문제가 된다면 이는 연준의 문제가 아니라 의회의 문제가 될 것”이라고 못박았다. 지방재정 위기 발생시 책임은 연준이 아니라 의회에게 있다는 경고로 들리는건 왜일까.
http://online.wsj.com/article/SB10001424052748704739504576067602380461160.html?KEYWORDS=Bernan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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