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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생각

포퓰리즘, 좌파의 준동인가 기득권층의 상상인가

by 자작나무숲 2011. 1. 17.



요즘 조중동 지면에서 포퓰리즘(Populism)이란 단어를 확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책담론에서 포퓰리즘이 등장하는 용법은 거칠게 말해 나쁜 것이다. 포퓰리즘은 심하게 말해 국민들의 인기에 영합해 퍼주기를 일삼는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 혹은 언발에 오줌누기정도로 구성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런 식이다. ‘무상급식은 포퓰리즘이다. 고로 나쁘다.’ ‘무상의료 주장은 포퓰리즘이다. 고로 나쁘다.’ 심지어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가 발표했다가 예산안 날치기 와중에 나가리 됐던 ‘70% 복지조차 포퓰리즘으로 규정한다.

 

도대체 포퓰리즘이 무엇이길래 이 난리인가.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다는 위키피디아에서 포퓰리즘을 검색해봤다. (http://ko.wikipedia.org/wiki/%ED%8F%AC%ED%93%B0%EB%A6%AC%EC%A6%98) 


대중과 엘리트를 동등하게 놓고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주장하는 수사법, 또는 그런 변화를 뜻하는 말.”


이어서 캠브리지 사전에선 포퓰리즘을 이렇게 정의한다고 써 있다
. “보통사람들의 요구와 바람을 대변하려는 정치 사상, 활동.” (http://dictionary.cambridge.org/dictionary/british/populism) 이런 거라면 나라 망할 듯이 게거품 물 필요는 전혀 없는 것 아닌가  



얼마전 한겨레에선 포퓰리즘에 대해 수십년동안 보수가 진보에 붙여온 좌파 딱지포퓰리즘 딱지로 대체되는 양상이라고 꼬집었는데 정확한 진단이라고 생각한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457764.html) 


포퓰리즘의 반대말은 뭘까. 존경하는 한 학자는 사석에서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포퓰리즘의 반대는 관료주의다.” 포퓰리즘이 대중들의 눈치를 보고 대중들의 목소리에 끊임없이 반응하는 데 반해 관료주의는 대중들의 눈치를 안보고 대중들의 목소리에 무신경하다. 이런 사회주의의 반대말은 자본주의라는 정답을 버려두고 사회주의의 반대는 민주주의라는 말도 안되는 상식을 강요받았던 것에 다름아니다 


무상급식 등 최근 야당에서 주장하는 복지정책들은 포퓰리즘일까? 그럴 수도 있다. 대중들의 이해와 요구에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117일자 한겨레 기사를 보면 과연 그러한지 심각한 의문이 들게 된다.(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459056.html 


기사에 따르면 민주당에선 증세 논쟁이 활발해지고 있다. 정동영 최고위원이 증세 없는 보편 복지는 허구라는 성명을 준비하며 지도부를 압박하고 천정배 최고위원과 김효석 의원도 사회보장세 도입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반면 일부 경제관료 출신 의원들은 재정건전성 문제를 이유로 속도조절을 주문한다 


이게 의미하는 게 뭘까. 조중동식 포퓰리즘 담론대로라면 민주당은 포퓰리즘과 정반대 지점에서 논쟁하는게 된다. 세금을 올린다는 증세가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기는 쉽지 않은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오세훈 서울시장이야말로 조중동식 포퓰리즘의 한가운데 위치해 있다는 역설도 가능하다. 주민투표가 뭔가. 주민들의 의사에 전적으로 의존하겠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포퓰리즘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의 747 공약이나 박근혜 의원의 줄푸세공약은 포퓰리즘일까 아닐까. 지난 2008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엄청나게 재미를 봤던 뉴타운공약은 포퓰리즘일까 아닐까. 사실 4대강에 대해 김두관 경남도지사가 주민투표를 통해 결정하자고 제안한다면 조중동도 김두관의 포퓰리즘이란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까

 

최근 <능지처참>(티모시 브룩 외, 박소현 옮김, 너머북스)이란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의 부제목이 중국의 잔혹성과 서구의 시선이다. 포퓰리즘 얘길 하다 이 책 얘길 하는 것은 한국에서 포퓰리즘 담론의 구성방식이 서구에서 나타나는 능지처참 담론과 대단히 유사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극단적 잔혹성의 신화. 동양의 야만인가, 서구의 상상인가?” 다시 말해 능지처참이 상징하는 중국의 잔혹성이란게 사실은 서구인들의 상상 속에서 나타나 다시 현실을 재구성했던 상상의 산물은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것을 포퓰리즘에 적용해 보자. “망국적 포퓰리즘의 신화. 좌파의 준동인가, (자칭) 보수의 상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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