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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사해/아랍의 봄

이란혁명으로 축출된 팔레비 왕가, 끝나지 않은 비극

by betulo 2011.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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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축출된 무하마드 레자 팔레비 국왕의 적통을 이은 두 왕자 가운데 막내인 알리레자 팔레비가 2011년 1월 4(현지시간) 미국 보스턴의 자택에서 자살했다. 향년 44세. 알리레자의 친형 레자 팔레비는 이날 자기 홈페이지에 알리레자 팔레비 왕자가 죽었다는 슬픈 소식을 동포들에게 전한다.”고 밝혔다. AFP통신에 따르면 보스턴 경찰 대변인은 그가 자기 몸에 총을 쐈다고 전했다. (http://www.rezapahlavi.org/details_article.php?english&article=485)


 자신의 아버지를 타도하자고 외치는 혁명과 뒤이은 망명 등 이란을 뒤흔든 정치적 격변은 10대 초반이었던 알리레자에게 큰 정신적 상처로 남았다. 레자는 다른 수백만 이란 젊은이들처럼 알리레자도 사랑하는 모국에서 일어난 (정치적) 불행에 매우 혼란스러워했다.”고 말했다

  AFP
통신에 따르면 알리레자는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을 기피했고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1966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태어난 알리레자는 1984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한 뒤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과 고대 이란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1941년 즉위해 한때 이란의 지존으로 군림하며 온갖 사치를 누렸던 팔레비 국왕은 왕좌에서 쫓겨난 다음해인 1980년 이집트에서 사망했다. 2001년에는 31세였던 막내딸 레일라가 오랫동안 거식증과 우울증을 앓던 끝에 영국 런던에 있는 한 호텔에서 약물과용으로 숨졌다.

  파라 팔레비 왕비는 당시 “9살 때 이란을 떠나야 했던 레일라는 조국이 자기 가족을 버린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그래서 괴로워했다.”고 말했다. 팔레비 왕비는 이란에서 추방된 뒤 영국 런던의 작은 아파트에서 홀로 지내고 있다.

 팔레비 왕조는 1925년 레자 팔레비가 카자르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세우면서 시작됐다. 당시 이란은 2차 세계대전에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하는 등 개방화와 서구화 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친미정책과 빈부격차 확대로 인한 양극화 등은 국내에서 광범위한 반발을 불러왔고 결국 1979년 혁명으로 국왕이 이집트로 망명하면서 팔레비 왕조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팔레비 왕조 당시 이란은 이스라엘보다도 더한 친미국가였다. 이에 대한 반발로 발생한 혁명 이후 이란은 노골적으로 미국타도를 외치는 반미국가가 됐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이란 뒤를 이어 중동을 대표하는 친미국가가 됐다. 




한때 이란의 지존으로 군림하며 온갖 호사를 누렸던 팔레비 왕가. 왕조를 연 레자 팔레비, 그 아들 무하마드 레자 팔레비, 왕비 파라 팔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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